최형식 담양군수 퇴임 인터뷰 “27년간 군민 은혜 갚기위해 일에 전념”
‘지방자치의 산증인’
도의원 11년·군수 16년 지내
‘대숲맑은 생태도시 담양’ 성과
대나무·생태·인문학 접목
750만 관광도시로 탈바꿈
농촌경관지키기 고층 개발 불허
도의원 11년·군수 16년 지내
‘대숲맑은 생태도시 담양’ 성과
대나무·생태·인문학 접목
750만 관광도시로 탈바꿈
농촌경관지키기 고층 개발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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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산증인 최형식(67) 담양군수가 오는 30일 27년 선출직 공직자의 소임을 내려놓는다. 1991년 37세의 나이에 전남도의원으로 출발한 그는 민선 3기, 5기, 6기, 7기의 담양군정을 책임졌다. 4기 낙선은 오로지 지금은 성공작으로 평가받은 죽녹원 조성사업에 대한 반대 여론 때문이었다. 그는 고향인 담양의 유일한 자원인 대나무를 통한 지역 발전을 꿈꿨다.
군수로 재직한 16년간 ‘대숲맑은 생태도시 담양’이라는 로고를 일관되게 지켜왔던 그는 ‘죽광(竹狂)’으로 불렸다. 거제도에서 맹종죽(가장 굵은 수종)을 사와 심을 때 그는 마음속으로 “10년 뒤에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더 강력하게 추진했다. 30년 전 생소하기만 했던 생태, 인문학 등과 사양자원인 대나무를 엮어 담양의 미래를 그린 최 군수에게 비난, 반대, 조롱, 손가락질 등이 쏟아졌다.
지금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죽녹원 입장료를 받기 위한 조례는 반대에 막혔고, 공원보다 더 아름다운 납골당으로 인기가 높은 갑향묘지공원을 조성하면서 주민들의 민원에 애를 먹기도 했다. 메타프로방스, 담빛예술창고, 담주예술구, 해동문화예술촌, 에코하이테크 담양산업단지 등 추진하는 사업마다 성공 가능성에 의문 부호가 붙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안목이, 방향이, 의지가 맞았음이 증명됐다.
최 군수는 그렇게 군민으로부터 4번의 선택을 받는 은혜를 입었다. 담양군 무정면 성도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지난 1980년 광주항쟁에 참여했다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0월을 선고받은 후 정치에 입문했다. 이상하게도 무소속이면서 젊기까지 했던 그에게 보수적인 고향 사람들은 표를 몰아줬다. 열심히 일해서 주민들 모두가 행복한 담양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지킬 수밖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도를 높여 지역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최 군수는 담양의 농촌 경관을 지켜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맥락 없이 전남도내 시·군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고층아파트가 특색 없는 ‘판박이 경관’를 찍어내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한 고층 개발을 불허했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담양읍 시가지를 지속가능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이는 필요 없는 규제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라는 것이 소신이다. 지역의 정체성과 특색을 살려나가는 것이 지방자치의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간에서 체현돼야 하며, 주민·외지인이 그 안에서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퇴임을 며칠 앞둔 지난 24일 최 군수를 군청에서 만났다. 감사 인사를 다니고, 자신이 계획하고 추진한 사업·정책을 마무리하기 위해 여전히 분초를 다투고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역사와 함께 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도의원으로 시작해 27년 선출직 공직자를 지냈다. 민선 4기 4년을 제외하고 11년간 도의원, 16년간 군수를 맡았다. 지방자치를 통해 각 지역들이 나름 발전했다고 본다. 다만 여전히 제도적으로는 지방자치에는 한계가 있다. 지방자치를 통해 각 지방이 정체성과 특색을 만들어나가고 특화 발전해야 하는데 조직, 인사, 재정 등에서 여전히 중앙에 예속돼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입법 체계를 고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정부가 시행령을 만드는데, 이제 지방과 관련된 법은 지방이 조례로 각기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 지방은 자연, 역사, 문화,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른데도, 정부의 일률적인 시행령에 따라서는 각 지방이 자신의 여건에 맞는 다양한 옷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이 자체적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발전 잠재력을 이끌어내도록 입법체계부터 손 봐야 한다.
