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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발상의 전환이 미래세대 이끈다
워라밸 시대, 문화관광을 키우자 <14> 에필로그
국내외 11개 도시
색깔있는 콘텐츠·차별화된 전략
도시품격·경제효과 창출
제주 ‘빛의 벙커:클림트’전
빅이벤트 통해 ‘문화시너지’ 효과
문화관광 메카로 자리매김
2019년 10월 21일(월) 04:50
흡인력 있는 천혜자원과 랜드마크가 부족한 광주가 관광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재미와 흥행을 갖춘 메가 이벤트와 마이스(MICE) 산업 등 고부가 자원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막한 ‘2019아시아문화주간’의 특별전.
베를린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현장인 홀로코스트 추모비 공원.




베를린 관광청의 홍보책임자 크리스티안 탄즐러.




베를린 관광청의 홍보책임자 크리스티안 탄즐러.








며칠 전 대학생 딸 아이와 제주여행을 다녀온 주부 박선미(55·광주시 서구 광천동)씨는 주말이면 미술관 투어에 나선다. 지인의 소개로 제주도에서 개최되고 있는 ‘빛의 벙커:클림트’전과 유민 미술관을 둘러 본 후 그림 보는 재미에 푹 빠진 것이다. 평소 공연장은 자주 찾는 편이지만 전시 나들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즐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3박 4일간의 여행기간 동안 제주의 여러 미술관들을 방문하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그중에서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소재 빛의 벙커(구 해저광케이블기지)에서 열린 ‘빛의 벙커:클림트’는 단연 하이라이트였다. 높다란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깊은 탄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고 한다. 가로 100m, 세로 50m의 직사각형으로 구획된 어둠속에서 마주한 클림트의 ‘키스’ ‘유디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황홀하기 짝이 없었다. 유명 관광지에서 후다닥 인증샷만 찍고 돌아 다니는 기존 여행에선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번 제주여행을 통해 예술의 매력에 눈을 뜬 박씨는 “기회가 닿는 대로 지역의 미술관이나 문화공간들을 찾아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 한해 제주도는 ‘빛의 벙커:클림트’전으로 전국의 미술애호가는 물론 일반 여행자들을 불러 들이는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지난해 11월부터 오는 27일까지 약 11개월 동안 진행된 ‘빛의 벙커:클림트’전은 압도적인 스케일과 미디어아트라는 독특한 테마로 관광객들사이에 입소문이 퍼졌다. 특히 추석 연휴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 든 인파로 지난달 말 기준 50만 명을 돌파해 미술계의 화제를 모았다.

이번 클림트전을 계기로 제주는 천혜의 자연경관 이외에 유민 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저지 예술인마을, 이중섭 미술관 등 문화인프라가 알려지면서 문화관광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폭발력 있는 블록버스터전 하나가 이뤄낸 쾌거다.

지난 4월부터 격주로 연재해온 ‘워라밸 시대-문화관광을 키우자’ 시리즈를 통해 둘러본 국내외 11개 도시는 색깔 있는 콘텐츠와 차별화된 전략으로 도시의 품격과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문화관광의 현장이었다. 아시아의 문화수도를 지향하면서도 관광도시로서의 콘텐츠와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광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풍성한 볼거리들을 자랑했다.

특히 낮시간대의 전시와 저녁시간의 공연을 연계한 체류형 관광은 광주관광의 미래를 되돌아 보게 했다. 그도 그럴것이 광주는 초대형 복합문화공간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비엔날레, 대인예술시장,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운림동 ·중외공원 미술관 벨트, 레지던시 공간 등 예술적 자산들이 도시 곳곳에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문화관광의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은 게 사실이다. 부산과 제주처럼 흡인력이 강한 바다 등의 천혜자원이 부족한 광주로서는 재미와 흥행을 보증하는 메가 이벤트와 마이스(MICE·국제회의나 전시·박람회 등의 복합적인 비즈니스)산업 등의 고부가 자원을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확산되고 있는 ‘워라밸’(Work+Life Balance)트렌드와도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삶과 일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 시대에는 여행이나 관광이 새로운 여가로 각광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주52시간 근무제 이후 국민들의 여가 패턴은 크게 달라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올 초 발표한 ‘2018 국민여가활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가시간과 비용, 취미·오락 활동이 모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워라밸 시대의 여행은 과거와 결이 다르다. 짧은 기간에 많은 관광명소를 ‘스쳐가는’ 수박 겉?기식 투어가 아닌, 관광지의 역사와 예술, 일상을 체험하는 문화관광(아트 투어리즘)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획을 통해 둘러본 독일의 베를린, 드레스덴, 슈투트가르트, 뮌헨, 프랑크푸르트 등은 문화관광의 벤치마킹도시로 불릴 만 했다. 이들 도시는 고유한 자원을 비롯 유적지, 미술관, 예술인 생가, 심지어 자동차 공장까지 ‘상품’으로 포장해 관광객유치에 올인중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광산업과 다른 건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맞춤형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근래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폐해로 몸살을 앓는 주민들이 늘어나자 현지인처럼 일정기간 도시에 머물며 ‘문화’를 즐기는 ‘스테이 관광’(Stay tourism)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베를린 슈프레 강가의 ‘박물관 섬’(Museuminsel)은 방문객 1530만 명(2018년 기준)을 유치한 독일 관광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었다. 독일 바이에른의 주도이자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인구 140만 명의 뮌헨은 광주와 공통점이 많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BMW의 생산지이자 매년 가을이면 전 세계에서 6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맥주축제)의 개최지이기 때문이다.

다시 광주로 눈을 돌려 보자.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조사한 ‘외국인 관광객 방문지 현황’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외래 관광객 비율은 1.1%로 13위를 기록했다. 월드뮤직페스티벌, 광주비엔날레, 프린지페스티벌 등 빅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는 글로벌 도시의 위상을 무색케 하는 초라한 성적이다.

여기에는 문화관광을 지역의 미래로 키우려는 비전과 전략의 부재가 한몫한다. 지난 2016년 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의 시너지 효과 위해 5·18 광장과 금남로 일대에서 개최하고 있는 프린지 페스티벌의 경우 한해 수십억 원의 예산을 쏟아붓는 ‘정성’에 비해 전당의 방문객 유입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근래 신흥 관광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독일 베를린 관광청의 차별화된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는 11월 9일로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을 맞는 베를린은 ‘30주년’을 정치적 행사로 국한시키지 않고 바우하우스 100주년과 묶어 상상력과 기획력을 접목한 공식 기념행사와 메가 페스티벌, 100여 개의 문화 이벤트를 마련했다.

베를린 관광청 홍보 담당 크리스티안 탄즐러(Christian Tanzler)는 “베를린시와 관광청은 올해 베를린을 전 세계에 ‘띄우는’ 마케팅의 호재로 삼기 위해 2~3년 전부터 치밀한 준비와 콜라보로 기획한 임팩트 있는 콘텐츠를 대거 선보였다”며 박물관 섬의 블록버스터전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 라인업은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게 해 지역 경제에도 적잖은 파급효과를 끼쳤다”고 말했다.

모름지기 문화도시가 성공하려면 다양한 예술적 자원을 관광브랜드로 키우는 중장기 로드맵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명승지 위주의 낡은 패러다임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축제 등으로는 더 이상 감동과 체험을 추구하는 미래 세대를 불러 들이기 힘들다. 특히 광주관광의 ‘빅 피처’를 구현하기 위해선 전문성과 마케팅 등의 역량을 갖춘 ‘컨트롤타워’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끝>

/베를린=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