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미국 선교사 이역만리 광주서 기독·근대문화 꽃피우다
천년 전라도의 魂<17> <제2부> 전라도, 시대정신을 이끌다 ⑩ 광주의 예루살렘 ‘양림동산’
115년 전 작은 마을 산자락에
교회·학교·병원 세운 선교사들
광주 선교의 전초기지
호남신학대서 ‘고난의 길’ 오르면
동산과 어우러진 소박한 묘역 만나
디딤돌마다 선교사 이름 새겨져
2019년 10월 07일(월) 04:50
광주시 남구 양림동산 선교사기념공원에는 세계에서 유례가 드믄 40여기의 선교사 집단묘역이 조성돼 있다. 이들은 양림동산 일대에서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우고 기독교문화를 비롯해 근대문화를 꽃피웠다.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지난 5일 오후 5시 가을 햇살이 누그러질 무렵 양림동산 선교사묘역, 10여명의 가족 참배객이 해설사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이 곳에는 광주·전남 선교의 아버지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과 ‘클레멘트 오웬’(오기원), 고아의 아버지 ‘로버트 윌슨’(우일선), 한국의 테레사 수녀 ‘엘리자베스 쉐핑’(서서평), 프레스톤, 포사이드, 어비슨, 타마자 등 45명의 선교사·가족이 묻혀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선교사 전용 집단묘역이다.

돌무더기 아래 놓인 작은 묘비들은 동산과 어우러져 소박하다. 교육과 의료,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했던 선교사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양림동산이 ‘광주의 예루살렘’, ‘선교사 마을’로 불린 까닭이다.

이들의 행적을 따라 양림동산을 걷는다.



◇풍장터가 ‘생명의 산’으로

버드나무가 많아 양림이라는 지명이 붙은 양림동산. 해발 108m 뒷동산은 풍장터였다. 돌림병에 걸려 죽은 어린아이들이 버려지는 곳이었다. 115년 전, 이 작은 마을에 서양 선교사들이 찾아왔다. 그 때만해도 공동묘지터라 땅값이 싸고 양반들이 살기 꺼려하던 동네라, 낯선 땅을 찾은 선교사들에게는 정착하기 쉬운 터전이었을 게다.

선교사들은 이 동산에 나무를 심었다. 피칸, 흑호두, 은단풍 나무를 심고 가꾸며 머나 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나무가 주는 열매는 선교사들의 영양을 보충해주는 데도 요긴했다. 산자락에는 교회를 짓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광주 선교의 전초기지로, 풍장터가 근대문화를 전하는 생명의 산으로 바뀌었다.

양림동산 투어는 사직도서관 앞 유진 벨 선교기념관에서 출발했다.

이 곳은 지금 양림동의 태동지다. 1904년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유진 벨과 오웬이 이 곳에 둥지를 틀고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1904년 12월 25일 유진 벨이 광주에서 첫 예배를 보던 곳이다.

유진 벨은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의 집 사랑채에 모인 여학생 3명은 수피아여학교의 첫걸음이었고, 남학생을 모아 공부를 가르친 곳은 숭일학교로 발전했다. 광주기독병원의 전신인 광주 최초 병원인 제중원도 그의 임시 사택에서 시작됐다.

기념관에는 유진 벨의 발자취가 아로새겨져 있다. 광주선교부 역사와 남장로 선교사들을 만날 수 있다. 유진 벨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인요한 박사의 외증조이기도 하다.

호남신학대에서 ‘고난의 길’을 따라 양림동산을 오르면 선교사묘역이다. ‘불편하게 놓인 65디딤돌은 한국에서 선교하는 동안 아내와 자녀를 잃고 이 곳에 묻힌 45명의 선교사와 850여명의 호남 순교자들의 눈물, 아픔, 고통과 피흘림을 느끼는 발걸음이다. 이 불편함이 우리의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이기를’ 바라며 길을 열었다. 디딤돌마다 선교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윌슨길·시핑길 등 선교사들의 이름을 딴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선교사묘역에서 오웬길을 따라 내려오면 5·18 광주학살을 증언한 헌트리(허철신) 선교사 사택을 만나고, 철망울타리 사이로 수피아여고를 접한다.

커티스메모리얼홀(배유지기념예배당,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159호)은 인상적이다. 2층 건축물인 커티스메모리얼홀은 미국 선교사들이 예배를 드리던 곳이다. 수피아여고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수피아홀(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158호)은 1911년 설립된 건물이다.

윌슨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우일선 선교사 사택(광주시 기념물 제15호)이다. 벽돌식 2층 건축물로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다. 1908년쯤 우일선 선교사가 지었다는 얘기만 전할뿐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지 못한다.

