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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2020년 09월 24일(목) 00:00
요즘 서점에 들르면 꼭 ‘작은 갤러리’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책 표지로 회화 작품들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고흐의 작품 등 ‘명화’들이 가끔 쓰였다면 최근엔 낯선 현대회화가 자주 보인다. 덕분에 새로운 국내외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된다. 아울러 인터넷에서 그들의 작품을 찾아보며 그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표지로 삼은 책들이 있다. 얼굴 표정 등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앞모습보다 왠지 미지의 세계 같은 뒷모습이 훨씬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김민정 시인이 편집자로 있는 ‘난다’의 책들은 저자나 내용도 그렇지만 늘 ‘표지’가 궁금하다. 20만 부가 판매돼 최근 ‘리커버판’이 나온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표지는 초판에도 쓰였던 기드온 루빈의 작품이다. 눈·코·입이 없는 얼굴의 두 사람이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이 담긴 초판 표지도 좋았지만 머리를 묶은 한 여인의 ‘뒷모습’을 담은 이번 표지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역시 ‘난다’에서 나온 문학평론가 고(故) 황현산의 책 표지는 모두 독일 작가 팀 아이텔의 작품이다. 검정 옷을 입은, 머리가 희끗한 한 남자가 무언가를 쓰고 있는 뒷모습을 담은 ‘무제(관찰자)’는 베스트셀러 ‘밤이 선생이다’에 쓰였다. 반바지 차림의 노인이 푸른 가방을 맨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작품 ‘블루백’(Blue Bag)은 트위터 모음집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의 표지가 됐다. 또 다른 책 ‘사소한 부탁’ ‘잘 표현된 불행’에도 그의 작품이 표지에 쓰였다.

그밖에 띠지에 적혀 있는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글귀가 사람을 뜨끔하게 하는 언론인 권석천의 ‘사람에 대한 예의’나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역시 표지에 강렬한 인상의 남자 뒷모습이 보인다.

미셸 투르니에가 에두아르 부바의 흑백사진 50여 점과 함께 펴낸 산문집 ‘뒷모습’에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는 대목이 나온다. 결국 나의 진짜는 ‘뒷모습’에 있을지도 모른다. 숨기고, 치장하는 게 불가능한.

/김미은 문화부장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