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의 광주, 또 한 번의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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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 분)가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철길에서 열차와 맞부딪치는 장면은 한국영화사에서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99년에 제작되어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새해 첫날 개봉되었다. 주인공 영호는 1997년 IMF 금융위기에 의해 몰락한 인물로 그려졌다. 영화의 개봉 시기와 주인공의 상황 설정을 고려할 때,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고자 했던 물음은 비교적 명확했다. “과연 한국 사회는 어디서부터 타락한 것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으로 이 영화가 제시한 답변 또한 명확했다. 개봉 당시로부터 20년 전인 1980년 5월 18일의 광주 학살. 이 사건을 제대로 직시하고 성찰하지 않는 한, 억누른 광주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다리를 저는 영호처럼 한국 사회는 계속해서 파행을 거듭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따라서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는 단순히 5·18의 가해자인 것은 아니다. 그는 파행과 트라우마의 한국 현대사 그 자체를 육화한 캐릭터로서 한국인들 자신을 재현한다.
‘박하사탕’ 개봉으로부터 다시 20년이 되어 가는 지금, 광주 학살의 책임자 전두환은 일말의 반성도 없이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의 집단 트라우마를 경험한 ‘위험사회’에서 이른바 ‘삼포’ 세대는 ‘오포’와 ‘칠포’를 지나 모든 것을 포기한 ‘N포’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어디서부터 타락한 것일까? 다시 물음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내년 40주년을 맞는 광주 5·18 민중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광주시립오페라단에서 준비 중인 오페라 작품이 ‘박하사탕’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릎을 쳤던 이유다.
그리고 지난 12월 13일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오페라 ‘박하사탕’이 첫선을 보였다. 작품이 미완성된 상태에서 관현악을 대신한 피아노 반주의 콘서트 형식으로 작품 시연회가 열린 것이다. 작곡자인 이건용이 중간중간 무대에서 직접 작품 설명을 들려주었고, 연주회를 마친 뒤에는 제작진과 주연 가수들이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되었다. 제작 과정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작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여 제작에 반영하겠다는, 한국 창작 오페라와 관련하여 보기 드문 문예 공론장 형성의 의지를 보여 준 셈이다.
영화와 오페라에서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게 흘러간다. 예컨대 영화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영호의 말은 찰나적 순간의 외침으로 충분했지만, 오페라에서 그것은 노래로 불려야 하며 감정은 더 길게 고양되어야 한다. 영화 속에서 반전을 향해 거꾸로 흐르는 시간도 오페라에선 동일한 방식으로 연출되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1막의 두 번째 장면을 망월동 묘역에서 방황하는 영호로 설정한 것은 적절했다. 이 장면에서 음악 또한 인상적이다. ‘강대일, 강동일, 강복원…’ 희생자의 이름이 차례로 합창되는 동안 실제 묘비명에서 옮겨진 다섯 가지 사연들이 서로 다른 독창으로 묘사됐다. 단음절 호모포니 코랄이 한국어를 위한 양식이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홍인주, 홍인표, 홍태완, 황강주’로 마무리되는 ‘이름 합창’은 감동적이었다. 우리가 저 이름들을 그토록 처연하고, 숭고하게, 그래서 아름답게, 불러본 적이 언제 또 있었을까?
영화 원작에서는 강렬하면서도 짧게 묘사된 5·18 장면 역시 오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길게 묘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작에서 보이지 않던 시민군들, 주먹밥을 만드는 어머니들,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화순댁 등의 인물이 새로 등장했다. 이 장면이 시작될 때 영호의 ‘돌아갈래’ 모티브와 서곡처럼 쓰이는 시민군의 ‘아침이슬’ 합창이 절묘하게 연결되는데, 이는 영호의 외침에 응답하는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시연회에서는 미완성으로 그친 항쟁 장면이 오케스트레이션과 함께 어떻게 완성될지 무척 궁금하다.
20년 전 영화 ‘박하사탕’이 제기했던 물음들을, 오페라 ‘박하사탕’이 지금 바로 이곳 광주에서 다시 묻게 될 것이다. 명망 있는 작곡가와 제작진에 대한 신뢰로 얻어진 저작권이 소중하게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40주년을 맞는 오월 광주, 전 국민이 공감하고 광주를 찾아와 감상하게 되는 보편적 가치의 공연 예술 작품을 갖게 될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 12월 13일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오페라 ‘박하사탕’이 첫선을 보였다. 작품이 미완성된 상태에서 관현악을 대신한 피아노 반주의 콘서트 형식으로 작품 시연회가 열린 것이다. 작곡자인 이건용이 중간중간 무대에서 직접 작품 설명을 들려주었고, 연주회를 마친 뒤에는 제작진과 주연 가수들이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되었다. 제작 과정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작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여 제작에 반영하겠다는, 한국 창작 오페라와 관련하여 보기 드문 문예 공론장 형성의 의지를 보여 준 셈이다.
영화와 오페라에서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게 흘러간다. 예컨대 영화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영호의 말은 찰나적 순간의 외침으로 충분했지만, 오페라에서 그것은 노래로 불려야 하며 감정은 더 길게 고양되어야 한다. 영화 속에서 반전을 향해 거꾸로 흐르는 시간도 오페라에선 동일한 방식으로 연출되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1막의 두 번째 장면을 망월동 묘역에서 방황하는 영호로 설정한 것은 적절했다. 이 장면에서 음악 또한 인상적이다. ‘강대일, 강동일, 강복원…’ 희생자의 이름이 차례로 합창되는 동안 실제 묘비명에서 옮겨진 다섯 가지 사연들이 서로 다른 독창으로 묘사됐다. 단음절 호모포니 코랄이 한국어를 위한 양식이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홍인주, 홍인표, 홍태완, 황강주’로 마무리되는 ‘이름 합창’은 감동적이었다. 우리가 저 이름들을 그토록 처연하고, 숭고하게, 그래서 아름답게, 불러본 적이 언제 또 있었을까?
영화 원작에서는 강렬하면서도 짧게 묘사된 5·18 장면 역시 오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길게 묘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작에서 보이지 않던 시민군들, 주먹밥을 만드는 어머니들,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화순댁 등의 인물이 새로 등장했다. 이 장면이 시작될 때 영호의 ‘돌아갈래’ 모티브와 서곡처럼 쓰이는 시민군의 ‘아침이슬’ 합창이 절묘하게 연결되는데, 이는 영호의 외침에 응답하는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시연회에서는 미완성으로 그친 항쟁 장면이 오케스트레이션과 함께 어떻게 완성될지 무척 궁금하다.
20년 전 영화 ‘박하사탕’이 제기했던 물음들을, 오페라 ‘박하사탕’이 지금 바로 이곳 광주에서 다시 묻게 될 것이다. 명망 있는 작곡가와 제작진에 대한 신뢰로 얻어진 저작권이 소중하게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40주년을 맞는 오월 광주, 전 국민이 공감하고 광주를 찾아와 감상하게 되는 보편적 가치의 공연 예술 작품을 갖게 될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