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2020년 06월 15일(월) 00:00
[최유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이 지난주부터 네 번째 시즌을 새로 시작했다. ‘비긴 어게인’은 존 카니 감독이 만든 동명의 원작 영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원작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각자 심각한 좌절과 절망을 겪고 있던 주인공들이 음악을 통해서 서로 연대하고 능동적으로 삶의 희망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뜻의 ‘비긴 어게인’이라는 제목은 실패한 음악 기획자인 남자 주인공 댄(마크 러팔로)이 무명의 뮤지션인 여주인공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를 만나 음악적 소통과 관련한 초심(初心)을 되찾아 가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영화 ‘비긴 어게인’ 속의 댄이 그레타와 함께 뉴욕의 거리 곳곳에서 야외 연주 녹음을 하는 인상적인 장면들은 음악 예능 ‘비긴 어게인’에서 한국 뮤지션들에 의한 실제 길거리 공연(버스킹) 장면으로 재연되어 왔다. ‘시즌3’까지 이 길거리 공연들은 모두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행해졌다.

한국 내에서는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음악인들(‘시즌1’의 경우 윤도현, 이소라, 유희열)의 ‘초심 찾기 프로젝트’를 위한 익명성의 필요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작 영화 속 서구적 거리 풍경(무엇보다 서양인 청중)을 모방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한 의도 또한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시작한 네 번째 시즌은 이전 시즌과 달리 ‘한국’에서 촬영된다. 이 때문에 ‘비긴 어게인 코리아’라는 새로운 프로그램 제목을 썼는데, 이는 단순히 촬영 장소를 특기하는 의미에 그치지는 않는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시즌4’의 해외 로케이션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서 역발상으로 이번 사태로 인해 경제적 불황과 여러 어려움을 겪는 한국민들에게 위로와 힐링(치유)의 체험을 준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결국 ‘비긴 어게인 코리아’라는 프로그램 제목은 ‘화이팅 코리아’와 비슷한 의미로 새겨진다.

길거리 공연이라는 프로그램 콘셉트에 비해 과도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Korea)을 가리키는 ‘K’라는 알파벳 이니셜이 곳곳에 붙는 한국 대중문화 전반의 국가주의적 정서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유럽에서 촬영된 ‘시즌3’까지의 ‘비긴 어게인’에도 이러한 국가주의적 정서는 매순간 작동하고 있었다. 서양인 청중에게 ‘한국의 대중음악’이 어떻게 들릴까 하는 집단 무의식적 호기심의 충족(한국 음악에 감동하는 서양인들의 모습)이 이 프로그램의 대중적 인기를 이끈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음악 예능 ‘비긴 어게인’이 과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암울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몇 가지 문화적 함의를 갖게 될 듯하다.

유럽의 이국적 거리 풍경을 배경으로 해외여행의 환상과 익명성이 안겨다 주는 자유에 시청자들이 낭만적으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전 시즌들에 비해, 인적이 끊긴 황량한 인천 국제공항 로비에서 첫 버스킹을 시작한 ‘비긴 어게인 코리아’의 뮤지션들은 좀처럼 낭만의 틈입을 허락지 않는 앙상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여전히 라이브 음악의 감동이 있고, 자동차 안에서 공연을 즐기는 ‘드라이브인 공연’과 같은 여러 대안적 공연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기도 했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무엇보다 줄을 서서 발열 체크와 손 소독제의 안전 수칙 절차를 거친 뒤 객석 2m 거리 두기를 위해 띄엄띄엄 놓인 매트에 질서 있게 앉은, 예외 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는 청중들은 더 이상 자유로운 길거리 공연의 청중일 수 없었다.

지역의 관점에서 주목할 점도 있다. ‘비긴 어게인 코리아’는 인천과 대구를 필두로 한국의 여러 지역을 순회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전 시즌에서 한국의 뮤지션들이 유럽의 청중들로부터 평가받는 느낌이 적지 않았다면, 이번 시즌에서 한국 내 지역 청중들과의 관계 맺기가 어떻게 연출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유럽의 공간에서는 익명이거나 무명이었을지 모르지만 한국 내에서는 이미 유명인인 그들이다. 그들이 과연 무엇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골목 상권까지 파고드는 대기업처럼 지역의 거리까지 방문해 오는 저 ‘유명 버스커’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