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종교 성지 영광으로 역사·힐링 여행
![]() 천년고찰 불갑사. |
1. 백제불교 문화순례 ‘불갑사’
◇천년고찰 백제불교의 효시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침류왕 원년(364)에 인도 서북지역의 간다라 마라난타 성인이 중국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법성포에 당도하며 불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처 불(佛), 첫째 갑(甲), 절 사(寺)’라는 한자어처럼 불갑사는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와 처음 세운 사찰이다. 모악산이라 불리던 산 역시 불갑사가 들어서며 ‘불갑산’이라 불리게 됐다.
불갑사는 세 가지 간다라 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대웅전 지붕 한 가운데 툭 튀어나와 있는 스투파, 소슬꽃무늬와 보리수 문양, 보상화문의 문양이 조각된 화려한 색감의 대웅전 정문, 석가모니불을 북쪽에 놓고 남쪽을 바라보게 배치해 대웅전의 정면과 우측면을 모두 출입문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 것이다.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는 불갑사
불갑사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는 고려 충정왕 3년(1350) 각진국사가 삼창을 하면서부터다. 당시에는 31개의 암자에 1000여명의 스님이 머물렀던 으뜸 사찰이었다고 한다. 각진국사가 입적한 후 제자들이 사리함을 불갑사로 옮겨왔으며, 왕명으로 비문이 지어졌다. 지금도 불갑사 경내에는 각진국사비가 모셔져 있다. 하지만, 정유재란과 6·25 한국전쟁 등으로 사찰이 완전히 전소되면서 현재는 비문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불갑사 일주문을 지나면 탑원과 108좌대가 있다. 마라난타의 출신지인 간다라 양식에 따라 조성된 탑원을 본뜬 것이다.
불갑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3.5m 크기의 목조 사천왕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59호)이 있다. 전북 무장 소요산 연기사에 있던 사천왕상은 연기사가 전소되면서 설두대사에 의해 1876년 불갑사로 옮겨졌다. 그 이후부터는 ‘사천왕의 보호 덕분’에 불갑사의 전각이 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2. 백제불교 문화순례 ‘최초 도래지’
◇마라난타 존자가 처음 발을 디딘 곳
마라난타가 백제에 처음 발을 디딘 법성포로 들어서면 23.7m 높이의 사면대불상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8월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뒤편 주차장에 새로 생긴 엘리베이터를 타면 정상에 있는 사면대불상 앞에 멈춰선다. 승강기에서 내려 바로 마주하는 곳은 마라난타 존자, 좌우보처로 관음과 세지보살이 있으며, 주존불인 아미타불이 정면에 있다.
각각 시기는 다르지만, 중국에서 불교를 전래 받은 고구려·신라와 달리 백제는 인도승인 마라난타 존자를 통해 불교를 전래받아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받아들였다.
이 곳에는 간다라불교 문화예술의 특징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간다라 유물관, 간다라 사원 양식의 대표적인 탑원이 자리하고 있다.
◇다채로운 불교 미술의 원류, 간다라의 흔적
간다라 유물전시관의 유물들은 모두 파키스탄 대사관의 협력을 얻어 건너온 것이다. 스와트, 페샤와르, 탁실라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간다라 불교문화에 대한 실명과 실제 2~6세기경 소조불상불두들과 전각 등 석조 문화재들이 있어 간다라 양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간다라 유물전시관을 나오면 108개의 계단이 보이고, 그 시작점에 부처님의 발자국 모양이 찍힌 ‘불족적’이 있으며, 그 끝에 사면대불이 있다. 108번뇌를 하나하나 녹이며 108개의 계단을 올라 부처님과의 만남에 이른다는 의미다.
족장부터 사면대불로 향하는 계단 가운데에는 부용루라는 이름의 법랑이 있다. 부용루 벽면에는 석장 이재순 장인이 23면에 걸쳐 부처님의 전생 인연담과 일대기를 부조했다. 이곳은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를 한눈에 담아보기 좋은 전망 명소다.
