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문화공간 탈바꿈…추억 어린 주민 사랑방 되다
도시 디자인, 행복한 도시 풍경의 완성
<3> 대구 폐역사의 변신
● 고모역
80년간 대구·경북민 시대의 애환 담겨
가수 현인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 배경
역무원 제복·승차권 등 그대로 전시
구상 시인 시비 등 문화콘텐츠 조성
<3> 대구 폐역사의 변신
● 고모역
80년간 대구·경북민 시대의 애환 담겨
가수 현인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 배경
역무원 제복·승차권 등 그대로 전시
구상 시인 시비 등 문화콘텐츠 조성
![]() 폐역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대구시 수성구 고모역 전경. |
지난 7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김지연 작가의 사진전 ‘남광주-마지막 풍경’전에서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서는 통일호 열차에서 내려 짐보따리를 이고 지고 장터로 모여드는 어머니들의 모습, 기차 옆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 한대를 피워 문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그리고 북적대는 시장 풍경은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주었다.
전시작 중 인상적인 건 흑백사진 속 남광주 역사(驛舍)였다. 어딘가로 떠나는 이들이 북적대는 대합실, 열차 시간표와 낡은 선풍기, 닳아버린 구둣솔 등이 담긴 역무실 풍경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일 터다. 1930년 첫 열차가 출발했던 남광주역사는 70년 세월을 이어오다 지난 2000년 8월 문을 닫았다. 남광주 시장은 현대화됐고 이곳에서는 야시장 등이 열리기도 하지만 세월의 흔적과 추억이 어린 남광주 역사가 사라져버린 건 못내 아쉽다.
취재 차 대구를 방문하고 나니 아쉬움이 더 커졌다. 대구는 폐역사를 무조건 없애는 대신 도시의 또 다른 풍경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어떤 곳은 작은 도서관이 됐고, 어떤 곳은 소박한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재개발 등의 이유로 역사가 본래의 자리에 있지 못할 경우에는 역사를 그대로 뜯어 다른 장소로 이전·복원해 활용중이었다.
폐역사였던 대구시 수성구 고모역은 지난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1925년 개통 후 경부선의 작은 역으로 통근열차와 완행열차 등이 정차했던 고모역은 대구 시가지를 관통하던 대구선 일부 구간이 폐선되고 신대구선이 생기면서 2006년 영업 및 화물 운송을 종료할 때까지 80년 동안 대구·경북민의 삶을 지켜본, 시대의 애환과 사연을 담고 있는 장소다.
고모역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된 건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공공디자인으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면서부터다. 시비와 국비 9억원을 투입하고 대구시와 수성구청, 한국철도공사대구본부가 각각 사업추진, 시설운영, 부지임대 등 역할을 분담해 협업했고 대구경북디자인센터가 사업을 주관했다. 현재 운영은 수성구문화원이 맡고 있다.
고모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로 시작하는 ‘비 내리는 고모령’(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이다. 가수 현인이 1949년 발표한 이 노래의 배경이 바로 고모역이다. 일제 강점기 고모역이 징용으로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헤어진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별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소박한 역사로 들어섰다. 기차를 기다리던 숱한 이들이 사용했을 나무 의자가 그대로 놓여 있는 역사는 대구 철도의 변화와 고모역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졌다. 신문과 잡지 자료 등을 활용한 공간에서는 예전 열차와 고모역의 안팎을 담은 풍경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공간 구석 구석에선 역무원들의 제복, 낡은 승차권, 랜턴, 근무 일지, 신호차단기 등 이곳이 많은 이들을 실어 날랐던 철도역이었음을 보여주는 오래된 물건들을 만날 수 있어 추억에 빠져든다. 역무원 제복과 모자 등은 역사를 찾은 방문객이 직접 입고 사진촬영을 할 수 있으며 엽서 보내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한켠에는 고모역과 관련된 문화 콘텐츠가 전시돼 있다. 1920~30년대 나팔형 축음기와 타자기, 가수 현인 등 시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가요 LP판, 임권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비내리는 고모령’(1969)포스터, 악극 ‘비 내리는 고모령’ 영상 등이다. 또 태블릿 PC를 통해 1930~50년대 가요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
뒷문으로 나오면 바로 개찰구가 보인다.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지만 기차는 여전히 이곳을 지난다. 산책로와 파빌리온으로 이어진 이곳에는 ‘이북 고향에 홀로 남으신채/그 생사조차 모르는 어머니가 예까지 오셔서 기다리신다’로 끝나는, 올해 탄생 100년을 맞은 대구 출신 고(故) 구상 시인의 시 ‘고모역’을 새긴 시비도 보인다. 그밖에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백로서식지, 고모역 등을 잇는 9.5㎞의 ‘고모령 둘레길’도 조성돼 있다.
