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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솔아’ 이자람 “헤밍웨이가 그린 ‘노인의 사투’에서 용기 얻기를”
‘노인과 바다’ 판소리 무대 선보인 정통 소리꾼
동요 ‘내 이름’의 주인공 … 10살 판소리 시작
브레히트 희곡 등 판소리로 제작
“관객들 공연 참여 함께 호흡·공감”
2020년 08월 24일(월) 00:00
소리꾼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 공연이 지난 21일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열렸다.
“나는 왜 너를 죽여야 할까, 죽이지 않고 이길 수는 없을까/우리는 늘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기다리는 것들은, 결국은 나타날까”

지난 21일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소리꾼 이자람이 ‘노인과 바다’를 선보였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판소리로 재창작한 이번 무대는 노인 산티아고와 그가 생업을 꾸리는 바다를 중심으로 약 120여분간 펼쳐졌다. 1막에서는 노인이 깊은 바다로 나가 다랑어와 거대한 청새치를 잡고 이틀을 꼬박 겨루는 모습을, 2막에서는 상어떼의 습격으로 인해 힘들게 잡은 청새치를 다 잡아먹히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려냈다.

어린 시절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유명한 노래 ‘내이름’을 불렀던 이자람은 대학에서 판소리를 전공한 정통 소리꾼이자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보컬, 뮤지컬·창극·연극 등의 음악감독, 각색가, 작창가, 배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전방위 예술가다. 그녀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씨는 “7월에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가 한차례 취소 되었던 광주 공연이었다”며 “광주에는 존경하는 소리꾼 분들이 많다. 광주에서 내가 직접 만든 판소리 작품을 올리는 것은 정말 크고 깊은 기쁨인데, 그것이 한번 취소 되고 나니 더욱 아쉽고 그리운 공연이었다”고 전했다.

이 씨는 10살 때 판소리를 시작, 은희진·오정숙·송순섭 등을 사사했으며, 서울대 국악과 학사, 서울대 대학원 국악과 석사를 졸업했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과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판소리로 재구성한 ‘사천가’와 ‘억척가’를 비롯해 ‘이방인의 노래’, ‘추물/살인’ 등의 작품으로 활동했으며, 희곡이나 근현대 소설을 판소리의 다양한 소재와 형식으로 개발하는 작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수 많은 책 중 특히 소설을 좋아한다는 그는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읽고 “아, 이거 내 작품으로 새롭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씨는 이런 생각이 자주 드는 건 아니지만 마치 낚싯대를 내려놓고 한참 기다리던 중 대어를 낚은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노인과 바다’를 읽자 마자 어떤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작업하기 시작했죠. 노인이 청새치를 만나고, 사투를 벌이고, 결국 승리하지만 청새치를 다 잡아먹히고 마을로 돌아오는 이 2박 3일의 거대한 사건이 사실 그렇게 큰 일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늘 겪는 크고 작은 사투와 같기를 바랬어요. 물론 엄청나게 큰 사건이긴 하지만 이런 사건이 인생에 딱 한번 온다고 하면 좀 슬플 것 같아요. 이 사건을 앞으로도 계속될 노인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인 것처럼 마무리 짓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그녀는 이번 광주 공연을 앞두고 매일 ‘노인과 바다’ 전막을 홀로 연습하면서 스스로 힘을 얻었다. 연습을 하면서 보니, 노인은 계속 기다리고, 버티고, 지치지 않고, 꺾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더라는 것. 그는 “코로나 19로 많은 것이 멈추고, 마비되고, 취소되는 시대에서, 노인의 모습을 보고 많은 힘을 얻었고, 관객들로 하여금 공연에 참여하게 하면서 이러한 힘을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공연을 시작하면서는 판소리와 추임새를 낯설어하는 관객들에게 ‘얼씨구’, ‘좋다’, ‘잘한다’, ‘음~’ 등의 추임새를 소개하기도 했고, 마을 사람들이 노인 산티아고를 칭찬하는 대목에서는 자진모리장단을 넣어 관객과 함께 손뼉을 치며 다시 불러보는 등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함께 호흡했다. 특히 깊은 바다 심연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에게 휴대폰 플래시를 활용, 불빛을 흔들게 해 함께 바닷속 모습을 만들어나갔다.

사실 희곡이나 소설 등을 판소리로 재탄생 시키는 작업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꾸준히 도전하는 이 씨는 “내 삶과 무의식, 의식과 가치들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을 하며 ‘왜 이 작품을 판소리로 하고 싶은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을 잘 보내야 무대 위까지 무사히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다”며 “작품을 무대에 올렸을 때 관객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공감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소리꾼으로 관객과 만나는 순간에 대해 “정말 귀하고 놀라운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음악감독, 각색가 등으로 일할 때는 작업과정이 바쁘고 힘들지만 무대에 오르는 공연을 볼 때에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반면, 소리꾼으로 무대에 설 때는 체력관리, 이야기 전달 등으로 인한 부담도 많지만 이 씨 자신에게 너무나 필요하고 강렬한 일이라는 것이다.

“소리꾼으로 공연을 앞두면 다른 일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그런데 그 모든 부담과 예민함이 무대에 서서 관객을 마주하는 순간 갑자기 기쁨으로 변해서 나무가 가지를 뻗어 나가듯 저도 모르는 곳으로 퍼져 나가는 기분이 들어요.”

그녀는 코로나 19로 국내·외 여행이 어려운 시기,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코로나로 해외일정들이 모두 취소됐어요. 앞으로 가까운 미래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올해, 남은 시간동안은 책을 많이 읽을 예정이예요. 최근 셰익스피어 비극집을 새로운 번역본으로 구매했고, 지금은 파블로 네루다의 자서전을 읽는 중입니다. 책 속의 넓은 곳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또 좋은 고기를 낚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되겠지요.”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