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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20년 03월 23일(월) 00:00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사람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네 가지 고통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병(病)은 조금 결이 다르다. 약으로 고치거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세상에는 만병통치약에 대한 갈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명의 허준(許浚)을 둘러싼 설화에 만병통치약이 등장한다. 조선 철종 때의 야담집 동야휘집(東野彙輯)에 나오는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이 바로 그것이다.

젊은 시절 허준이 서울에 약방을 열고 있을 때 이야기다. 어느 날 한 선비가 찾아오더니 여러 날 동안 약방을 떠나지 않고 허준 옆에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약방에 달려들어 오더니 “임신한 아내가 졸도를 했는데 약을 지어 달라”고 애걸했다. 옆에 앉은 선비가 “곽향정기산 세 첩을 지어 보내라”고 말했다. 허준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선비의 말대로 약을 지어 주었다. 병이 나았는지 걱정하던 중 저녁에 또 한 사람이 오더니 “이웃 임신부가 여기서 지어 준 약을 먹고 나았으니 세 살 먹은 아들 열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허준이 옆을 돌아보니 선비가 또다시 한마디를 한다. “곽향정기산 세 첩”. 약을 먹은 아이는 금방 병이 나았다. 소문이 꼬리를 물자 재상의 아들이 부친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찾아왔다. 이번에도 선비의 말대로 곽향정기산을 처방했는데, 재상은 바로 병이 나았다. 이때부터 허준은 명의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만병통치약이란 게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제법 많은 증상에 효과적인 약들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 같은 해열진통제인데, 각 가정에서 상비약이 된 지 오래다. 의사들은 요즘 코로나19 환자의 해열제로도 타이레놀을 권하고 있다. 타이레놀은 ‘육체적 고통’ 외에도 따돌림이나 애인의 이별 통보 혹은 해고 등에 의한 ‘사회적 통증’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만큼 쓰임새가 다양하다. 코로나19백신 임상시험이 전 세계에서 잇따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만병통치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류를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구해 낼 무기 같은 치료약이 하루빨리 등장하길 고대한다.

/홍행기 정치부장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