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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학교 교명 ‘송강’ 논란
2020년 07월 10일(금) 00:00
[박 정 욱 제2사회부 차장]
전남교육청이 전남 첫 공립 대안학교를 담양에 설립한다. 대안교육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의 학업 복귀와 대안교육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교육청은 최근 공모를 통해 교명을 ‘송강고등학교’로 확정했다. 교명에 대해 우리나라 수종을 대표하는 소나무처럼 학생들이 곧고 푸르기를 바란다는 뜻의 ‘송(松)’과 강물처럼 자유로운 사고를 지니기를 희망하는 ‘강(江)’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송강’은 학교 주변에 흐르는 증암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교명 풀이가 참 좋다. 교육청이 제시한 ‘스스로 서고, 함께 성장하며, 미래를 꿈꾸는 교육공동체’라는 교육비전도 잘 담아냈다.

그러나 향토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교명인 ‘송강’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송강’하면 무엇이 떠오른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주인공 ‘송강 정철’일 게다. 실제 정철은 증암천의 다른 이름인 ‘송강’을 바라보며, 이를 호로 삼았다.

송강은 조선 중기 당대 최고 엘리트였다. 송강은 젊은 시절 담양에서 공부했다. 스승은 면앙정 송순, 고봉 기대승, 하서 김인후 등 호남의 명사들이었다. 27세때 고시(문과 별시)에 수석 합격해 율곡 이이와 함께 호당(국비 장학생)에 뽑히는 등 요직을 거쳐 우의정·좌의정에 올랐다.

당쟁에 따른 풍파는 있었을지언정 배움의 길에서만큼 그는 ‘꽃길’만 걸었다. ‘송강고’를 다닐 학생들의 환경과 처지와는 다름이다.

물론 논란은 여기에 있지 않다. 송강이 당대의 호남 지식인 1000명을 죽음으로 내몬 잔혹한 정치인이라는데 있다.

‘정여립의 난’이 불러온 기축옥사, 조선의 정치 풍토를 갈라버린 사건이다. 논리로 싸우던 당쟁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으로 바꿔버린 사건이다.

기축옥사는 서인이었던 정여립이 하룻밤 사이에 여당인 동인으로 당적을 옮기고, 그가 반역을 꿈꾸다 발각되면서 벌어졌다. 역적 토벌을 빌미로 이후 3년 동안 1000명에 달하는 동인 선비가 학살당하고 유배당한 참극이다. 당시 수사반장(위관)은 서인의 당수 ‘송강 정철’이었다.

일가족이 몰살당한 동인의 당수 ‘이발’의 후손은 부엌칼로 고기를 다질 때면 ‘정철정철정철’하며 도마를 두드린다고 한다.

그는 서인의 당수로, 당파 이익에 골몰했다. 전남교육 철학인 ‘인간·미래·민주’는 없었다. 그에 의해 호남 지식인 1000명이 희생되면서 조선 후기 중앙정계에서 호남은 사라지고 말았다.

송강의 사상과 업적은 뒤로 하고, 배움의 길·인간 관계를 놓고 본다면 전남교육청이 설립하는 공립 대안학교의 ‘교명’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jw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