대구의 또 다른 폐간이역인 동구 동촌역사를 찾아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는 고모역에서 택시를 타고 동촌역을 향하는 내 여정에 대해 묻고는 “고모역은 학창시절 통학열차를 탔던 곳이고 가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던, 추억이 아주 많이 서린 곳”이라고 했다.
1938년 문을 연 대구선 동촌역사는 1930년대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는 우리나라 대표 간이역으로 꼽힌다. 건립 당시 원형을 잘 보존, 건축사적·철도사적 건물로 인정받아 2006년 등록문화재 제303호로 지정됐다. 대합실 출입구의 큰 박공과 조정실의 작은 박공이 철로변에서 보았을 때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촌역사는 아파트 단지와 상가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동촌역은 지난 2008년 폐역됐고, 역사는 지난 2013년 해체됐다. 이듬해 대구선 동촌공원이 조성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복원됐다. 원래 위치에서 300m 떨어진 곳이다. 2014년부터 ‘동촌역사 작은도서관’으로 활용되면서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신발을 벗고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1·2층 복층 구조로 된 아담한 도서관은 모두 4000여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마루바닥에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서가 옆에는 철도유물전시관도 자리하고 있다. 역무원들이 사용하던 직통전화, 옛 역사를 담은 사진 등을 통해 동촌역사의 옛 모습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또 역사 앞에는 기차선로와 철도 침목을 설치하고 공원에는 기차 객석 스타일의 벤치를 놓아두는 등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그밖에 대구선의 또 다른 역사로 동촌역과 같은 해인 2008년 철도영업을 종료한 반야월역사(등록문화재 제270호)는 지난 2011년 신기동에서 신서동 반야월 공원으로 이전·복원됐고 리모델링을 거쳐 ‘반야월역사 작은도서관’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모역 안내판에 쓰인, ‘단절된 폐역사(驛舍)를 살아있는 역사(歷 史)로 재생했다’는 문구가 마음에 남는다. 지하철 남광주역 ‘추억여행 전시관’에서 ‘사진’으로나 만날 수 있는 남광주 역사를 생각하니,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 공간이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새삼 아쉽다.
/대구=글·사진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폐역사였던 대구시 수성구 고모역은 지난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1925년 개통 후 경부선의 작은 역으로 통근열차와 완행열차 등이 정차했던 고모역은 대구 시가지를 관통하던 대구선 일부 구간이 폐선되고 신대구선이 생기면서 2006년 영업 및 화물 운송을 종료할 때까지 80년 동안 대구·경북민의 삶을 지켜본, 시대의 애환과 사연을 담고 있는 장소다.
고모역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된 건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공공디자인으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면서부터다. 시비와 국비 9억원을 투입하고 대구시와 수성구청, 한국철도공사대구본부가 각각 사업추진, 시설운영, 부지임대 등 역할을 분담해 협업했고 대구경북디자인센터가 사업을 주관했다. 현재 운영은 수성구문화원이 맡고 있다.
