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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과 9대1
2020년 04월 08일(수) 00:00
지난 주말 ‘사회적 거리 두기’로 극장 나들이 대신 거실에서 영화 감상을 했다. 몇년 전 관람한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2013년 작)이다. 개인적으론 ‘인생영화’로 손꼽는 작품 중 하나다. 영화는 남자 친구와 헤어진 싱어송라이터와 하루아침에 엔터테인먼트계에서 ‘방출된’ 음반 프로듀서가 뉴욕의 허름한 카페에서 만나 음반을 만드는 과정을 밀도있게 담았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인생 최악의 날을 맞은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들른 카페에서 친구의 권유에 밀려 노래를 부르게 된다.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발걸음’(A Step You Can‘t Take Back). 마침 카페 구석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음반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은 속삭이듯 감미로운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된다. 평소 자신이 찾고 있던 목소리를 ‘발견한’ 그는 그레타에게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자며 음반을 제안한다.

하지만 가난한 처지에 녹음 스튜디오를 빌리는 건 쉽지 않은 일. 음악계에서 잔뼈가 굵은 댄은 현장녹음에 도전하기로 하고 뉴욕의 뒷골목, 지하철 승강장 등 거리 곳곳을 누빈다. 댄과 그레타가 이어폰을 한쪽 귀에 나눠 꽂고 뉴욕의 밤거리를 거니는 장면은 베스트 컷으로 불린다.

우여곡절 끝에 제작한 데모앨범은 메이저 음반사도 사로잡게 된다. 하지만 불공정한 계약조건이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9 대 1. 즉, 수익금의 9는 음반사가 가져가고 1은 이들의 몫이다. “데모앨범에 한푼도 돈을 안쓴 음반사가 왜 9를 챙기냐”며 그레타가 반발하자 이런 답이 돌아온다.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렇다. 대신 일류 스태프들이 음반마케팅을 할 것이다.”

이에 그레타가 선택한 건 제작사와의 계약이 아닌, 아이튠즈였다. 단돈 1달러에 자신이 만든 음원을 아이튠즈에 올려 전 세계의 네티즌들에게 직접 ‘세일’하는 방식이었다. 두 사람의 ‘히든카드’는 폭발적인 다운로드수를 기록하고 영화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비긴 어게인’을 지면에 소개하는 건 며칠 전 ‘구름빵’ 작가 백희나씨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 소식을 접해서다.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은 유명동화 ‘말괄량이 삐삐’를 쓴 스웨덴 국민작가 린드그렌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2년 제정된 상이다. 당연히 작가 개인 뿐 아니라 한국 문학계의 쾌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수상 소감에선 기쁨 보다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출판사와의 소송에서 1·2심 모두 패소한 후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출간된 ‘구름빵’이 TV애니메이션, 뮤지컬로 제작돼 44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백씨가 받은 액수는 1850만 원에 불과했다. 출판사와 맺은 ‘매절계약’탓이다. 당시 신인이었던 백씨는 일정금액만 지급하고 나면 향후 저작물을 이용해 얻는 수익 전부를 갑인 출판사가 독점하는 불공정 계약을 체결한 것. 사실, 잘못된 ‘갑을 관행’이 비단 문학계 뿐일까. 부디 이번 수상이 창작자의 저작권을 존중하는 계기가 됐으면….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