사택에 닿기 전 먼저 반기는 건 400살이 넘은 호랑가시나무(광주시 기념물 제17호)다. 호랑가시나무는 호랑이가 이파리에 돋아난 가시 모양의 톱니로 가려운 데를 긁었다고 이름 붙여졌다. 그래서 ‘호랑이등긁기나무’로도 불린다. 가시가 호랑이 발톱처럼 매섭게 생겼다고 ‘호랑이발톱나무’라고도 한다. 호랑가시나무는 완도 등 햇볕 다사로운 전남해안에 많이 자란다. 주변의 호랑가시나무 이름을 붙인 창작소와 게스트하우스가 어여쁘다.

우일선 사택은 서양식 벽돌과 화강석을 재료 삼아 반원형 아치와 층간 돌림띠, 열개창과 오르내리창 등 서구 건축양식이 한데 모여 있다. 한국 전통건축과는 달리 현관이 남향에 위치하지 않고 동향인 것이 특이하다. 회색 벽돌과 정면 2층의 흰색 목조가 어우러져 이국적 풍경을 자아낸다. 드라마 ‘구미호외전’에서 주인공 김태희가 사는 집이었다.

호남신학대에 자리한 우일순 사택의 풍광은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특히 낙엽지는 가을이 일품이다. 우일순 선교사가 씨앗을 가져다 심었다는 은단풍 이야기도 솔깃하다.

아이들을 좋아했던 우일순 선교사는 1908년 이 집에서 장애아와 고아들을 위한 지역 최초 고아원을 열었다. 이후 전쟁 고아들을 보살피는 장소가 됐다. 제중원 원장이기도 했던 우일순 선교사는 헌신적으로 전쟁고아들을 돌봐 ‘고아의 아버지’로 불렸다.

한국의 테레사 수녀, 푸른눈의 조선인 어머니로 칭송받는 엘리자베스 쉐핑은 우일순 선교사와 함께 나병원을 세우고 한센병 환자를 치료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의 주인공이다.

그는 1913년 3월 가난과 전염병으로 고통받던 대한제국에 간호선교사로 발걸음을 했다. 조선사람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고, ‘서서평’이란 이름을 얻었다. 낮에는 간호를 하고 밤에는 한글공부하며 조선인으로 거듭나고자 했다. 부모가 없는 고아들을 데려다 거두고, 이름 없던 과부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글을 가르치며 책을 읽게 도와준다. 한센인들도 거리낌없이 보살폈다.

자신의 식비와 생활비를 줄여 환자와 아이와 과부들을 도왔다. 그에게 주어진 식비는 3원(현 12만~15만원)이었는데, 10전(4000원)으로 허기만 채우고 남은 돈은 조선인들을 도왔다. 끼니를 거르기 일수였고, 결국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시신조차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했다. 그의 유품은 걸인에게 나눠주고 남은 담요 반조각, 동전 7개, 강냉이가루 2홉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의 장례식엔 1000여명의 조선인들이 애통해하며 “어머니”, “어머니” 곡을 했다고 한다. 광주 최초의 시민장이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자선과 교육 사업에 일생을 바친 빈민의 어머니 서서평 양 서거’라는 제목과 함께 ‘재생한 예수’라는 부제를 달아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보다는 섬김)’이었다.

기독간호대학에 자리한 오웬기념각(광주시 유형문화재 26호)은 1914년 설립됐다. 오웬기념각은 선교사로 활동하며 한센병 퇴치에 애정을 쏟았던 오웬 선교사와 그의 할아버지를 기념해 미국 친지들이 보낸 돈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조선 최초 여자 신학교인 이일학교가 태동한 곳이다. 1920년 광주 최초 서양음악회인 김필례 독주회가 열렸고, 광주 최초 서양극 ‘늑대와 소년’이 공연된 ‘광주 근대문화의 발상지’다. 1919년에는 3·1운동을 고취하는 설교가 행해졌으며, 광주YMCA도 여기서 창립됐다. 드라마 ‘각시탈’이 촬영됐던 곳이다.

오웬기념각 바로 옆 옛 광주YMCA 농촌지도자 학교터에는 어비슨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광주 근대문화의 보물창고

양림동은 광주 근대문화의 보물창고다. 110여년 전 광주 최초로 서양근대 문물을 받아들였던 곳이다. 양림동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양림동산 자락의 땅을 구해 그 곳에 교회, 학교, 병원을 세우고 기독교문화를 비롯한 근대문화를 꽃피웠다.

미국에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이역만리 머나 먼 조선을 찾아와 목숨을 걸고 조선인들을 위해 일을 하고, 이 곳에서 사랑과 나눔, 희생과 봉사, 평화와 독립을 실천했다. 새로운 사상과 종교가 이 곳에서 움텄다.

/박정욱 기자 jwpark@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