3. 원불교 성지순례 ‘영산성지’
◇영광에 뿌리를 둔 원불교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영광에서 나고 자랐다. 영산성지는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고 제자들을 양성한 원불교 발상지다.
소태산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만물에 궁금증이 많았던 소태산은 자신의 의문을 풀고자 11살부터 5년 간 매일 삼밭재 마당바위에 올라 산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산신은 만날 수 없었고 이후엔 도사를 만나려 했으나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소태산의 세상에 대한 의문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그러다 1916년 4월 28일 새벽, 26살의 소태산은 한 순간 몸이 가벼워지며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원불교가 탄생했다.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은 ‘대각절’은 원불교의 가장 큰 명절이다.
4. 기독교 순교지순례 ‘염산·야월 교회’
◇우리나라 최대 기독교 순교지
영광에서는 6·25 한국전쟁 당시 194명의 기독교인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염산은 국군과 북한군의 정치적 갈등이 심했는데 특히 북한군은 공산주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기독교인들을 가혹하게 학살했다. 염산교회와 야월교회에서는 학살 당시의 아픔을 엿볼 수 있다.
교인들은 구덩이에 산 채로 매장되거나 죽창에 찔려서 혹은 몽둥이질로 죽음을 맞았고, 몸에 무거운 돌을 매단 채 손발이 묶여 인근의 설도 앞바다에 산 채로 수장되기도 했다. 염산교회에서는 교인 77명이, 야월교회에서는 전체 교인 65명이 2~3개월에 걸쳐 목숨을 잃었다. 이들에게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두터운 신앙으로 순교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5. 천주교 순교지순례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영광(靈光), 성스러운 빛을 위한 순교의 길
1937년 설립된 영광성당의 역사는 올해로 81년째다. 하지만 1801년 신유박해 시기에 총 6명의 박해받은 순교자가 나왔다. 이 중 이화백과 양반 오씨의 참수터는 성당 앞 도동리 석장승(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1호)이 있는 자리로 추정한다.
영광성당은 지난해 본당 설립 80주년을 맞아 영광의 순교자와 유배자를 기억하고, 천주교 순교역사와 순교정신을 배울 수 있는 순교자기념관을 개관했다.
/영광=이종윤 기자 jylee@kwangju.co.kr
◇천년고찰 백제불교의 효시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침류왕 원년(364)에 인도 서북지역의 간다라 마라난타 성인이 중국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법성포에 당도하며 불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처 불(佛), 첫째 갑(甲), 절 사(寺)’라는 한자어처럼 불갑사는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와 처음 세운 사찰이다. 모악산이라 불리던 산 역시 불갑사가 들어서며 ‘불갑산’이라 불리게 됐다.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는 불갑사
불갑사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는 고려 충정왕 3년(1350) 각진국사가 삼창을 하면서부터다. 당시에는 31개의 암자에 1000여명의 스님이 머물렀던 으뜸 사찰이었다고 한다. 각진국사가 입적한 후 제자들이 사리함을 불갑사로 옮겨왔으며, 왕명으로 비문이 지어졌다. 지금도 불갑사 경내에는 각진국사비가 모셔져 있다. 하지만, 정유재란과 6·25 한국전쟁 등으로 사찰이 완전히 전소되면서 현재는 비문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불갑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3.5m 크기의 목조 사천왕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59호)이 있다. 전북 무장 소요산 연기사에 있던 사천왕상은 연기사가 전소되면서 설두대사에 의해 1876년 불갑사로 옮겨졌다. 그 이후부터는 ‘사천왕의 보호 덕분’에 불갑사의 전각이 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 불교미술의 원류 간다라 양식의 탑원을 간직한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
◇마라난타 존자가 처음 발을 디딘 곳
마라난타가 백제에 처음 발을 디딘 법성포로 들어서면 23.7m 높이의 사면대불상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8월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뒤편 주차장에 새로 생긴 엘리베이터를 타면 정상에 있는 사면대불상 앞에 멈춰선다. 승강기에서 내려 바로 마주하는 곳은 마라난타 존자, 좌우보처로 관음과 세지보살이 있으며, 주존불인 아미타불이 정면에 있다.
