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미안한 추석
2021년 09월 17일(금) 02:00
“보내고도… 미안해.” 어제 친구로부터 받은 휴대전화 문자다. 오랜 벗인 그는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온다. 사업을 하기에 평소 고마웠던 이들에게 선물을 보내는데, 품목을 고르는 데도 상당히 신경을 쓴다고 한다. 어느 해는 조기, 다음 해는 과일, 그 다음 해는 공산품 등…. 받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고르느라 며칠을 고민하기도 한단다.

친구는 이번 추석에 처음으로 소고기를 선물로 정했다. 하지만 친구가 선택한 선물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배달받은 직후 포장지를 뜯고 냉장고에 넣으려는데, 고기 색깔이 검은 빛을 띠는 게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고기를 덮고 있는 랩 포장을 벗기자 약간의 쉰내가 났다. 설마 하는 생각에 서너 점을 프라이팬에 구워 봤지만 냄새는 더 고약했다. 음식을 버려야 하나? 아까웠다. 솔직히 짜증도 났다. 이 사실을 친구에게 알려줘야 할지, 그냥 모른 척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수십 명에게 선물을 보내는 친구가 자칫 욕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휴대전화 속 친구의 목소리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생물이라 혹시 변하거나 품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직접 수십 명분의 선물세트 포장을 지켜봤다고 한다. 이후 친구는 모든 배달지에 전화를 걸어 이상이 없는지 물은 뒤, 상한 제품이 간 곳에는 다시 소고기를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주변에 멸치나 과일 등을 선물하거나 선물로 받았다가, 상한 경우가 있어 난감해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가을장마에 이어 태풍까지 겹치면서 습도가 높아진 탓이다.

코로나19로 명절이어도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님을 제대로 뵙지 못한 자식들은 불효한 것 같아 미안하고, 평소 도움을 준 사람에게 보낸 선물이 상했다는 소식에 ‘보낸 이’도 미안하고, 미안해 하는 ‘보낸 이’를 보고 ‘받은 이’도 되레 미안하고…. 올해는 어느 때보다 모두가 미안한 추석이다. 고마워서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이 고마운, 그래서 모두의 마음이 넉넉한 것이 추석 아니겠는가.

아직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 “괜찮네. 친구! 미안해 하지 말게, 그 마음 이미 받았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