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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문화, 장르가 되다
경제력 지닌 중장년 팬덤, 대중문화 전면에
문화 소비 경험 있는 ‘오팔세대’
강력한 팬슈머로 나서며
문화 산업·연예인 진화 이끌어
2021년 08월 23일(월) 20:55
임영웅 생일(6월 16일)을 기념해 버스 광고를 한 팬클럽 ‘충북 영웅시대’.
“가수에게 값비싼 선물보다 소중한 것이 음원 순위입니다. 멜론에 평점·응원댓글 남기러 출동합시다!”

회원이 11만 1000명에 달하는 김호중 팬카페 ‘트바로티’ 게시 글이다.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는 임영웅의 생일 6월 16일 전후로 버스, 지하철, 전광판에 축하·응원 광고를 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한국소아암재단에 성금을 기부했다. 송가인 팬클럽 ‘어게인’ 회원들은 송가인 콘서트가 열리면 주변 교통정리부터 입장 안내까지 앞장서 한다. 영탁 팬들은 ‘영탁 막걸리’가 가수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상품명 변경 요구와 함께 해당 막걸리 불매운동을 벌였다.

트와이스
송가인 임영웅 영탁 김호중 장민호 홍자 양지은 같은 신예 트로트 스타뿐만 아니라 남진 나훈아 김연자 주현미 진성 등 중견 트로트스타 팬클럽 회원들은 90%가 40대 이상 중장년이다. 트로트 가수뿐만 아니다. 동방신기 빅뱅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트와이스 마마무 등 아이돌 그룹 팬클럽의 중장년 회원도 적지 않다. 세계적인 팬덤을 자랑하는 방탄소년단 포털 기사에 댓글을 가장 많이 다는 사람들은 40대 여성으로 나타났고 연령대별 선호도 조사에서도 50대가 66.7%로 가장 높았다. 유재석 강호동 송강호 정우성 같은 예능인과 배우 팬 중에도 중장년이 많다.

‘스밍 총공(총공격)’ ‘덕질’ ‘현장 인증’ ‘댓글 달기’ ‘조공’ ‘굿즈’는 더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10~20대 팬덤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장년 회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트로트 가수를 비롯한 연예인 팬카페와 팬클럽 사이트에는 ‘스밍 총공 리스트’ ‘현장 인증’ ‘TV와 유튜브 시청하기’ ‘굿즈’ 관련 글과 사진, 동영상이 넘쳐난다.

임영웅 굿즈 300개를 구입한 홍경옥(68)씨.
강원 정선에 사는 68세의 홍경옥씨는 방송에 출연해 응원봉, 포스터, 그립 톡, 머그잔, 가방, 우산 등 300개가 넘는 임영웅 굿즈를 구매했다고 자랑했다. 송가인, 김호중 음반을 수십 장 구매한 팬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김호중의 1집 앨범 53만 장 판매, 송가인의 콘서트 매진 행진, 임영웅의 아이돌 차트 평점 랭킹 1위 석권과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유튜브 영상 조회 4,000만 건 돌파는 중장년 팬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트로트 스타를 비롯한 연예인의 중장년 팬덤이 강력하게 구축되고 있다. 중장년 팬덤은 대중문화 판도뿐만 아니라 중장년층 삶도 변화시키고 있다. 팬과 팬덤은 음반·음원 및 콘서트,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동영상, 굿즈를 소비하며 연예인의 인기와 흥행파워를 배가시킨다. 정기적인 만남, 회보, 인터넷을 통해 연예인의 정보를 유통하며 홍보 활동을 펼친다. 기부와 사랑 나눔 활동 등을 통해 이미지를 제고하며 연예인의 상품성과 경쟁력도 높인다. 연예인의 문제나 비판, 비난에 대응하며 여론을 조성하기도 한다.

팬과 팬덤은 대중매체 발달상황과 대중문화 시장규모, 수용자의 미디어 접촉도, 문화 상품 소비 정도, 경제 수준, 그리고 스타 시스템에 따라 지속해서 변해왔다. 대중문화가 태동한 1870~1945년 대중문화 초창기에는 연예인과 스타팬은 경제력 있고 대중문화 접촉 기회가 많았던 지식인과 기생, 프티부르주아가 주류를 이뤘다. 1950~1960년대 대중문화 발전기에는 생활 수준 향상과 대중매체 발달로 서민까지 대중문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고무신족’ 으로 불린 30~50대 중년 여성들이 열혈 스타 팬으로 활약했다.