- 담양과 대나무, 이제 떼어놓을 수 없게 됐다.
▲담양을 정말 사랑한다. 담양이 저를 키웠고, 그것에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없었다. 앞만 보고 뛰었는데, 너무 앞서 나가 욕도 꽤 들었다. 담양의 대표자원이지만 죽공예 등 관련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대나무는 외면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나무야말로 담양을 담양답게 살리는 보물이다. 죽녹원이 그 가능성을 열었고, 지금 조성중인 대나무생태공원으로 아마 완성될 것이다. 금성면 금성리의 대나무생태공원은 면적이 79만3000여㎡(24만평)에 달하며 그 안에 한국정원문화원, 동화미술관, 예술인마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 27년 선출직 공직자로 살았다. 기억나는 세 가지만 꼽는다면.
▲우선 20년 전에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를 도입해 행정에 접목시키고 지역발전 전략으로 삼았다. 개발이 대세였던 당시 이는 인기있는 정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관되게 군정의 가치와 이념으로 삼았고, 난개발을 막았다.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 담양을 성장시켰고, 그 발전 잠재력인 자연을 보존했다. 두 번째로 담양이 연간 7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웰빙 관광도시가 됐다. 카페가 250개에 달하고, 담양에서 전국 브랜드로 성장한 업체도 있다. 마지막으로 담양이 친환경의 메카이자 대표적인 전원도시가 됐다. ‘대숲맑은 쌀’, 담양 딸기 브랜드 ‘죽향. 담향, 메리퀸’ 등의 인기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고, 최적의 주거환경으로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으로 거듭났다.
공립대안학교인 송강고등학교, 페이스톤 국제학교 유치 등과 죽녹원, 담빛지구, 역사문화공운등 관련 토지매입등으로 주민편익시설, 사회기반시설, 무형자산 투자액 등을 포함한 공유재산 373만5000여㎡(113만평), 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공유재산 확보 등도 잊을 수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직자가 있다면.
▲담양의 모든 공직자가 열정과 헌신을 가지고 전국 최고 역량을 가지게 됐다는 것에 무엇보다 자부심을 느낀다. 민선 7기에만 3100억 원의 정부 공모사업을 이끌어냈다. 승진 인사를 할 때마다 고민이었다. 담양 공직자 모두가 너무 자랑스럽다.
- 담양, 앞으로 반드시 지켰으면 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 생태도시 정책을 지켰으면 한다. 이는 담양 미래 1000년을 위한 근본이다. 군민 모두의 삶을 지켜나가기 위한 규제를 풀어서는 안 된다.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담양의 경관은 파괴·훼손돼 갈 것이다. 후임 군수들이 소수의 특혜가 아닌 다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해온 우리의 규범을 지켜나갔으면 한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고향에 살면서 지난 4월 전국에서 최초로 들어선 담양 반려유기동물 입양센터 등에서 봉사할 생각이다. 책도 좀 읽고 담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겠다. 저에게 새로운 미션이 있는지 성찰해보는 시간도 갖겠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지금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죽녹원 입장료를 받기 위한 조례는 반대에 막혔고, 공원보다 더 아름다운 납골당으로 인기가 높은 갑향묘지공원을 조성하면서 주민들의 민원에 애를 먹기도 했다. 메타프로방스, 담빛예술창고, 담주예술구, 해동문화예술촌, 에코하이테크 담양산업단지 등 추진하는 사업마다 성공 가능성에 의문 부호가 붙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안목이, 방향이, 의지가 맞았음이 증명됐다.
