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서의 ‘페스트’, 저항하는 인간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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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페스트’, 저항하는 인간의 연대기
2020년 06월 08일(월) 00:00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마스크가 생필품이 된 후, 불과 반 년 전만 해도 당연했던 ‘일상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이 고통스러운 사실은 삶과 연관된 모든 것이 언제든지 압류되거나 구속되며,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다. 의심 없이 지속될 것으로 믿었던 삶의 조건과 형식이 철저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두려움과 무력감은 깊어진다. 이런 비극적 재앙과 불행 속에서 유일하게 해야 할 일은 그래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 더 단단한 연대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최근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작품인 ‘페스트’가 출간 73년 만에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다시 올랐다고 한다. 페스트는 중세 유럽의 인구를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게 한 전염병이다. 그런데 카뮈가 말하는 ‘페스트’는 은유로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완성된다. 카뮈에게 페스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고 반인간적 수단을 동원했던 나치의 전체주의와 그 동조 세력이었다.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서 전쟁이라는 부조리와 함께 삶을 파괴하는 모든 악과 부정(否定)을 은유하며 이에 저항하는 인간을 역설한다. 이런 의미에서 페스트는 모든 비인간적 굴종과 억압, 인간성의 파괴, 진실의 조직적 왜곡, 반역사적 불의의 확산(가짜 뉴스) 등에 대한 상징이다. 그래서 이 페스트 상황은 실상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 상황의 은유다. 여기에서 실존하는 유일한 주체는 개인이며 자기 존엄을 지키려는 자유의지는 굴종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다.

작품 속 오랑이라는 도시는 걷잡을 수 없게 퍼지는 페스트로 인해서 완전히 봉쇄된다. 사람들은 대혼란에 빠지고 저마다 빠져나갈 길을 고민한다. 도시의 봉쇄는 곧 자신들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적 삶의 봉쇄이기 때문이다. 삶에는 자물쇠가 채워지고 죽음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지르는 실수는 자신들의 감정에 감금되는 것이다. 감정의 수인이 되어서 서로의 연결은 바닥까지 무너지고 분노와 허탈, 배신감 등이 지배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렇게 해서 페스트라는 폭력은 우리에게 무기력과 허무주의의 굴종을 가장 거칠고 비열한 방식으로 요구하고 지배한다.

카뮈는 나치의 야만적인 전쟁을 페스트로 은유하였고, 그 전쟁의 바이러스가 우리 안에 있으며, 이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페스트를 퍼트리는 사람 또한 우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있었다”고 말하는 또 다른 주인공 타루는 바로 불완전하고 불안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우리는 실상 페스트 환자이면서 페스트와의 투쟁하는 모순된 존재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 모순의 자각을 통해서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인간성의 가치가 드러난다. 공포와 불의가 절정에 달한 폐쇄된 도시에서 의사인 주인공 리유는 그저 ‘인간’이고자 하는 타루와 페스트 환자를 돌볼 뿐 어떤 거창한 이념의 이름표도 사상적 수식어도 거부한다. 이러한 리유의 행동은 혼자서 상황을 벗어나려던 사람들에게 “혼자서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라는 깨달음을 준다. 페스트라는 악과 억압에 맞서는 유일한 수단은 저항의 연대와 인간애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페스트의 은유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개인의 운명 같은 것’을 넘어서 모두의 문제인 역사 앞에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길고 잔인했던 식민지 역사 속에서 모질게 훼손된 인간 존엄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책임을 묻고자 했던 여성 운동과 노력이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이 모든 것이 이용과 배신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폐기되어야 맞는가. 하지만 은유로서의 페스트는 자칫하면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고 결국 피해자의 고통만 남을 수도 있음을 말한다. 그리해서 서로를, 카뮈가 처음 작품의 제목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역사의 ‘수인들’로 만들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목욕물 버리려다 귀한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할까 두려운 것이다. 카뮈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고 나는 믿는다.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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