각각 시기는 다르지만, 중국에서 불교를 전래 받은 고구려·신라와 달리 백제는 인도승인 마라난타 존자를 통해 불교를 전래받아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받아들였다.
이 곳에는 간다라불교 문화예술의 특징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간다라 유물관, 간다라 사원 양식의 대표적인 탑원이 자리하고 있다.
◇다채로운 불교 미술의 원류, 간다라의 흔적
간다라 유물전시관의 유물들은 모두 파키스탄 대사관의 협력을 얻어 건너온 것이다. 스와트, 페샤와르, 탁실라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간다라 불교문화에 대한 실명과 실제 2~6세기경 소조불상불두들과 전각 등 석조 문화재들이 있어 간다라 양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간다라 유물전시관을 나오면 108개의 계단이 보이고, 그 시작점에 부처님의 발자국 모양이 찍힌 ‘불족적’이 있으며, 그 끝에 사면대불이 있다. 108번뇌를 하나하나 녹이며 108개의 계단을 올라 부처님과의 만남에 이른다는 의미다.
족장부터 사면대불로 향하는 계단 가운데에는 부용루라는 이름의 법랑이 있다. 부용루 벽면에는 석장 이재순 장인이 23면에 걸쳐 부처님의 전생 인연담과 일대기를 부조했다. 이곳은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를 한눈에 담아보기 좋은 전망 명소다.
![]() 소태산 박중빈 생가. |
◇영광에 뿌리를 둔 원불교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영광에서 나고 자랐다. 영산성지는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고 제자들을 양성한 원불교 발상지다.
소태산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만물에 궁금증이 많았던 소태산은 자신의 의문을 풀고자 11살부터 5년 간 매일 삼밭재 마당바위에 올라 산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산신은 만날 수 없었고 이후엔 도사를 만나려 했으나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소태산의 세상에 대한 의문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그러다 1916년 4월 28일 새벽, 26살의 소태산은 한 순간 몸이 가벼워지며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원불교가 탄생했다.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은 ‘대각절’은 원불교의 가장 큰 명절이다.
![]() 기독교 순교지 염산교회. |
◇우리나라 최대 기독교 순교지
영광에서는 6·25 한국전쟁 당시 194명의 기독교인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염산은 국군과 북한군의 정치적 갈등이 심했는데 특히 북한군은 공산주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기독교인들을 가혹하게 학살했다. 염산교회와 야월교회에서는 학살 당시의 아픔을 엿볼 수 있다.
교인들은 구덩이에 산 채로 매장되거나 죽창에 찔려서 혹은 몽둥이질로 죽음을 맞았고, 몸에 무거운 돌을 매단 채 손발이 묶여 인근의 설도 앞바다에 산 채로 수장되기도 했다. 염산교회에서는 교인 77명이, 야월교회에서는 전체 교인 65명이 2~3개월에 걸쳐 목숨을 잃었다. 이들에게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두터운 신앙으로 순교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 천주교 영광순교자기념성당. |
◇영광(靈光), 성스러운 빛을 위한 순교의 길
1937년 설립된 영광성당의 역사는 올해로 81년째다. 하지만 1801년 신유박해 시기에 총 6명의 박해받은 순교자가 나왔다. 이 중 이화백과 양반 오씨의 참수터는 성당 앞 도동리 석장승(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1호)이 있는 자리로 추정한다.
영광성당은 지난해 본당 설립 80주년을 맞아 영광의 순교자와 유배자를 기억하고, 천주교 순교역사와 순교정신을 배울 수 있는 순교자기념관을 개관했다.
/영광=이종윤 기자 jyle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