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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 전남 갯벌] ‘세계 5대 갯벌’ 탁월한 가치 지닌 생태계 보물창고
전남 서남해안, 전국 갯벌 42.5% 차지…순천만·보성 ‘람사르습지’등록
“갯벌은 칠게·도요새·인간 더불어사는 터전…미래세대도 누려야할 자원”
2022년 04월 18일(월) 18:15
봄 햇살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한 ‘칠게’(고흥군 남양면 월정리 ‘선정 은하수 & 꼬막마을’)
갯벌은 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전남 서남해안 갯벌 면적은 우리나라 갯벌면적 2482㎢(2018년 기준)의 42.5%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신안갯벌과 보성·순천 갯벌 등은 지난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의 갯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뻘길 십리/ 푸드덕 푸드덕 몸망치로 때려 박아/ 지게에서 내려서려는 숭어/ 맨발로 지구를 신고/ 숭어가 움직이면 움직임을 느낀 만큼 숭어가 되는/ 증발하는 생명 한 지게 지고/ 뻘에 박혀있는 흙못 하나.”

함민복 시인의 시 ‘숭어 한 지게 짊어지고’이다. 참숭어를 지게에 지고 갯벌을 걸어 나오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시인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2014년)에 시를 쓰게 된 동기가 나와 있다.

시인은 강화도 갯벌에 쳐놓은 건강망(建干網·여러 개의 말뚝을 박고 거기에 긴 그물을 쳐놓아 썰물 때 고기가 걸리도록 하는 그물)을 보러가는 지인 어부를 따라 나선다. 왕복 20리 길에 달하는 개펄 길은 푹푹 빠져 걷기가 힘들었다. 이때 시인은 나무처럼 지구를 신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시인의 또 다른 작품 ‘어민 후계자 함현수’에서도 강화 갯벌의 참숭어 잡이 전성기와 함께 현재 오염으로 딱딱해진다는 갯벌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갯벌의 생태·환경적 가치가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지난해 7월 중국 푸저우에서 열린 제44차 회의에서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보성 벌교갯벌에서 꼬막을 채취하는 어민들.
등재된 갯벌은 ▲신안(1100.86㎢) ▲보성·순천(59.85㎢) ▲전북 고창(55.31㎢) ▲충남 서천(68.09㎢) 등 모두 네 곳이다. 이는 ‘탁월한(Outstanding) 보편적(Universal) 가치(Value)’를 지닌 한국 서남해안의 갯벌 생태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한국 서남해안 갯벌은 북해 연안, 캐나다 동부 연안, 미국 동부 조지아 연안, 남미 아마존 유역과 함께 ‘세계 5대 갯벌’로 손꼽힌다. 앞서 순천만 갯벌과 보성갯벌은 2006년에 국내 연안습지 최초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바 있다.

또한 해양수산부는 지난 2015년부터 지역의 환경과 사회·풍습 등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유·무형의 어업자원을 ‘국가 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해오고 있다. 같은 해 12월 ‘제주 해녀어업’(제1호)를 시작으로 2021년 9월 ‘신안 흑산 홍어잡이 어업’(제11호)에 이르기까지 모두 11개 어업이 지정됐다. 이 가운데 전남지역 갯벌에서 이뤄지는 어업은 ▲보성 뻘배어업(제2호) ▲신안 갯벌 천일염업(제4호) ▲완도 지주식 김 양식업(제5호) ▲무안신안 갯벌낙지 맨손어업(제6호) 등 4건이다. 어가 고령화와 장비의 현대화로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전통 어법들이다.

세계적인 멸종위기인 저어새.
◇갯벌, 생태계 보고(寶庫)이자 마을어업 공간=지난 2월 중·하순, 국제적인 보호종이자 멸종 위기종인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 228호)떼가 신안군 지도읍 갯벌과 보성군 벌교읍 봉황마을 인근 갯벌에서 각각 관찰됐다. 이들은 일본 등지에서 월동을 마치고 시베리아 번식지로 북상하던 도중 먹이활동과 휴식을 위해 두 갯벌을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서남해안 갯벌이 철새들에게 왜 중요한지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갯벌은 ‘지구의 콩팥’ 역할을 톡톡히 한다. 펄 갯벌 1㎢ 면적의 미생물 분해 능력은 도시 하수처리장 한 곳의 유기물 처리능력과 같다고 한다.

이와 함께 갯벌은 무수한 생명체들에게 먹이 등 에너지원 역할을 하지만 바다를 끼고 사는 인근 주민들에게도 무한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갯벌어업으로 행해지는 천일염과 맨손 낙지잡이, 뻘배 어업, 지주식(支柱式) 김 양식업 등이 대표적이다. 천일염을 비롯해 세발낙지, 쭈꾸미, 꼬막, 바지락, 키조개, 김, 매생이, 감태, 파래, 짱뚱어, 숭어 등 갯벌에서 나는 다채로운 수산물은 지역경제의 토대를 이뤘다.

