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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국남의 대중문화 X파일 대한민국 춤바람 일으킨 댄서들
강력한 팬덤으로 댄서 전성시대 열다
1990년대 초중반 힙합 부상과 함께 스트리트 댄스 등장
편견과 싸우며 열정으로 도전, 대중문화 한복판으로 진입
2022년 01월 24일(월) 18:50
지난해 방송가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의 출연자들.
노제는 오뚜기 열라면과 메디필 화장품을 비롯한 10여 개 제품 광고 모델로 나서고 CF 출연료는 200만 원에서 1억 5000만 원으로 75배 급상승했다. 아이키는 MBC ‘방과후 설렘’, tvN ‘스트릿 댄스 걸스 파이터’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모니카가 운영하는 댄스 학원은 춤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허니제이는 경희대 미래교육원과 한국예술원에서 실용 무용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리정은 선미, 트와이스, 있지, 블랙핑크의 리사 같은 최고 인기 아이돌의 스타 안무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효진초이의 댄스 영상물은 유튜브에서 수천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한다. 예리는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 게임과 20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브레이킹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오랫동안 ‘빽갈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가수의 백업 댄서로만 인식됐던 노제, 아이키, 허니제이, 모니카, 리정, 효진초이, 예리 같은 댄서들이 방송과 공연 등 대중문화 전면에 나서 대중의 관심과 미디어의 조명을 받고 있다.

티켓 판매 1분 만에 매진을 기록한 공연 ‘스트릿 우먼 파이터 온 더 스테이지’에 등장한 댄서들에게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JTBC ‘아는 형님’, SBS ‘집사부 일체’, MBC ‘전지적 참견 시점’ 등 댄서들이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률과 화제성이 폭발한다. 젊은 춤꾼들이 하나은행을 비롯한 금융 광고부터 버드와이저 같은 주류 광고까지 스타 연예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다양한 제품의 CF 모델로 나선다. 댄서들이 강력한 팬덤을 바탕으로 스타로 부상하고 K-댄스 한류 주역으로 인정받는다. 대한민국에 춤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댄서들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춤은 삶과 생활, 사회적 의미, 미적 정서, 종교적 행위 등을 몸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하는 예술이다. 댄스는 춤추는 사람의 수와 사회적 의미, 의식적 용도 그리고 음악에 따라 장르와 유형이 구분된다. 요즘 춤 열풍을 조성한 것은 바로 ‘스트리트 댄스(Street Dance)’다. 스트리트 댄스는 전통 무용이나 발레, 모던댄스 같은 순수무용과 다른 대중문화에 기반을 둔 춤으로 길거리와 클럽, 공연장, 댄스 스튜디오에서 형성됐다.

근육에 힘을 주면서 튕기는 테크닉을 구사해 관절을 꺾는 절도 있는 움직임이 특징인 팝핑(Popping)을 비롯해 브레이킹(Breaking), 락킹(Locking), 왁킹(Waacking), 힙합(Hiphop), 하우스(House), 크럼프(Krump) 같은 하위 장르가 있다. 스트리트 댄스는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기반의 힙합과 펑크 문화에서 유래했다. 국내에선 1990년대 초중반 힙합의 부상과 함께 스트리트 댄스 역시 등장해 진화와 분화를 거듭했다. 순수 무용이 내면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둔 데 비해 스트리트 댄스는 즉흥적인 프리스타일을 통해 음악적 요소를 몸으로 드러내고 대체로 배틀 형식을 취한다.

한국에서 춤은 오랫동안 ‘불온’의 등가물이었다. 유교적 영향으로 몸 쓰는 것에 대한 비하적 시선이 팽배했고 언론매체에서 댄스와 춤바람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내면서 춤은 불륜과 선정, 문란의 상징이 됐고 이성을 유혹하는 매개체에 불과했다. 이 연장 선상에서 춤을 추는 댄서는 날라리, 비행 청소년, 불량배, 비도덕적 행위를 부추기는 사람으로 인식됐다.

댄서들은 이러한 편견과 비하를 춤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이겨내며 길거리에서 그리고 무대와 방송에서 댄스를 발전시켜 왔다. 춤과 댄서에 대한 견고한 왜곡의 시선이 변한 것은 1990년대 정신 우위의 문화에서 육체 중심의 문화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질서 있고 정적인 육체성을 거부하고 자유롭고 역동적인 육체성을 추구하는 몸 담론이 대두하면서 댄스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996년 데뷔한 H.O.T를 시작으로 댄스 음악을 하는 아이돌 가수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퍼포먼스가 노래만큼 중요한 요소로 인식돼 춤과 댄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감소했다. 비행 청소년으로 동일시되던 비보이와 비걸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브레이킹이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과 2024년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댄서 지망생이 급증한 것도 댄스와 춤꾼에 대한 인식 개선에 한몫했다.

