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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다, 골목길-전남] 역사·문화 품으며 아릿한 감성 충만
인연이 스치는 나주 ‘연애고샅’
아기자기 애틋한 목포 ‘옥단이길’
예술 감성 순천 ‘700년 골목길’
바다 품은 ‘여수 1004 벽화마을’
문학 숨결 광양 ‘정채봉 테마길’
역사·문화·예술 가득 ‘힐링 절로’
2021년 04월 05일(월) 22:15
여수 오포대(午砲臺)에 세워진 ‘별을 낚는 소년’ 조형물.
◇나주 ‘연애고샅’과 ‘징검징검 서부길’=‘고샅’은 골목이라는 의미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연애고샅’은 나주 금성관(보물 2037호) 동쪽편 담장과 민가사이에 나있는 좁은 골목길을 지칭한다. 골목길은 금성관 뒤편 ‘사창(司倉·관곡 저장창고)거리’ 나주추어탕에서 미향나주곰탕까지 남북방향으로 140여m 길이로 그다지 길지 않지만 무척 좁았다. 그래서 남녀가 지나칠 때 스칠 정도여서 연애하기 좋다고 하여 ‘연애고샅’이라 불렀다고 한다.

1935년에 건립된 중앙교와 ‘일제강점기 하수도길’~옛 나주극장~고조현 외과(옛 금남금융조합)~목사내아(琴鶴軒)를 차례로 지나 나주읍성 서문(映錦門)으로 향한다.

나주읍성내 골목길에는 고려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나주의 역사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1011년 거란군이 침입하자 현종이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외가인 나주로 몽진(蒙塵)을 왔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건재(健齋) 김천일 의병장이 나주 금성관 망화루앞에서 의병출정식을 가졌다. 또한 1894년 동학농민군은 나주성 서문을 공격했으나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퇴각해야했고, 1929년 11월 나주 항일 학생시위대는 옛 금남금융조합 사거리에서 ‘조선 학생만세’를 외쳤다.



목포 ‘옥단이길’ 상징물.
◇목포 ‘옥단이 길’과 ‘시화마을’=목포 목원동 골목길은 ‘옥단이 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옥단이’는 1930~1950년대 목포에서 살았던 실존인물이다. 물을 길어다주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허드렛일을 해주는 날품팔이꾼이었다. 어려서부터 옥단이를 지켜보았던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은 팔순을 맞은 2003년에 희곡 ‘옥단(玉丹)어!’를 집필했다. 구상한지 7년만에야 탈고한 작가는 작품해설에서 “천대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며, 남을 위해 베풀다가 길지 않은 생애를 마친 불행한 여인 옥단은 우리 민족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1930년대 지어진 일본사찰인 옛 동본원사(東本願寺) 목포별원(현 오거리문화센터)에서 첫 걸음을 뗀다. 법정 스님이 청년시절 불교에 귀의하는 계기가 됐던 장소인 ‘정광정혜원’이 지척이다. 노적봉 예술공원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걷다 보면 수화 김환기의 작품으로 랩을 씌운듯한 나지막한 건물과 고흐, 샤갈, 뭉크, 칼로 등의 초상이 그려진 ‘세계 예술벽화’와 마주하기도 한다.

유달 예술타운(옛 달성초등학교) 아랫마을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감성벽화들이 벽면을 꾸미고 있다. 건물 모퉁이에 그려진 꽃을 든 소년 작품과 창문을 가마 창으로 절묘하게 대체한 작품 등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소설가 박화성의 단편소설 ‘하수도 공사’(1932년 작)의 실제 배경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목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목포 시화마을 포토존.
목포 서산동 ‘시화(詩畵)마을’은 목포항을 내려다보는 해안가에 자리하고 있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이 2015년부터 3년간 인문도시 사업의 하나로 지역 시인과 화가, 주민들과 함께 조성했다.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의 촬영지인 ‘연희네 슈퍼’를 조금 지나면 골목길은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다. 좁디 좁은 첫째 골목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바다를 품은 보리마당’에 도착한다. 흑백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바보사진관’과 카페 ‘빨강머리앤’, ‘우인 갤러리’ 등 젊은 세대 취향의 문화예술 공간이 몰려있다.

둘째 골목 벽면에는 주민들이 쓴 시가 적혀있다. 시구마다 주민들의 고단한 삶과 애환이 담겨있다.

