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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중화 아이콘’ 미술사가 양정무 교수
“우리 안에 미술적 본능 깨워야 삶과 사회가 풍요로워져”
2020년 12월 21일(월) 10:00
미술사학자 양정무(53)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교수는 미술 속에 담긴 이야기를 끄집어내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들려준다. 교양미술서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사회평론 刊) 시리즈와 jtbc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등 글쓰기와 TV출연, 강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미술대중화 아이콘’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최근 양정무 교수를 서울에서 만나 흑사병 이후의 르네상스 시대와 예술가, 그리고 미술 대중화 등에 대해 들었다.

◇“르네상스는 중세의 ‘뉴 노멀’”=“지금 코로나 상황을 이해하는데 과거 흑사병이 중요하지만, 과거의 흑사병을 이해하는데도 역설적으로 지금 상황이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사실 르네상스는 중세의 ‘뉴 노멀’이에요.”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교수는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을 겪으면서 그동안 ‘책에서만 공부했던’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하던 유럽의 당시 분위기를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흑사병에 대한 자료를 보며 부족한 부분은 행간(行間)을 읽으며 채워야 했다. 그는 지난 2003년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때 학회에서 주최하는 국제 세미나를 준비하며 애로를 겪은 것을 계기 삼아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 등 ‘팬데믹’과 새로운 미술간 연관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흑사병이 1347년부터 유럽 사회에 퍼져나갈 때, 치료제나 백신이 없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꼼짝없이 당했다. 도망가기(거리두기)와 격리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격리라는 의미의 영어단어 ‘콰란틴’(Quarantine)은 40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콰란타’(Quaranta)에서 온 것이다. 당시 베네치아 정부가 외부에서 온 선박에 대해 베네치아항 앞바다에 40일간 정박한 후 이상이 없으면 입항을 허가한 데서 유래했다.

흑사병 시대는 결과적으로 중세 유럽 사람들의 기독교 세계관과 일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사람들의 시선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향했다. 거기에 ‘인간’이 있었다. 이러한 ‘뉴 노멀’은 14~16세기에 이성(理性)과 예술, 과학이 발달하는 르네상스 시대라는 새로운 꽃을 피웠다.

제8기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에서 ‘전염병이 세계 미술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강연중인 양정무 한예종 교수.(2020년 10월)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엄청난 대재앙 극복하며 ‘인간’ 발견=르네상스는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시작됐다. 피렌체는 흑사병(1347년) 이전에도 대기근(1315~1322년)과 대홍수(1333년), 은행파산(1344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에도 ‘촘피(양모를 손질하는 기술자)의 난’(1378년)과 밀라노의 공격 등이 이어지며 존망의 위기에 처했던 도시였다.

1400년대에 접어들면서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피렌체 정부는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공공미술 프로젝트)을 추진한다. ‘피렌체 대성당’에 들어가는 청동 문을 기베르티의 디자인으로 새로 만들고, 본래 곡물창고로 사용하다 성당으로 개조한 ‘오르산미켈레’의 외벽을 조각상으로 꾸몄다. 또한 피렌체 대성당에 16년에 걸친 공사 끝에 직경 45m 규모의 거대한 돔을 올렸다. 돔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는 고대 로마의 신전인 판테온(Pantheon)에서 영감을 얻었다.

흑사병이 대 유행하던 팬데믹 시대에 미술이 사람들을 위로했다. 의존할 대상은 신(神)과 성당 밖에 없었다. 양 교수는 성당에서 의식을 진행하는 제대 위에 걸린 제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당 제대화(제대화(祭臺畵) 소재로는 성모상(聖母像)과 함께 흑사병에 걸린 사람을 구원해 주는 성인으로 추앙받은 ‘세바스티아노 성인’이 많이 그려졌다.

역설적으로 흑사병 이후 대중과 미술의 거리가 좁혀졌다. 흑사병에서 살아남아 지중해 중계무역과 섬유산업 등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계층은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미술품을 구매하려고 했다. 미술작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1347년 첫 발병한 흑사병은 르네상스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다다이즘(Dadaism)이라는 새로운 예술 사조를 낳았다. 과거 사례에서 보듯 팬데믹은 한순간 문화예술 활동을 위축시키지만 그것을 거름삼아 새로운 꽃을 피웠다. ‘코로나 19’를 1년여 겪으며 대중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태도와 접근방식도 변했다. ‘코로나 19’ 이후 미술 등 문화예술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미술관, 박물관이 다시 열리고 있는데 관객들이 굉장히 진지해졌어요. 예술을 바라보는 눈이 옛날보다 따뜻해진 거예요. 언제라도 볼 수 있었던 명작, 명품들이 이제는 소중한 겁니다. 연극을, 미술작품을 어떻게 모니터로 보겠느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테크놀로지는 극복할 수 있는 점이 있을 겁니다. 문화비평가 발터 벤야민이 얘기한대로 ‘아우라’(Aura), 대체 불가능한 (미술품) 원본의 진실성은 복제 불가능하죠. (그림을) 향유하는 방식이 하나의 방향으로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온라인 고화질 그림과 원작의 차이는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온라인으로 만난 사람을 직접 만나면 느낌이 어떻습니까? 팬데믹 상황에서 온라인 정보가 필요하고,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더 많이 소통의 근거가 될 거에요. 콘택트는 짧게, 온택트는 길게….”

◇‘미술이야기’ 시리즈, 독자 호응 뜨거워=미술 대중화에 앞장서온 양 교수는 ‘미술대중화의 아이콘’, ‘서양미술사 학계의 유홍준’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게 그의 장점이다. 미술 대중화에 대해 그는 “눈높이를 낮추는 게 아니라 맞추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술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근본적인 표현방법이거든요. 어린 아이들은 만들고, 그림 그리잖아요. 모래만 주면 즐거워하잖아요. 우리도 그런 과정을 겪었어요. 우리 안에 미술 하는 힘이 있어요. 우리 안에 있는 미술적 본능이 많이 깨어서 나와야 우리들 삶과 사회가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양 교수는 지난 2016년 5월부터 교양 미술서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시리즈(사회평론 刊)를 펴내고 있다. 1권(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부터 6권(초기 자본주의와 르네상스의 확산)까지 누적 집계 20만여 부가 팔릴 정도로 독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책은 술술 읽힌다. 우선 독자들의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일대일 강의식 문체로 풀어냈다. 또한 주요 작품사진을 수록하고 도해(圖解)와 지도,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편집으로 가독성을 높였다.

양 교수는 방학기간인 지난 2월, 시리즈 7권 집필을 위해 이탈리아 로마 답사를 다녀왔다. 이탈리아가 ‘락 다운’(Lockdown·이동 봉쇄령) 조치를 취하기 직전이었다. ‘난처한…’ 시리즈는 10권으로 완결 지을 생각이다. 시리즈 말미에 ‘한국 미술사’를 어떻게 다룰지는 고심하고 있다.

“제 책의 모든 에너지는 한국 미술사로 간다고 보셔도 돼요. 왜냐하면 지금 벌어지는 문화적 현상의 이해와 성찰이 들어가 있지 않은 미술사는 조금 가벼울 수밖에 없고, 아니면 뭔가 빠져있기 때문에…. 제가 한국 미술사에 발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한국미술의 세계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의미부여를 해야 할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