최 군수는 담양의 농촌 경관을 지켜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맥락 없이 전남도내 시·군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고층아파트가 특색 없는 ‘판박이 경관’를 찍어내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한 고층 개발을 불허했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담양읍 시가지를 지속가능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이는 필요 없는 규제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라는 것이 소신이다. 지역의 정체성과 특색을 살려나가는 것이 지방자치의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간에서 체현돼야 하며, 주민·외지인이 그 안에서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퇴임을 며칠 앞둔 지난 24일 최 군수를 군청에서 만났다. 감사 인사를 다니고, 자신이 계획하고 추진한 사업·정책을 마무리하기 위해 여전히 분초를 다투고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역사와 함께 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도의원으로 시작해 27년 선출직 공직자를 지냈다. 민선 4기 4년을 제외하고 11년간 도의원, 16년간 군수를 맡았다. 지방자치를 통해 각 지역들이 나름 발전했다고 본다. 다만 여전히 제도적으로는 지방자치에는 한계가 있다. 지방자치를 통해 각 지방이 정체성과 특색을 만들어나가고 특화 발전해야 하는데 조직, 인사, 재정 등에서 여전히 중앙에 예속돼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입법 체계를 고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정부가 시행령을 만드는데, 이제 지방과 관련된 법은 지방이 조례로 각기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 지방은 자연, 역사, 문화,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른데도, 정부의 일률적인 시행령에 따라서는 각 지방이 자신의 여건에 맞는 다양한 옷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이 자체적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발전 잠재력을 이끌어내도록 입법체계부터 손 봐야 한다.
- 담양과 대나무, 이제 떼어놓을 수 없게 됐다.
▲담양을 정말 사랑한다. 담양이 저를 키웠고, 그것에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없었다. 앞만 보고 뛰었는데, 너무 앞서 나가 욕도 꽤 들었다. 담양의 대표자원이지만 죽공예 등 관련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대나무는 외면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나무야말로 담양을 담양답게 살리는 보물이다. 죽녹원이 그 가능성을 열었고, 지금 조성중인 대나무생태공원으로 아마 완성될 것이다. 금성면 금성리의 대나무생태공원은 면적이 79만3000여㎡(24만평)에 달하며 그 안에 한국정원문화원, 동화미술관, 예술인마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 27년 선출직 공직자로 살았다. 기억나는 세 가지만 꼽는다면.
▲우선 20년 전에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를 도입해 행정에 접목시키고 지역발전 전략으로 삼았다. 개발이 대세였던 당시 이는 인기있는 정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관되게 군정의 가치와 이념으로 삼았고, 난개발을 막았다.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 담양을 성장시켰고, 그 발전 잠재력인 자연을 보존했다. 두 번째로 담양이 연간 7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웰빙 관광도시가 됐다. 카페가 250개에 달하고, 담양에서 전국 브랜드로 성장한 업체도 있다. 마지막으로 담양이 친환경의 메카이자 대표적인 전원도시가 됐다. ‘대숲맑은 쌀’, 담양 딸기 브랜드 ‘죽향. 담향, 메리퀸’ 등의 인기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고, 최적의 주거환경으로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으로 거듭났다.
공립대안학교인 송강고등학교, 페이스톤 국제학교 유치 등과 죽녹원, 담빛지구, 역사문화공운등 관련 토지매입등으로 주민편익시설, 사회기반시설, 무형자산 투자액 등을 포함한 공유재산 373만5000여㎡(113만평), 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공유재산 확보 등도 잊을 수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직자가 있다면.
▲담양의 모든 공직자가 열정과 헌신을 가지고 전국 최고 역량을 가지게 됐다는 것에 무엇보다 자부심을 느낀다. 민선 7기에만 3100억 원의 정부 공모사업을 이끌어냈다. 승진 인사를 할 때마다 고민이었다. 담양 공직자 모두가 너무 자랑스럽다.
- 담양, 앞으로 반드시 지켰으면 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 생태도시 정책을 지켰으면 한다. 이는 담양 미래 1000년을 위한 근본이다. 군민 모두의 삶을 지켜나가기 위한 규제를 풀어서는 안 된다.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담양의 경관은 파괴·훼손돼 갈 것이다. 후임 군수들이 소수의 특혜가 아닌 다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해온 우리의 규범을 지켜나갔으면 한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고향에 살면서 지난 4월 전국에서 최초로 들어선 담양 반려유기동물 입양센터 등에서 봉사할 생각이다. 책도 좀 읽고 담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겠다. 저에게 새로운 미션이 있는지 성찰해보는 시간도 갖겠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