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정 깊어진 우상들과 결별하기
2020년 01월 13일(월) 00:00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사람의 인식과 판단이란 얼마나 빈약하고 알량한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어제까지 알았던 것이 오늘은 더 이상 맞지 않을 때, 큰 배신감과 격한 분노를 느낀다.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과 그동안 알고 있었던 내용이 일치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판단 능력을 의심하고 부정해야 하는 탓이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력과 인식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고통스러운 자기 부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들 판단 오류를 인정하기보다는 상대가 속인 것으로 단정하고 비난한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멈추면 판단의 오류는 계속되고 분노로 인한 무력감 또한 습관이 될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자주 혼란시키며 미망에 빠지게 하는가?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우리 안에 친밀하고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우상들을 지목한다. 이 우상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세상살이의 원리로 작동해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우상들을 스스로 쌓아 올린 생각의 방식과 논리 체계로 여긴다. 아무도 자신의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은 ‘신기관’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판단 근저에서 강하게 작용하는 ‘네 가지 우상’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먼저 종족의 우상이다. 이 우상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조직, 종족, 단체와 학파 등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게 함으로써 판단의 오류를 일으킨다. 그래서 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세상을 우리 편과 적으로 나눈다. ‘우리’는 절대선이며, 저쪽 사람은 사라져야 할 절대적인 악이다.

두 번째 우상은 동굴의 우상이다. 동굴에 사는 사람은 자기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즉 자신이 아는 것이 곧 진리이며 세계의 본질이다. 그래서 이 동굴에 갇힌 사람은 자신의 앎과 경험 위에서 ‘원칙’을 만들고 ‘신주 단지’로 모신다. 즉 이 원칙이 동굴을 지키는 우상의 우상인 셈이다. 특히나 요즘 들어서 원칙을 앞세우며 조금도 사심 없는 ‘섬김’을 말하는 사람들이 놀라울 만큼 많다. 그런데 각자의 이름을 새긴 동굴마다 화려하게 내걸린 원칙들은 너무나 남루해서 참으로 낯 뜨겁다. 원칙이란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삶을 선택하는 방향이며 실천의 행동이다.

세 번째가 시장의 우상이다. 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편견의 우상이다. 베이컨은 왜 언어로 인한 판단 오류를 시장의 우상이라고 했을까? 시장은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시끄럽게 과장된 목소리로 ‘가짜’들을 팔고 서로를 속이면서 오직 이익을 챙기려고 모여드는 곳이다. 요즘 말로 ‘시청률’을 높여서 대박을 노리는 곳이다. 이 시장의 우상이 지배하는 데서 가짜 뉴스와 왜곡된 정보가 판을 치지 않는다면 더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시장의 우상은 말을 독점하고 권력화해서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우상이다. 하지만 이 우상의 운명은 사실 시장에 모여서 시청률을 높여 주는 사람들의 손안에 있다.

끝으로 극장의 우상이 있다. 무대 위의 연출과 연기를 사실로 믿는 것이다. 관습과 권위에 약하거나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우연히 보이는 것과 듣는 것이 세상의 전부다. ‘아무개’라는 권위나 ‘방송’과 ‘신문‘에서 자주 본다는 것만으로, 의심은 불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극장의 우상을 통해서 정당함과 부당함, 정의와 불의의 관계는 뒤집히고 왜곡되어서 사방으로 퍼진다.

이 네 가지 우상들이야말로 보이는 것 너머의 엄밀한 사태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들이다. 우상이 무너진 자리에는 새로운 인식의 방식을 세워야 한다. 이에 대해서 베이컨은 있는 것을 모으기만 하는 개미나, 자신에게서 뽑아낸 실만으로 집을 짓는 거미가 아니라, 부지런히 모은 재료로 꿀을 생산하는 ’꿀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베이컨의 우상론은 우리가 왜 길들여진 우상숭배를 멈추고, 스스로의 엄격한 판단으로 인식의 꿀을 생산해야 하는가를 보여 준다. 자신의 부분적 경험이나 관념만으로는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고 그저 우상숭배자로 남거나 심지어는 스스로 우상이 되고자 한다. 이제, 그 우상들과 과감한 결별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