“외동딸이 너무 이뻐서/ 학교 휴교령 내린다고/ 공부를 못하게 한 우리 아부지/ 땡꽁놀이 하면서 철없이 뛰어 놀았는데/ 벌써 막둥이 할매가 되어 경로당 신세.”(이난금 ‘막둥이 할매’)



순천시 금곡 에코지오마을 골목길.
◇문화로 피어나는 순천 ‘700년 골목길’=전남도 순천의료원 앞 골목길 도로명은 서문성터길이다. 헐린 성벽 자리는 도로(호남길)로, 메워진 해자는 골목길로 명맥을 잇고 있다.

옛 읍성내 골목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행동 골목길 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단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골목이름 조차 ‘장미아파트 골목’, ‘텃밭골목’, ‘서문성곽 골목’, ‘행금목욕탕 뒤안 골목’처럼 정겹다. 골목 담재료는 예스러운 황토를 비롯해 붉은 벽돌, 시멘트 블록 등 다양하다. ‘예술공간 카메라타’와 ‘독립운동가(박순동·문경홍) 생가터’와 불쑥 만나기도 한다.

순천웃장으로 연결되는 ‘감사터길’ 아스팔트 바닥에는 ‘순천부읍성 701’ 동판이 박혀있다. 옛 읍성의 흔적을 알려준다. 150여 년 전 순천의 모습은 순천의료원 인근 문화광장 바닥에 새겨진 ‘1872년 순천부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월 완공된 ‘남문터 광장’과 청렴의 상징인 팔마비(八馬碑·보물 제2122호), 순천향교, 문화의 거리 등이 자리한 순천 원도심은 도시재생 사업에 따라 ‘옛’과 ‘오늘’, ‘내일’을 품고 있다.



◇바다를 품은 여수 ‘고소 1004 벽화마을’=고소동 벽화는 주민들의 힘으로 지난 2011년 완공됐다. 중앙동 4기 주민자치위원회가 마을공동체 형성사업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주민들과 지역단체가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성금을 모았다. 해양공원에서 고소동을 가로질러 완성된 벽화 길이는 1004m. 자연스럽게 ‘고소 1004 벽화마을’로 이름 붙여졌다.

해변 이순신광장로에서 벽화골목길로 들어서는 입구는 크게 ▲이순신광장문 ▲낭만포차문 ▲종포문 등 3곳이다. 바닷가 해발 117m의 나지막한 야산에 조성된 마을이기 때문에 계단은 필수적이다. 골목길을 힘겹게 오르다 걸음을 멈추고 등 뒤로 시선을 돌리면 바다다. 올망졸망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과 여유로운 바다의 풍경은 대조적이면서도 잘 어우러진다.

사람한명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천사벽화마을’ 골목길. 그렇지만 풍경만은 일품이다. 주민들 역시 고단하고 팍팍한 삶속에서도 바다를 보며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여수 밤바다’는 그래서 더욱 애틋하면서도 아름답게 다가선다.



광양시 동외리사무소 벽면을 장식한 ‘정채봉과 아름다운 사람들’ 벽화.
◇광양 동외마을 ‘정채봉 문학테마길’=올해는 정채봉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세암’과 ‘초승달과 밤배’와 같은 빼어난 작품을 남긴 작가는 “덴마크에 안데르센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정채봉이 있다”(정호승 시인)라는 찬사를 받았다. 순천시 해룡면 신성포에서 태어난 작가는 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광양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을 보냈다.

일제 강점기인 1942년 건립돼 광양의 행정중심 역할을 해온 옛 광양군청사 건물은 현재 광양문화원으로 쓰이고 있다. 청사 동쪽 널찍한 골목이 ‘정채봉 문학테마길’이다.

골목길에는 광양시 문화도시사업단 주도로 ‘오세암’ 주인공인 다섯 살 소년 ‘길손이’와 누이 ‘감이’ 조형물을 비롯해 ‘우리읍내’(작가 김미경), ‘눈꽃’(작가 류종원) 등 다양한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2층 건물인 동외리사무소 북쪽 벽면은 ‘정채봉과 아름다운 사람들’ 벽화로 가득하다. 지난해 1월 완성된 벽화에는 작가의 초상과 함께 어린왕자, 초승달, 별, 채송화, 세 명의 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3명의 인물은 설명문에 따르면 작가에게 큰 도움을 준 광양사람들이다. ‘도장방 아저씨’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작가에게 나무도장을 파주었고, ‘이균영 교수’는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의 꿈을 함께 키운 친구였고, ‘우체부 정샌 아저씨’는 중학 진학을 포기하고 신문배달을 할 때 작가에게 용기를 북돋워준 분이라고 한다.

골목길 인근에는 ‘빈터’가 마련돼 있다. 작가의 작품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운영시간은 오전 9~오후 6시.(광양읍 읍성2길 6-17·061-761-0701)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