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종 희곡·창극집 ‘봄날의 새연’ 출간
  전체메뉴
정범종 희곡·창극집 ‘봄날의 새연’ 출간
“삶에 바탕 두지 않는 희곡 대사는 공허”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5·18 우수희곡상
상감청자에 매료돼 문학의 길 들어서
2021년 11월 17일(수) 18:20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결심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밥벌이’와 연계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취미 삼아 글을 쓰는 사실만으로 직업을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작의 세계에 들어선 이들에게는 나름의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보성 출신 정범종 희곡작가에게도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다. 한 순간에 필이 꽂히게 된 시간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가 최근 ‘봄날의 새연’이라는 창극·희곡집을 펴냈다. 이런 저런 글을 쓰면서 살아온 이력답게 그에게선 얼핏 문향의 향기가 배어 나왔다.

사실 소설과 시와 달리 희곡(창극작품을 포함해)은 문학의 주류 장르가 아니다. 어느 분야든 주류가 아니고서는 조명을 받기 힘들다. 설령 주류 장르라 해도 오롯이 창작을 하거나 창작과 연계된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정 작가가 희곡에 빠진 계기가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남대 재학 시절 이태호 교수의 ‘한국미술사’”를 수강하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당시 이태호 교수는 ‘이 나라 예술의 한 정점이자 인류 예술의 한 정점이 바로 상감청자’라고 했어요. 그 상감청자라는 말에 필이 꽂혔던 거죠. 무엇보다 그 상감청자가 우리 지역 강진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뿌듯했습니다.”

그 무렵 중아앙트홀(지금의 호암아트홀)이 건립됐고, 장막극을 모집했다. 정 작가는 상감청자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상감청자를 소재로 장막극을 쓰기로 결심한다. 희곡을 선택한 것은 “어릴 적 아동극에 출연했고, 자주 연극을 봐서 그런지 다른 장르보다 가까웠다는 점”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당시 그는 국보 68호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을 소재로 글을 썼다. 두 달가량 써서 작품을 완성해 투고했지만 발표일이 되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한달 가량 지난 후에 광주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발 옆에 신문지 조각이 있었습니다. 우연찮게 한 기사를 봤는데 거기에 제가 쓴 작품이 최종심에 거론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율을 느꼈어요.”

그것이 그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다. 사실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상감청자’에 매료된 후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됐고 그렇게 틈틈이 창작을 했다. 이후 경향신문 신춘문예(1986년) 희곡부문에 ‘새연’으로 문단에 나오게 된다. 지난 2007년에는 5·18기념재단 우수희곡상에 ‘오방색양말’이 선정됐으며 제4회 4·3평화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한다.

“그동안 써온 창극과 희곡을 모아 출간하게 됐습니다. 막혔던 데가 터지는 시원한 느낌이 들었어요. 오랜만에 작품집을 발간하는 작가라면 느끼는 동일한 감정일 거예요.”

정 작가는 지역 공연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랬다. 사실 우리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창극과 연극이 활발하지 않는데다 작품집 출간도 뜸하다. 이번 상황에서 창극이나 희곡과 관련된 창작집을 발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이번 작품집에는 1부에는 창극 작품이 두편(도미부인과 개루왕, 정다운 한소리)이 담겨 있고, 2부에는 희곡 작품 4편(봄날의 새연, 그 오월의 오방색 양말, 불발탄이 터질 때, 마스크 쓴 개돼지들)이 수록돼 있다. 창극과 희곡은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무대에서 공연되는 공통점이 있다.

창극 ‘도미부인과 개루왕’은 백제 실존 인물인 도미부인과 당대 융성을 이룬 개루왕의 이야기이며 ‘정다운 한소리’는 화공인 정다운과 소리꾼인 한소리의 사랑을 모티브로 했다.

희곡 ‘봄날의 새연’은 맑은 날씨에 새연을 날린 아이들에게 엽총을 난사한 경비원과 이를 벌하려는 아주머니가 경찰서에서 벌이는 싸움을 그렸으며, 막개발 실상을 고발하는 ‘불발탄이 터질 때’는 지금은 터지지 않더라도 언젠가 터지기 마련인 ‘불발탄’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저자는 창작의 모티브를 지역에서 찾는다. “내가 발을 딛고 선 고향 땅”은 무궁무진한 영감의 원천이라는 의미다. 백제에 관심이 많았기에 ‘도미부인’을 알았고 이를 형상화했다. 특히 창극은 판소리가 바탕이기에 사설과 장단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다행히 그의 탯자리 보성은 판소리와 수묵화가 성행했던 곳이다. 창극을 쓸 때 “국악 공연에 자주 가고 국악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희곡을 쓸 때는 무엇보다 대사에 심혈을 기울인다. 대사는 느낌이 있고 힘이 있어야 좋은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생생한 대사를 얻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야 하지요. 삶에 바탕을 두지 않는 대사는 공허할 뿐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연극에서 배우는 작가의 대사를 가지고 표정과 몸짓을 만드니까요.”

작가로서의 계획을 물었더니 그는 “매일 일정량 이상의 글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일정한 양의 글을 쓰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적잖은 울림을 준다. ‘글은 많이 쓰는 사람 편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