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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 영화 되찾자…‘제1회 영산포의 날’ 개최
나주시 내일 영산포여중서
3개 동 주민 화합 행사
역사 재조명·지역 발전 다짐
2019년 11월 08일(금) 04:50
영산포는 영산강이 바닷길과 통하던 시대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안 지역 대표 내륙 항구로 번영을 누렸다. 1979년 당시 영산포 선창과 등대 모습. <나주시 제공>
나주시가 호남의 대표 항구 도시였던 영산포의 옛 영광 되찾기에 나섰다.

나주시는 9일 오후 2시 영산포여자중학교 강당에서 ‘제1회 영산포의 날 제정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기념식은 영산동, 이창동, 영강동 3개 동 주민들이 ‘영산포’ 주민으로 하나 된 날을 제정해 화합과 자긍심으로 영산포의 부흥을 도모하고자 마련됐다.

기념식은 나주시립합창단의 공연을 시작으로 옛 영산포 사진을 담은 추억의 영상 상영, 시정발전 유공시상, 경품 추천 등이 진행된다.

영산포는 영산강이 바닷길과 통하던 시대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안 지역 대표 항구로 번영을 누렸다.

특히 영산포는 조선 초기 영산강의 수운(水運)을 이용해 한반도 남부지방의 전세(田稅)를 거둬 영산창(榮山倉)에 모았다가 서울로 다시 운반하는 조운(漕運) 기능을 수행했다.

이후 영산포는 조선 중종 때 영산창의 기능이 영광 법성창으로 옮겨져 폐지됐지만 수운에 적합해 전라도 남해안 일대 산물 집산과 거래 중심지로서 상업무역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또 영산포는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 수탈로 인한 근현대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영산포에는 나주평야에서 생산된 쌀 수탈 거점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를 비롯해 조선식산은행, 일본인 지주가옥 등이 아직도 남아있다.

영산포의 쇠락은 1970년대 이후 영산강 하구언이 설치되면서 배가 드나들지 않게 되자 포구 기능을 상실하면서 시작됐다.

영산포의 대표 음식은 알싸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숙성된 ‘홍어’다.

숙성 홍어의 유래는 고려말엽 일본 해적들이 남해안 지역을 노략질하자, 흑산도 인근의 영산도 사람들이 영산포로 피난길에 오르며 싣고 왔던 홍어가 발효되면서 맛이 좋아져 즐겨먹게 됐다.

영산포 주요 역사는 ▲1927년 영산포읍 개청 ▲1981년 금성시 개청 시, 영산포 읍 5개 동 분리 ▲1995년 시·군 통합 때 3개동(영산동, 이창동, 영강동)분리 운영 등이다.

이기준 영산포의 날 추진위원장은 “이번 행사는 전라도의 대표 항구 도시였던 영산포의 옛 영광을 되살리고, 재조명하여 영산포인의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주=손영철 기자 yc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