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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개국서 공수한 소품 설치, 다양성 꽃 피우다
도시 디자인, 행복한 도시 풍경의 완성 <10> 덴마크 코펜하겐(상)
과격하고 소요 끊이지 않던 빈민가
다인종 거주지 뇌레브로 지역
사회 통합 ‘수페르킬렌’ 프로젝트
블랙·레드·그린, 3색 공간 배치
2019년 11월 11일(월) 04:50
이민자들의 삶을 껴안은 수페르킬렌 프로젝트 중 ‘블랙 마켓’의 작은 언덕 위에서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레드 스퀘어’의 붉은 색 조형물과 주민의 이야기가 담긴 태국의 무에타이 링.




‘레드 스퀘어’의 붉은 색 조형물과 주민의 이야기가 담긴 태국의 무에타이 링.


광장 한 쪽에 복싱 링이 설치돼 있는 게 좀 뜬금 없다 싶었다. 어느 치과의 광고 네온사인인지 ‘치아’ 모형을 얹은 길다란 조형물이 눈에 띈다. 검은 문어 모양의 미끄럼틀 위에선 아이가 오르락 내리락하며 놀고 있다. 다양한 디자인의 벤치와 탁자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모든 것엔 다 ‘이야기’가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건 색감이다. 검정, 초록, 그리고 붉은색.

코펜하겐 외곽 뇌레브로(Nørrebro) 지역 ‘수페르킬렌(Superkilen)’ 프로젝트는 흥미로웠다. 2012년 완료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덴마크 예술 그룹 ‘수페르플렉스(SUPERFLEX)’를 인터뷰한 후 프로젝트의 모든 것을 담은 책자 한 권을 받았다. 책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붉은 화염이 휩싸인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이들이 돌을 던지는 모습이 담긴 사진 한장은 이 프로젝트의 출발을 잘 보여준다.

도심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뇌레브로는 과격한 동네, 가난한 동네라는 이미지가 강한 지역이다. 총기까지 등장한 1993년 뇌레브로 폭동을 비롯해 오랫동안 크고 작은 소요가 끊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이곳에는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했지만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인구가 급감했고 대신 이주 노동자, 난민, 학생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현재도 이민자나 그 후손들의 거주 비율이 높다.

코펜하겐 시는 뇌레브로를 사회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고 포용하는 방법을 오랫동안 고민했고 ‘모두를 위한 도시 생활’ 등을 목표로 삼고 ‘사회적 통합’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방치된 공공 부지를 공원 등으로 개발하고 건축 디자인 등을 통해 공공 건물 등 각종 시설들을 제안하기로 했다. 공모를 거쳐 덴마크 건축회사 비야케잉겔스그룹, 독일 조경업체 토포텍원, 광주 비엔날레와 광주 폴리에도 참여했던 수페르플렉스가 선정돼 사업이 시작됐다. 프로젝트 이름 ‘수페르킬렌’은 땅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대한 쐐기’라는 뜻이다.

시는 사업 시작 전 전방위로 회의 참가자를 모집하고 공원 인근에 사는 주민과 수 차례 회의를 열었다. 프로젝트 팀은 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인종 다양성을 공간에 반영하는 설계안을 내놓았다. 수페르킬렌은 세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색깔’이 그 중심 역할을 한다. 블랙 마켓(Black Market), 레드 스퀘어(Red Square), 그린 파크(Green Park)다.

차를 세우고 블랙 공간을 거닌다. 검은 아스팔트 위에 흰 페인트로 그린 세로 등고선이 주 포인트다. 등고선은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의 영화 ‘도그빌’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아스팔트 광장의 작은 둔덕이다. 아이들은 오르락 내리락하며 뛰어 다니고, 모험심 강한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질주한다.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이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바로 붙어 있는 ‘그린 파크’는 수페르킬렌에서 가장 면적이 넓다. 프로젝트 설계안 발표 당시 주민들이 강력하게 요구한 사항을 적극 반영한 결과다. 산책하고 조깅하고 나들이 하기 좋은 공원의 모습으로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녹색 잔디 위에 놓인 하얀 테이블과 의자에서 음식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은 ‘레드 스퀘어’다. 광장 바닥과 벤치 등 조형물들을 모두 붉은 색 계열로 통일한 공간이다. 광장 입구의 스포츠 센터와 커뮤니티 공간인 뇌레브로홀의 의미를 살려 이 곳은 문화 활동과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구역으로 꾸몄다.

세 가지 구역으로 나뉜 공간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다양한 설치물들이다.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프로젝트 팀은 “공원에 설치할 소품을 고향에서 가져 온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진 후 출신 국가 62개국에서 108개 소품을 공수했고, 일부는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배치했다.

녹색 공간에는 아프리카 바베큐 틀, 카불에서 가져온 그네, 스페인 탁구대를 비치했다. 치아 모향의 조형물은 아랍에미레이트에서 공수한 치과의 네온 사인이었다. 아제르바이젠의 버스 정류장을 본뜬 의자, 일본의 문어 미끄럼틀, 모로코에서 온 별 모양 분수,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가져 온 체스 테이블 등에는 모두 ‘스토리텔링’이 이다.

수페르플렉스는 일반적인 주민 참여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극단적 참여(Participation Extreme)’ 캠페인을 벌였다. 자메이카, 스페인 등 5개국 출신 주민과 그들의 고향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 현지에서 직접 물건을 가져왔다. 팔레스타인 이민 2세대인 10대 소녀는 중동에서 붉은 흙을, 태국에서는 무에타이 링, 스페인에서는 거대 황소 상을 가져왔다.

취재를 하면서 가장 관심 있게 살펴본 건 사업이 완료된 2012년과 2019년 사이 훼손 정도다. 거창하게 사업을 진행하지만 사후 관리가 되지 않아 방치된 경우를 많이 보아서다. 물론 이곳 역시 준공 당시보다는 색깔도 바래고, 그래피티 등 낙서도 존재하고, 일부 기물이 파손돼 있기도 하지만 크게 훼손돼 보이지는 않았다.

지속가능한 재료를 채택하고 심사숙고해 디자인을 결정하고 시가 꾸준히 관리하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이 초기 단계부터 직접 참여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것, 내가 가져온 것’이라는 ‘소유’ 개념을 정확히 인지하고 ‘주인 의식’을 가져 훼손 정도가 적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시민들에게 변한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야기를 건네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아티스트가 표현하는 내용 역시 주민들,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와 삶이 재료가 되고 그걸 상상 속에서, 예술적으로 표현내 내는 게 예술가 그룹의 역할입니다. 사업을 전개할 때 주민 참여는 정말 중요한 문제지만, 성공적으로 접목하기가 어렵습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의 힘을 믿는 게 필요합니다.”

수페르플렉스 관계자는 “주민들에게 ‘오너십’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생각과 개념들을 나누고 그것이 프로젝트에 반영되면서 주인의식을 갖게 되고 자신이 의사 결정 과정과 아이디어 실현에 구체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만큼 애착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mekim@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