물론 댄스 관련 TV 프로그램도 춤과 댄서에 대한 인식 전환에 큰 역할을 했다. 3000명의 지원자가 몰린 KBS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 하이’를 비롯해 ‘댄싱 9’ ‘댄싱 위드 더 스타’ ‘힛 더 스테이지’ 같은 댄스 관련 프로그램이 간헐적으로 시청자와 만나는 상황에서 춤과 댄서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키며 국내외에서 K-댄스 신드롬을 촉발한 진원지는 엠넷이 2021년 8월 24일부터 10월 26일까지 방송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다.

훅, 라치카, YGX, 홀리뱅, 코카앤버터, 프라우드먼, 웨이비, 원트 등 8개 댄스 크루가 치열한 대결을 펼쳐 허니제이가 이끈 홀리뱅이 최종 우승을 차지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가수들의 뒤에 서서 무대를 빛낸 백업 댄서들을 댄서 그 자체로 주목하게 했다. 댄서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땀과 눈물, 춤에 대한 진정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날라리’라는 불온한 타이틀과 ‘빽갈이’라는 비하적 명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댄서들은 이제 청소년의 워너비로 떠올랐고 강력한 팬덤을 확보한 대중 스타로 도약했다. 이것은 적지 않은 댄서들이 오랫동안 땀과 눈물로 춤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명 비보이팀 ‘진조 크루’.
팝핑의 역사를 개척한 팝핀현준 같은 댄서와 2021년 11월 23일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적인 브레이킹 대회 ‘Battle Of The Year’에서 퍼포먼스와 배틀 부문 우승을 차지한 진조 크루 같은 댄스팀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스트리트 댄스를 발전시켰기에 2022년 대한민국에서 춤바람이 거세지고 댄서들이 대중과 미디어 시선의 중앙에 자리한 것이다.

스트리트 댄스 1, 2세대 댄서로는 팝핀현준, 하휘동, 윙, 홍텐, 제이블랙, 리아킴, 배윤정 등을 꼽을 수 있다. 팝핀현준은 1999년 월드힙합페스티벌부터 이름을 알렸고 아이돌 그룹의 안무 구성과 백업 댄서로 나서며 공연과 방송을 통해 팝핑을 대중화시킨 선구자다. 윙은 세계적인 댄스팀 진조 크루 에이스로 활동하는 23년차 비보이로 국내외 대회에서 100회 이상 우승컵을 거머쥐었을 뿐만 아니라 시그니처 무브인 ‘2000’과 ‘윙밀(Wingmill)’ 같은 독창적 테크닉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제이블랙은 2009년 댄스대회 ‘4 DA NEXT LEVEL Vol. 2’ 힙합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힙합 댄스 강자로 방송과 무대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리아킴은 한국 최대 댄스 스튜디오 ‘1 Million Dance Studio’의 창립자이자 수석 안무가로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 인기가 높은 스타 댄서다. 배윤정은 카라, 티아라, 브라운 아이드 걸스, EXID 등 스타 아이돌의 안무를 맡아 인지도를 확보했고 댄스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트리트 댄스 확산에 기여했다.

‘스트릿 댄스 우먼 파이터’ 출연으로 스타덤에 오른 아이키, 가비, 리정, 허니제이, 리헤이, 모니카, 노제, 효진초이 등은 스트리트 댄서 2, 3세대에 속한다. 우승을 차지한 허니 제이는 댄스팀 소울 시스터즈 출신으로 크루 퍼플로우를 이끄는 힙합 댄스 최강자다. 아이키는 댄스 듀오 올 레디로 활동하며 미국 댄스 경연 프로그램 ‘World Of Dance’에 출전해 4위를 차지하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MBC ‘놀면 뭐하니’ 등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확보했다.

리헤이는 코카앤버터 리더로 힙합댄스에 강점을 보이는 댄서로 에일리, 효연의 안무를 맡았다. YGX의 크루 NWX에 소속된 리정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댄스팀 저스트 절크 멤버로 ‘아메리카 갓 탤런트 12’와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했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