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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신처럼 골프나 치고 싶다
2019년 11월 12일(화) 04:50
정보요원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다. 숲속으로 도망치는데 희끄무레한 건물이 보인다. 아마도 화정동 안기부 청사인 듯하다. 건물 안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린다. 틀림없이 반체제 인사나 운동권 학생이 붙잡혀 고문을 받고 있을 것이었다.

한참 쫓기다 가까스로 잠에서 깼다. 전두환 시절 그곳에 연행돼 작은 고초를 겪은 지 벌써 40년이 되어 가는데,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이 극심한 ‘독재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려나.

전두환이 골프 치는 영상이 지난주 공개됐다. “드라이버샷은 호쾌했고 아이언샷은 정교했다.” 10개월 추적 끝에 영상 촬영에 성공했다는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의 관전평(?)이다. 영상을 직접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아마추어 치고는 ‘어프로치 샷’이 일품이다. 88세라는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일 가능성이 커졌다.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에 출석을 거부하고 있지만 오히려 정정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임 부대표가 1000억 원대 추징금 납부 여부를 묻자 전두환은 ”네가 좀 내 주라“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군대는 갔다 왔냐?”며 조롱하듯 되묻기도 했다. 다음은 아직도 영상을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간추린 대화 녹취록이다.

임(한솔): 광주 5·18 학살 책임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죠.

전(두환):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광주 학살에 대해서 모른다, 나는.

임: 왜 모르세요. 직접 책임이 있으시잖아요.

전: 내가 왜 직접 책임이 있어?

임: 발포 명령 내리셨잖아요.

전: 내가 왜 발포 명령을 내려?

임: 발포 명령 안 내리셨어요?

전: 내가 이 사람아. 내가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도 있지 않은데, 군에서 명령도, 명령권도 없는 사람이 명령을 해?

임: 당시에 실권자셨잖아요.

전: (너) 군대 갔다 왔냐?

임: 예. 그리고 천억 원이 넘는 추징금 아직 납부하지 않으셨는데 추징금과 고액 세금 언제 납부하실 겁니까?

전: 네가 좀 내 주라.



전두환, ‘후안무치의 지존’



참으로 이런 코미디가 없다. 한데 영상이 공개된 그날 오후, 갑자기 ‘전두환 자살’이 인터넷 ‘실검’(실시간 검색어)에 떴다. 깜짝 놀랐다. 그리 정정하던 사람이 자살이라니. “전두환 자살 뜬 이유가 뭐예요? 아직 정정하시던데 왜 이런 게 연관 검색어에 뜨죠?”

누리꾼들은 언제나 친절하다. 어떤 질문이 나와도 답변이 바로 뜬다. “(전두환이) 그냥 뒤졌으면 좋겠다는 민심의 반영입니다.” “알츠하이머라며 법원 출두도 안 하고 있는데 멀쩡하게 골프 치고 있으니 사람들이 단단히 화가 난 듯합니다.”

한데 꽤 긴 장문으로 진지하게 논리를 펴는 이도 있다.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 5·17 쿠데타 5·18 내란 살인죄 등으로 1심 사형선고를 받았던 역사적 죄인입니다. 이제라도 죽음으로 회개하라는 네티즌의 바람이 모아져 ‘전두환 자살 실검’으로 뜬 겁니다. 심판을 받아야 할 자는 전두환뿐만이 아닙니다. 독재에 충성하는 추종자들과 한국당 보수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독재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당화하고 반면에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모함하는 글이 넘치는 기막힌 현실입니다.”

그렇다. 둘러보면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기막힌 현실’이 얼마나 많은가. 적반하장은 ‘도적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생각해 보라. 집안에 든 도둑이 주인을 준엄하게 꾸짖는 상황. 재물을 뺏긴 것도 서러운데 도둑으로부터 “앞으로 집안 단속 잘하라”는 훈계까지 들어야 한다면, 참으로 기가 막힐 일 아닌가.

자유한국당 영입 인사 1호가 될 뻔했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의 ‘삼청교육대’ 발언도 그렇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를 오히려 삼청교육대에 보내 정신 차리게 하겠다는 뜻이니 이런 적반하장이 어디 있나. 그런 말을 듣고 러시아 출신 귀화 한국인인 오슬로대학교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는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그는 “만약 독일의 정치인이 본인이 싫어하는 좌파에게 ‘부헨발트 수용소‘(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보내고 싶다, 히틀러 수용소에 갔다 왔으면 한다’라고 말을 했다면 정치 그만두고 감옥에 가야 한다”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두환이 만든 한국의 삼청교육대 역시 무자비한 인권 탄압이 자행됐던, 지옥 같은 강제수용소였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누군가를 삼청교육대에 보내자고 하는 이런 사람들이 여전히 국가의 인재로 있는 상황이 아마 전두환 씨가 골프를 치며 무사하게 지내게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나이에 상관없이 96세, 97세가 돼도 아우슈비츠에서 보초만 섰더라도 그 사람은 재판을 받는다”고 했다. 박 교수는 또 전두환 골프 라운딩 영상과 관련해서도 “학살을 해 놓고 이렇게 뻔뻔스러울 수가 있는가”라며 “그가 그렇게 무사안일하게 골프나 칠 수 있는 건 그만큼 그를 비호해 주는 계층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한국당은 말이 없고



‘대차나’(과연) 맞는 말이다! 한데 그를 비호해 주는 계층은 누구일까? 꼭 집어 말할 순 없겠지만 아마 이게 힌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전두환이 멀쩡한 모습으로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보고도 자유한국당만은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 민주당은 물론 정의당과 평화당 및 대안신당까지 일제히 나서 ‘국민들을 우롱하는 전두환을 이제라도 즉각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른미래당도 “인면수심의 극치인 전두환답다”며 “광주 시민의 고귀한 도덕심과 우리 사회의 포용력이 그에게 ‘인간적 삶’을 허락했지만 더 이상의 인내는 없다. 그가 발 들일 곳은 골프장이 아닌 재판장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당은 말이 없다. 이러니 민주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선거 때마다 호남 사람들이 한국당을 찍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뿐인가. “지금 당장 박근혜 대통령을 사면·석방해야 한다”고 당당히 외치는 의원(정종섭, 대구 동구갑) 을 품고 있는 정당도 한국당이다. 이런 한심한 ‘꼬락서니’(꼴)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어디 맘 둘 곳 없어 심란해지며 한숨만 절로 나오는데…. 이게 어디 깊어가는 가을이며 떨어지는 낙엽 탓뿐일 것인가.

아, 나도 이제 40년 ‘글 감옥’에서 벗어나 전두환처럼 한가롭게 골프나 치고 싶다. 하릴없이 시조 한 수 읊으며 글을 맺는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이색, 李穡, 1328~1396)



/주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