바다, 갯벌과 함께 수백 년을 살아온 주민들은 자연과 융화되는 지혜를 찾았다. 섬과 섬사이 드러난 갯벌에 노둣돌을 놓아 왕래했고, 밀물과 썰물의 이치를 살펴 갯벌에 개매기와 독살로 물고기를 잡아왔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펄갯벌을 이동하기 위해 뻘배(널배)를 만들었고, 바닷물을 농축시켜 햇빛과 바람만으로 천일염을 생산했다. 주민들에게 갯벌은 삶의 현장이었고, 마을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드넓은 바다의 옥토였다.

신안 갯벌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
◇ “갯벌의 바다로서의 공공성을 땅으로서의 사유성으로 상쇄”=간척(干拓)의 사전적 의미는 “육지에 면한 바다나 호수의 일부를 둑으로 막고, 그 안의 물을 빼내어 육지로 만드는 일”이다. 일제 강점기에 대규모 근대적인 간척사업이 이뤄졌다. 일제는 ‘국유미간지(國有未墾地) 이용법’(1907년)과 ‘조선 공유수면(公有水面) 매립령’(1923년)을 근거로 1920년대부터 미곡증산 정책의 하나로 간척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일제 강점기에 행해진 간척사업은 해방이후 추진된 간척사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990년대 이뤄진 시화지구 개발사업과 새만금 간척사업 등 대규모 간척은 역설적으로 갯벌의 소중함과 자연 파괴적인 대규모 간척사업의 폐해를 깨닫고 환경적·사회적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시민과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순천만 골재채취 반대운동을 전개하면서 순천만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난 때도 1990년대 후반이었다.

전재경 한국법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갯벌’에 게재된 논문 ‘갯벌보전의 논리’에서 “입법자들이 실수로 빚어낸 제도의 흠결을 정부가 남용하면서부터 갯벌(간석지)의 비극은 시작되었다”며 “갯벌의 (바다로서의) 공공성을 (땅으로서의) 사유성으로 상쇄시켰다”고 비판한다.

입법자들이 바닷물이 드나든다고 해 갯벌을 ‘바다’(수면)으로 분류했고, 싼값에 토지를 얻고자 하는 기업은 갯벌을 ‘바다’가 아닌 ‘땅’으로 보았다. 이러한 갯벌의 이중성을 이용해 기업은 갯벌을 싼값으로 사들여 토지소유권을 획득하고 간척을 통해 이익(매립자 잉여)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매립된 갯벌은 더 이상 마을어업 공간이나 어민들의 공유재산이 아닌 개인 또는 기업의 사유재산으로 변해버리는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영광 농게와 짱뚱어.
◇전남 갯벌, 글로벌 관광상품화 추진=전남도와 전남관광재단은 지난 1월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신안 갯벌과 보성·순천 갯벌을 글로벌 관광상품화 하겠다고 밝혔다. 하나투어ITC, 트레이지(TRAZY)와 협업해 전남 서남해 갯벌을 활용한 체류형 관광상품 등을 기획했다. 4월부터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본격 판매할 계획이며, 낙지잡이와 꼬막 채취 등을 체험한 후 친환경 건강밥상을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갯벌과 습지를 파괴하는 환경오염과 간척, 남획 등은 모두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갯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갯벌 저서생물들의 생태계 보고인 갯벌은 미래 세대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간척사업으로 상당 면적의 갯벌을 잃어버린 일본은 방조제를 터 바닷물이 들게 하는 ‘역간척’ 등 갯벌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요즘, 순천만 와온마을을 비롯해 경관이 뛰어난 갯벌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물밀듯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전남 여러 갯벌이 갯벌 체험장으로 바뀌고 있다. 갯벌의 환경적 가치에 대한 이해와 갯벌생물에 대한 ‘존중’ 없이 먹지도 못할 작은 게를 재미로 잡아보고 그냥 버려버리기도 한다. 잘못하면 간척사업 이상의 갯벌 폐해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갯벌은 희귀한 환경자산인가, 아니면 경제성이 전혀 없는 쓸모없는 땅인가? 지금껏 후자의 입장에서 갯벌을 메우는 간척사업을 벌여왔다면 앞으로는 전자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지난 2010년 펴낸 ‘대한민국 갯벌문화 사전’에서 “인간도 갯벌 생물이다. 갯벌에 등장한 최후의 생물”이라며 “갯벌은 칠게와 도요새와 인간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터전이다. 미래세대도 누려야할 자원이다”고 강조한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순천시·보성·신안·영광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