고모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로 시작하는 ‘비 내리는 고모령’(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이다. 가수 현인이 1949년 발표한 이 노래의 배경이 바로 고모역이다. 일제 강점기 고모역이 징용으로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헤어진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별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소박한 역사로 들어섰다. 기차를 기다리던 숱한 이들이 사용했을 나무 의자가 그대로 놓여 있는 역사는 대구 철도의 변화와 고모역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졌다. 신문과 잡지 자료 등을 활용한 공간에서는 예전 열차와 고모역의 안팎을 담은 풍경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공간 구석 구석에선 역무원들의 제복, 낡은 승차권, 랜턴, 근무 일지, 신호차단기 등 이곳이 많은 이들을 실어 날랐던 철도역이었음을 보여주는 오래된 물건들을 만날 수 있어 추억에 빠져든다. 역무원 제복과 모자 등은 역사를 찾은 방문객이 직접 입고 사진촬영을 할 수 있으며 엽서 보내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한켠에는 고모역과 관련된 문화 콘텐츠가 전시돼 있다. 1920~30년대 나팔형 축음기와 타자기, 가수 현인 등 시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가요 LP판, 임권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비내리는 고모령’(1969)포스터, 악극 ‘비 내리는 고모령’ 영상 등이다. 또 태블릿 PC를 통해 1930~50년대 가요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
뒷문으로 나오면 바로 개찰구가 보인다.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지만 기차는 여전히 이곳을 지난다. 산책로와 파빌리온으로 이어진 이곳에는 ‘이북 고향에 홀로 남으신채/그 생사조차 모르는 어머니가 예까지 오셔서 기다리신다’로 끝나는, 올해 탄생 100년을 맞은 대구 출신 고(故) 구상 시인의 시 ‘고모역’을 새긴 시비도 보인다. 그밖에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백로서식지, 고모역 등을 잇는 9.5㎞의 ‘고모령 둘레길’도 조성돼 있다.
대구의 또 다른 폐간이역인 동구 동촌역사를 찾아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는 고모역에서 택시를 타고 동촌역을 향하는 내 여정에 대해 묻고는 “고모역은 학창시절 통학열차를 탔던 곳이고 가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던, 추억이 아주 많이 서린 곳”이라고 했다.
1938년 문을 연 대구선 동촌역사는 1930년대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는 우리나라 대표 간이역으로 꼽힌다. 건립 당시 원형을 잘 보존, 건축사적·철도사적 건물로 인정받아 2006년 등록문화재 제303호로 지정됐다. 대합실 출입구의 큰 박공과 조정실의 작은 박공이 철로변에서 보았을 때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촌역사는 아파트 단지와 상가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동촌역은 지난 2008년 폐역됐고, 역사는 지난 2013년 해체됐다. 이듬해 대구선 동촌공원이 조성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복원됐다. 원래 위치에서 300m 떨어진 곳이다. 2014년부터 ‘동촌역사 작은도서관’으로 활용되면서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신발을 벗고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1·2층 복층 구조로 된 아담한 도서관은 모두 4000여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마루바닥에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서가 옆에는 철도유물전시관도 자리하고 있다. 역무원들이 사용하던 직통전화, 옛 역사를 담은 사진 등을 통해 동촌역사의 옛 모습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또 역사 앞에는 기차선로와 철도 침목을 설치하고 공원에는 기차 객석 스타일의 벤치를 놓아두는 등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그밖에 대구선의 또 다른 역사로 동촌역과 같은 해인 2008년 철도영업을 종료한 반야월역사(등록문화재 제270호)는 지난 2011년 신기동에서 신서동 반야월 공원으로 이전·복원됐고 리모델링을 거쳐 ‘반야월역사 작은도서관’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모역 안내판에 쓰인, ‘단절된 폐역사(驛舍)를 살아있는 역사(歷 史)로 재생했다’는 문구가 마음에 남는다. 지하철 남광주역 ‘추억여행 전시관’에서 ‘사진’으로나 만날 수 있는 남광주 역사를 생각하니,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 공간이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새삼 아쉽다.
/대구=글·사진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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