1970~1980년대 대중문화 발전기에는 팬층의 변화와 분화가 전개됐다. 청년문화가 발흥한 1970년대는 20대 젊은 대학생들은 포크 가수 송창식 김민기 양희은에 열광했고 일부 20~30대 남성들은 호스티스물 영화 주연 배우,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에 환호했으며 10~30대 여성들은 트로트 스타 남진 나훈아의 팬층을 구성했다. 1980년대는 고도성장의 과실을 먹고 자란 10대들이 대중문화의 핵심적 소비층으로 나서는 동시에 스타 팬층의 주요한 구성원으로 진입했으며 조용필을 비롯한 일부 스타를 중심으로 팬클럽이 결성되면서 스타와 팬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됐고 ‘오빠부대’로 명명된 팬덤이 등장했다.

H.O.T와 팬들.
1990년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클럽 ‘요요’를 시작으로 연예인 팬덤이 본격적으로 구축됐고 ‘클럽 H.O.T’를 비롯해 ‘빠순이’로 지칭된 10대 여중·고생 팬덤이 대중문화를 주도했다. 인터넷과 SNS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2000년대 들어 팬덤 활동과 팬 문화가 크게 변모하고 팬과 팬클럽의 규모도 대폭 확대했다. 2000년대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글로벌 팬덤이 부상했으며 중년층 팬덤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삼촌 팬’ ‘이모 팬’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듯 동방신기 소녀시대 빅뱅 원더걸스 등 아이돌 그룹의 40~50대 중장년 팬이 등장했고 남진 나훈아 조용필 김민기 이문세 이선희 이승철 이승환 신화 god 등 10~20대 때 좋아했던 스타에 대해 중장년에 접어들어서도 계속해서 열광하는 팬들이 급증했다. 2010년대 ‘미스트롯’을 비롯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신드롬을 계기로 60~80대 장노년층까지 팬덤에 가세하면서 중장년 팬덤이 대중문화의 주체 세력으로 떠올랐다.

중장년 팬덤은 왜 강력하게 부상한 것일까. 경제적 능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이 많아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원하는 것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새로운 소비층으로 자리 잡은 50·60세대, 소위 ‘오팔 세대’ 증가는 중장년 팬덤의 원동력이다. 이들은 영화, 음반, 공연, 방송 등 문화 상품의 왕성한 소비를 통해 스타와 연예인 팬덤을 자연스럽게 형성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BTS 팬카페.
경제가 발전하면서 욕구와 욕망을 소비하는 시대로 전환된 것도 중장년 팬덤을 촉발했다. 스타는 사랑, 성공, 젊음, 소비 등 이상과 욕망 실현체로 팬들에게 다가가는데 중장년은 스타에 자신을 투사하거나 연예인과 동일시하면서 이루지 못한 꿈이나 채우지 못한 욕망을 대리 충족한다.

인터넷과 디지털의 발전과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OTT와 SNS의 대중화, 스마트폰의 상용화로 촉발된 미디어 환경과 대중문화 콘텐츠 생태계 변화 역시 중장년 팬덤을 본격화시킨 중요한 이유다. 유튜브, SNS 등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중장년 대중도 대중문화 콘텐츠와 연예인을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소비할 수 있고 팬활동을 용이하게 전개하면서 강력한 중장년 팬덤이 조성됐다.

김호중의 팬이 운영하는 카페 전경.
중장년이 ‘팬슈머(Fansumer)’로 나선 것도 중장년 팬덤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팬(fan)과 컨슈머(consumer)의 합성어인 팬슈머는 투자 및 생산 과정에 직접 참여해 상품이나 브랜드를 키워내는 소비자를 일컫는 신조어인데 대중문화 분야에서도 단순히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응원과 지원을 통해 무명 연예인과 지망생을 스타로 부상시키는 팬슈머로서의 중장년 팬들이 크게 늘었다.

물론 중장년 팬덤의 문제도 존재한다. 연예기획사와 스타의 상업적인 논리에 따라 움직이며 이윤 창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일부 연예기획사와 스타는 팬들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의 굿즈 구매나 무리한 조공 강요 등을 통해 수입을 극대화하고 있다. 음주운전, 폭행, 성폭행, 마약 투약 등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와 연예인들의 문제있는 행태에 대해 일방적 옹호로 일관해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