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다 되도록 가시지 않는 5·18 트라우마
5·18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이후 고문 후유증 등 트라우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시민이 4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상당수 생존자들이 항쟁 이후 40년이 다 되도록 ‘국가 폭력’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명희 경상대학교 교수는 엊그제 광주에서 열린 5·18 학술대회에서 ‘5·18 자살과 트라우마의 계보학’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1980년 이후 올 10월까지 5·18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의 수는 46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가 파악한 5·18 참가 이후 자살자 수는 1980년대가 25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 시기에는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과 동일시하며 학살의 진실과 가해자의 책임을 일반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저항적 자살이 다수였다.
또 5·18 보상 정책이 실시된 이후인 1990년대에는 네 명으로 감소했지만, 2000년대에는 13명으로 자살 빈도가 다시 높아졌다. 김 교수는 그 이유로 고문 후유증과 생활고를 꼽았다. 대부분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견디기 위해 알코올에 의존하다 대인 관계 실패, 가정 문제, 실직, 빈곤을 겪었다는 것이다.
2010년대에는 올 8월 5·18 왜곡에 힘들어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정철 씨 등 네 명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겪었던 고통이 제2세대와 유가족의 피해로까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일시적 금전 보상의 미봉책에서 벗어나 정신적 트라우마와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적극적인 치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5·18을 폄훼하는 거짓 주장이 난무하고 가해자들이 버젓이 활보하는 현실은 피해자들을 다시 당시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만큼, 5·18에 대한 완전한 진상 규명이 시급하다.
김명희 경상대학교 교수는 엊그제 광주에서 열린 5·18 학술대회에서 ‘5·18 자살과 트라우마의 계보학’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1980년 이후 올 10월까지 5·18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의 수는 46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가 파악한 5·18 참가 이후 자살자 수는 1980년대가 25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 시기에는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과 동일시하며 학살의 진실과 가해자의 책임을 일반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저항적 자살이 다수였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일시적 금전 보상의 미봉책에서 벗어나 정신적 트라우마와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적극적인 치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5·18을 폄훼하는 거짓 주장이 난무하고 가해자들이 버젓이 활보하는 현실은 피해자들을 다시 당시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만큼, 5·18에 대한 완전한 진상 규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