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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통적인 안보 분야의 남북 협력
2020년 03월 13일(금) 00:00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5년 전인 1995년 이맘때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긴급 식량 지원 발표를 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심각한 체제 위기에 직면했었다. 80년대 말 탈냉전의 격변기에다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과 대기근 발생, 배급제 붕괴로 식량난이 심각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1994년 추진했던 남북 정상회담의 기대감이 사라지고 남북 관계가 경색되는 중에 김영삼 대통령은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북한에 곡물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에도 불구하고 조문 파동으로 남북 관계가 악화 일로에 있었지만, 식량 사정이 절박한 상황에 이른 북한으로서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해 6월부터 남북 간 북경 쌀 회담이 개최되었다.

수세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북한은 당국 간 회담이라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 협의하는 형식을 요구했다. 남북의 공방 끝에 쌀 15만 톤을 원산지는 표기하지 않고 남측 선박으로 수송한다는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다.

이는 분단 이후 사상 처음으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아쉽게도 후속 회담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우리 측은 이 기회를 당국 간 접촉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활용코자 하였지만 북한은 최대한 비공개적으로 추진하되 식량 지원만을 확보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쌀 수송 과정에서 인공기 게양 사건, 삼선 비너스호 선원 억류 사건 등 여러 악재들이 발생해 합의 이행도 늦어졌다.

이듬해 북한은 다시 대홍수의 피해를 입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할 처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남한 정부에 대한 공식 지원 요청을 주저하였고 남한도 당국 간 공식 절차를 통한 협의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남북 관계는 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북경 쌀 회담은 탈냉전 직후 발생한 남북회담사의 중요한 한 장면이다. 대부분의 모든 것들은 시간이 바뀌면 변화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북한의 근본적인 대남 인식이라고 판단된다.

흡수통일에 대한 불안감과 이에 따른 수세적인 대응이 그것이다. 자존감 때문에 어려워도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에서는 우리의 대북 정책 목표가 북한을 붕괴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북한은 스스로라기보다는 우리 쪽의 이끌림에 따라 서서히 남북대화에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도 북한의 자존심을 지켜 주면서 남북 관계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시련이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북한 내 상황이 불확실한 국면에서 여러 추측들도 난무하고 있다. 북한 당국도 국가 비상 방역체계를 세우고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으며 해외 감염 사례들을 실시간으로 주민들에게 전달하고는 있다.

하지만 국경 유입과 외부 정보 차단을 엄격히 시행하고 있어 내부 사정을 알기 어렵다. 북한은 진짜 코로나19의 안전지대일까?

이참에 남북 간 방역 협력, 보건 협력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개성공단을 통해 우리도 부족한 마스크를 제조하고 북한에도 지원하자는 제안들도 눈에 띈다. 북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명분과 자존심을 중요시하고 고난의 행군과 자력갱생의 방식에 익숙한 북한은 우리 쪽에 협력이나 지원을 먼저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초국가적 방역 협력의 문제를 남북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해 보인다.

먼저 우리 내부의 코로나19 극복 노력이 우선이다. 다행히도 이번 주를 중심으로 확진자 증가세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국민들이 단합한 결과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코로나19 청정지대로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다음으로는 국제적인 확진자 증가에 대비하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재유입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일치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남북 접경지역부터 시작하여 북한 내부의 감염병 퇴치, 보건 의료 분야 협력을 위한 남북 간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은 우리와의 협력에 공식적으로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남북 정상 간 친서가 오고 갔다. 과거처럼 여건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노하우를 북한 지역에 전달하고, 필요한 인도적 지원을 강구하는 가운데 북한이 빗장을 연다면, 코로나19와 같이 비전통적인 안보 분야의 남북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