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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과 이타심
2020년 02월 07일(금) 00:00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새벽부터 몸이 유난히 무겁다. ‘어디가 안 좋은가?’ 괜한 걱정이 눈치 없이 불쑥 튀어나온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걱정되는 마음을 다독일 요량으로 곰곰이 생각한다.

‘하긴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하긴 했구나.’ 몸이 무거운 이유를 알고 나니 밑도 끝도 없이 치고 올라오던 걱정이 언제 그랬나 싶게 수그러 든다. ‘얼마 운전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가 이런 저질 체력이 되어 버렸을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의문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온다. 이게 다 나잇살 때문이다. 나잇살은 모래주머니 같은 거다. 학창 시절, 종아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운동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그때야 체력 단련을 위해 일부러 모래주머니를 달았지만, 지금은 세월을 핑계대는 게으름이 억지로 몸에 모래주머니를 하나 둘 달아준다. 모래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있으니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드는 건 당연하다.

‘몸 구석구석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 비곗덩어리들을 어서 떼 버려야 할 텐데…’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괜한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문득 어제 주차장에서 본 택배 차량이 떠오른다. 이건 또 무슨 맥락인지 정말 의아스럽다. 하여튼 택배 차는 쉬는 건지 아니면 택배 리스트를 확인하는 건지 꽤 긴 시간 동안 주차해 있었다. 나 역시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차 안에서 눈 좀 붙였다가 들어갈 요량이었다.

‘택배 차가 여기 주차해도 되나?’ 택배차는 주차장에 주차해선 안된다는 법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접한 택배 기사들은 항상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짐을 내리기 무섭게 횅하니 가버렸다. 그래서일까 주차해 있는 택배차가 왠지 낯설어 보여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아니면 열심히 일해도 모자랄 택배 기사가 귀하디 귀한 주차 공간을 마음대로 점거한 채, 대놓고 게으름을 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살짝 눈살이 찌푸려진 것일 수도 있다. 내 안에 숨어 있던 택배 기사에 대한 고정관념이 튀어나온 순간이다. 택배 기사는 개미나 로봇처럼 열심히 일만 해야 한다는 그런 고정관념, 택배 기사는 허드렛일을 하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는 선입견 말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 아마존에서는 시범적이긴 하지만 드론으로 택배를 한다고 한다. 로봇처럼이 아니라, 실제 로봇이 택배 배달을 하는 세상이다. 요즘 4차 산업 혁명, AI 이런 것들이 대세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이 할 일을 소프트웨어나 로봇이 대신한다는 말이다. 소프트웨어나 로봇은 피곤해 하지도 않고, 불평불만도 없고, 24시간 일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이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런데 도처에서 쏟아질 엄청난 실업자들은 어떻게 감당하지?’ 당연한 의문이 뒤를 따랐다.

짧은 순간 동안 전광석화처럼 토막난 생각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간 생각들임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누가 본 사람은 없는지 흠칫 놀라 괜히 머쓱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순간 반짝하고 사라진 망상이었지만,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마음 한 구석이 켕겼다.

‘나는 조금만 운전 해도 이렇게 피곤한데, 하루 종일 운전하고 그것도 모자라 무거운 짐까지 나르는 택배 기사는 얼마나 피곤할까’ 좀 전의 부정적인 생각을 몽땅 잡아먹을 기세로 배려심이 작렬한다. 하긴 언제 한번 제대로 택배 기사들의 고충을 가슴으로 헤아려 본 적 없다. 공감은 공유하는 뭔가가 있어야 훨씬 더 쉽게 일어난다. 예를 들어 운전을 오래 해 보니 몸이 몹시 힘들더라는 경험이 매개가 되어 택배 기사들의 삶에 보다 깊숙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공감하는 경험이 많을수록 배려하는 마음도 잦아질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상대방을 공감하기보다 타인이 나를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타인이 힘들어 하는 것을 들여다 보고 알고 공감하기보다, 내가 힘든 것을 보여 주고 알려 주고 싶어 한다. 인간에게는 공감마저도 이기적으로 탈바꿈시키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만큼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공감은 하는 것이지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비록 택배 기사에 대한 편견을 덮을 요량으로 튀어나온 배려심이긴 하지만, 자비심의 양식이 되는 것이라면 아무리 작고 사소하더라도 무척 소중하다. 인간이라면 이기심을 피하기 힘들다. 다만 그때마다 반성하고 참회하면 된다. 그래야 이기심은 이타심의 거름이 되고, 또 그만큼 자비심이 자라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그러나 이기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