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강대석 시인·행정학박사] 세계의 알파벳 한글
2019년 10월 09일(수) 04:50
지난 7월 한글 창제를 주제로 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개봉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그동안 불교계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던 한글 창제의 주역이 승려 신미(信眉·1403~1480)라는 것을 집중 부각시킨 것이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한글은 세종대왕이 직접 창제했다고 알고 있는 터에 사뭇 생경한 신미라는 승려를 내세워 한글 창제의 주역으로 조명함으로써 역사 왜곡이란 비판에 부딪쳐야 했다. 아무리 픽션이라 하더라도 너무 높은 성역을 건드린 것이었다.

영화의 내용처럼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신미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지 아니면 얼마간의 도음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는 세종대왕이 일부 집현전 학자들과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정인지가 쓴 훈민정음 서문에 “계해년 가을에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처음 만들어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집현전 학자들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는 세종실록에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관한 기록이 없으며 훈민정음 창제 소식을 듣고 최만리 등 집현전 학자들이 반대 상소문을 올리며 극렬히 반대했음을 예로 든다.

그러나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 집현전 학자들이 모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집현전학자 중 찬성하는 학자는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성삼문, 최항, 강희안, 이개 등 10여 명이었고, 반대하는 학자는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 7명(상소문 서명자)이었다. 찬성한 학자들 중에는 어명을 받아 명나라 음운학자 황찬(黃璨)에게 13번이나 자문을 받아 오기도(신숙주, 성삼문) 하고, 창제 이후 훈민정음의 서문을 쓰거나(정인지) 운회, 동국정운 등을 언문으로 번역하는 등 한글 창제와 보급을 도왔다.

반면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상소문을 올려 “조선은 대대로 대국을 섬기며 중화의 제도를 준행해 왔는데 이제 언문을 만들어 사용하다 혹 대국에서 이를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어떻게 하며, 설총이 만든 이두도 있는데 어찌 이미 써오던 폐단 없는 글을 고쳐서 따로 야비하고 상스러운 글자를 창조하십니까?”하며 반대했다.

세종대왕은 상소문을 보면서 반대하는 학자들을 모두 불러들여 “이두를 만든 것도 백성을 편리하게하기 위함이며 언문을 만든 것도 백성을 편리하게하기 위함인데, 왜 너희들은 설총은 옳고 내가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느냐,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크게 꾸짖었다. 세종은 애민주의자였다. 그 역시 중국을 섬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백성의 이익과 아픔보다 중국의 눈치를 더 보는 그들이 한없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한글은 세계 최고의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문자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Robert Ramsey)는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세계에 없다. 세계의 알파벳이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일례로 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영어의 경우 알파벳 26자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가 300여 개에 불과하지만 한글은 24자로 8700여 개의 소리를 낼 수 있음에서 그 우수성이 입증된다.

최근 어느 언론 보도에 의하면 케이팝(K-POP)과 한류의 인기를 타고 한국어(한글을 포함)가 글로벌 언어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세계 28개국 1495개 초·중·고교에서 한국어를 제2 외국어로 채택하고 있으며, 105개국 1368개 대학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전공 과정으로 개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가슴 벅찬 소식이다.

훈민정음 반포 573주년이 되는 한글날을 맞이하여 글로벌 언어로 부상하고 있는 한글이 더욱 널리 퍼져 세계의 알파벳으로 통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