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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王)
2021년 10월 11일(월) 02:30
정암(靜庵)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중종 때 개혁을 주창한 인물이다. 당시 지지 기반이 미약했던 중종은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사림파를 근위세력으로 끌어들였다. 자연스럽게 정암은 중앙정치 한복판에 서게 된다. 조광조는 향약 실시 등 민간 중심의 이상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당파싸움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이른바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역모자 신세로 내몰렸다. ‘주초’(走肖)는 조광조의 성씨인 ‘조’(趙)의 획을 풀어 쓴 파자(破字)이니, 조 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당시 수세에 몰린 훈구파는 희빈 홍씨를 통해 나뭇잎에 꿀을 발라 주초위왕이라는 글씨를 쓰게 했다. 나중에 벌레가 이를 갉아먹어 확연히 글자가 드러났다. 그렇게 해서 조광조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결국 그는 죽임을 당한다.

얼마 전 대선 예비후보 토론에서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에 한자로 쓴 ‘왕’(王)이라는 글자가 논란이 됐다. 윤 후보는 “우리 아파트에 다니는 몇 분이 써 줬는데 차에서 지우려 했지만 안 지워졌다”며 대통령과 관련된 주술적 의미라는 건 억측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추미애 민주당 후보는 “손바닥 ‘왕’(王) 자는 주권재민을 찬탈하겠다는 역모의 마음이 일찌감치 있었고 그가 정치검찰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윤 후보는 검찰 수장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검찰에 몸담았다. 검찰을 상징하는 디자인(CI)에는 중앙에 정의를 상징하는 칼의 형상이 들어 있다. 윤 후보의 손바닥 ‘왕’ 자는 그가 몸담았던 검찰의 상징물 속 칼의 형상과 오버랩된다. 사실 한자 ‘왕’(王)은 고대에 힘과 권력을 상징하던 도끼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시대와 의미는 다를지언정 유사한 사건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초위왕에서 시대의 개혁가를 죽인 모함을 떠올릴 수 있듯이 윤 후보의 손바닥 ‘왕’ 자 역시 정의라는 명분하에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던 ‘정치검찰’의 모습을 환기한다. ‘칼’과 ‘도끼’는 섬김이나 인권과 같은 단어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