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묵자흑(近墨者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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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묵자흑(近墨者黑)
2019년 11월 13일(수) 04:50
중국 서진(西晉) 시대의 문신 부현(傅玄)이 편찬한 ‘태자소부잠’에는 저 유명한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이라는 경구(警句)가 등장한다. ‘붉은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어지고 검은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진다’는 뜻이다. 인격을 형성함에 있어 주변 사람 등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시조가 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희고 흰 깃에 검은 때 묻힐세라. /진실로 검은 때 묻히면 씻을 길이 없으리라.” 이는 정쟁이 심했던 조선시대 광해군 시절, 선오당(善迂堂) 이시(李蒔)가 동생에게 조정의 벼슬을 말리며 지은 시조라고 전해진다. 시끄러운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뜻이며, 좋지 않은 사람과 가까이 하면 악에 물들게 된다는 뜻이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표창원 의원이 내년에 치러질 21대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했다. 민주당의 인재 영입을 통해 정치판에 발을 들인 두 초선 의원이 정치판을 스스로 떠나겠다고 밝힌 것이다. 두 의원의 불출마 배경에는 ‘한심한 한국 정치’가 있다. 조국 전 장관 사태로 불거진 여야 대립과 광장의 분열된 민심,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로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는 것에 스스로 모멸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개인 소신보다는 당리당략을 우선해야 하는 정치 현실 등이 이들을 정치판에서 떠나게 했을 것이다. 언론매체를 통해 정치인이 아닌 논객으로서는 허심탄회하게 정치판을 비판했지만, 뭔가 바꿔보겠다며 몸소 뛰어 들어가 본 정치판은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어찌 보면 이들의 의지가 스스로 꺾인 게 아니라 현실 정치의 검은 때가 묻기 전에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이에 비해 다선(多選)정치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당내에서도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 의원과 표 의원을 ‘백로’로 지칭하기는 어렵다 해도, 이들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데는 공감한다. 내년에 치러질 제21대 총선에서는 ‘까마귀’보다는 많은 ‘백로’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권일 정치부 부장 c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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