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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수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감사실장] 수다쟁이 핸센댁
2019년 10월 30일(수) 04:50
할머니 동네에 핸센댁이 살았다.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생선이며 대나무로 만든 생활용품을 팔았다. 어찌나 말을 구수하게 잘 하던지 귀동냥만 해도 즐거웠다. 어른들은 꼭 필요한 물건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핸센댁이 물어오는 이야기를 더 기다렸다.

한센병(나병)에 걸려 입이 비뚤어져 말을 더듬거렸지만, 씩씩하게 입바른 소리를 했다. “으으, 저, 저짝 마을에 이, 이장이, 나, 나라가 준 돈을, 빼, 빼먹었다는데, 그, 그라면 못 써.” 배움이 없어 글은 몰랐지만, 어려운 일을 쉽게 풀어준 뒤 한두 월(문장)로 시원스럽게 옳은 말을 척척 했다. “그그, 비, 빈둥거리며, 지 것(몫)만, 채, 챙게 묵으니께, 쪼, 쫓겨 나야 맞제.”

핸센댁의 이야기에 온 마을이 귀를 쫑긋했고, 아이들은 턱을 괴었다.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은 “말 못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나” 하면서 핸센댁을 타박했지만, 핸센댁을 손꼽아 기다렸다. 수다쟁이 핸센댁은 요즘 말로 하면 정보를 모아서 분석한 뒤 전달해준 셈이다. 물론 핸센댁의 장사는 잘 되었다.

검정 고무신이라는 만화가 있다. 1970년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아이들(기철, 기영)이 자라면서 이리저리 치고받는 풋풋한 이야기다. 감정을 가진 개 ‘땡구’가 눈길을 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야기의 힘이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풀도 자라지 않던(불모지) 달리기에서 무려 세 종목 우승을 한 임춘애 선수가 있다. ‘라면 먹고 훈련을 했고, 우유 마시는 동무들이 부러웠다’는 보도에 국민들의 눈시울은 붉어졌고, 입시울(입술)은 들썩였다. 임춘애는 외로워 눈물 나면 달리는 ‘달려라 하니’가 되었고, 국민들은 이 세상 끝까지 달리겠다는 다짐을 했다. ‘임춘애 현상’이라고까지 불렀다. 어려워 헐떡이던 국민들의 마음을 이야기가 파고들었다.

1997년 대한민국은 경제가 무너져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돈을 빌렸다.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힘들었을 때, 골프 선수 박세리는 물에 빠진 공을 치려고 양말을 벗고 채를 휘둘러 우승을 했다. 박세리의 훈련 과정과 정신력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야기가 우리를 다그쳤고, 그 뒤 수많은 박세리를 만들었다.

역사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수없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왕조실록, 영화와 소설과 드라마로 끊임없이 만들었지만, 박시백은 만화로 쉽게 엮었다. 그리스·로마신화, 상상과 현실을 그럴싸하게 풀어 만화로 엮어 아이들에게 안겼는데, 어른들도 만화책을 넘긴다. 조선왕조실록이든 그리스·로마신화든 천자문이든, 소 꼬리뼈도 아닌데 우려먹고 또 우려먹는다. 재밌고, 신나니까, 무엇보다 쉬우니까. 소 꼬리뼈보다 더 영양가 있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 모두가 비슷비슷하다고 고개 돌릴 일 아니고, 우려먹었다고 제쳐둘 일도 아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힘을 얻고, 사랑을 받는다.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혜윰(생각)을 얻고, 새로움을 다짐하고, 이룬다. 슬기로움을 담아서 우쭐거리고 싶어 배우고 익힌다. 그런 이야기들은 입에 침에 마르도록 옮기고 퍼뜨린다. 침이 마르도록 말하느라 물을 마셔 대서 물 부족 국가가 되었나?

아이들이 재잘거릴 때 뭐라 할 일 아니다. 잘 모으면 아이들이 자라는(성장) 이야기가 된다. 욕설은 빼고! 뉴스가 정치와 사회만 뇌까린다고 화낼 일 아니다. 잘 정리하면 익살스런 이야기가 된다. 비난은 빼고! 술자리에서 판을 치는 아슬아슬한 무용담에 참과 거짓을 가리려 다툴 일 아니다. 잘 엮으면 우스꽝스런 이야기가 된다. 성희롱하고 업신여김은 빼고! 이제는 아무런 이야기를 아무렇게 놔둘 일 아니다. 잘 다듬으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돈을 만들 수 있다.

일터에서 흉만 보고 끝나면 인숭무레기(어리석은 사람)가 되지만, 교훈을 얻으면 멋진 놈이 된다. 술자리에서 비난과 뒷담화만 일삼으면 쪼다가 되지만, 깨달음을 얻으면 목대잡이(리더)가 된다. 아이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산다고 야단만 치면 엉너리(어벌쩡한 사람)가 되지만, 고민 해결책을 보면 스승이 된다. 무식하게 떠든다고 투덜거리기만 하면 떠버리가 되지만, 잘 들으면 길을 찾는다.

배운 사람들은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이라 한다. 모든 이야기는 잘 모아서 정리하고 분석한 뒤, 풀어내면(알고리즘)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된다. 스토리텔링은 웃음 속에 생각을 담고, 내 일상에서 교훈을 찾고, 감동을 주는 일이어서 사람들이 좋아한다. 이야기로 사업의 실마리를 찾고, 스토리텔링으로 산업의 꼬투리를 잡을 때다. 말 못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으면 좀 어떠랴, 돈이 된다는데. 핸센댁이 지금 살았더라면 어마어마했겠다. 허허,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