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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농경문화 속 권선징악 전설 우리와 비슷
아시아문화원류를 찾아서<90>
10부 ‘네팔’
(11) 페와 호수
거지 말처럼 대재앙에 마을이 호수 변해
산등성이 피신 노부부
‘거지가 파괴의 신 시바’ 깨닫고
호수 한가운데 사원 건립
2019년 10월 04일(금) 04:50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포카라 페와 호수 전경. 페와 호수는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흐른 물로 형성됐으며, 권선징악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네팔=글 박기웅·사진 김진수 기자]

“한 끼만 줍쇼….”

네팔 포카라 지역 한 마을에 허름한 차림의 한 남성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돌아다녔다. 옷은 헤졌고, 얼마나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남루한 차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구걸하고 다니는 거지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쫓아버렸다. 얼마나 많은 집을 돌아다녔을까.

그 거지는 구걸이 여의치 않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마을에서도 가장 험한 곳에 있는, 딱 봐도 곧 지붕이 무너져 내릴 듯한 낡은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낡은 집의 문을 열고 나온 주인은 노부부였다. 농사를 짓고 사는 가난한 농부인 노부부는 자신들의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거지를 집 안으로 들였다.

“아무리 어렵게 살고 있지만 집에 찾아온 손님을 그냥 내쫓을 수는 없죠. 얼른 들어오세요.”

노부부는 거지를 반갑게 맞이하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거지는 노부부에게 말한다.

“곧 마을에 큰 재앙이 찾아올 겁니다. 어르신들은 저기 저 산으로 몸을 피하세요.”

거지의 경고를 받아 들인 노부부는 허겁지겁 집을 떠나 산등성이에 올랐다. 그러자 히말라야 산맥에서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며 물대포가 쏟아져내렸다. 그 물은 삽시간에 마을을 집어 삼켰고, 마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거대한 호수만이 남았다. 재앙을 피한 노부부는 마을이 호수로 변한 것을 보고 그 거지가 파괴의 신 ‘시바’(Siva)인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은 호수 한 자리에 자리한 섬에 시바를 모시기 위한 사원 하나를 세운다.

네팔의 제2의 도시이자 최고의 휴양도시, 해발고도 900m에 자리한 포카라(Pokhara)의 ‘페와’(Fewa) 호수와 얽힌 전설이다.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페와 호수는 안나푸르나(Annapurna·8091m) 등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내려온 물로 형성됐다. 호수 면적만 4.43㎢에 달하고 평균 수심은 8.6m, 가장 깊은 곳은 19m로 거대하다. 호수 멀리 안나푸르나가 보이고, 호수 표면에 마차푸차르(Machapuchare·6998m) 그림자가 비치는 등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호수에는 노부부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사원이 하나 있다. 시바 신의 부인 ‘드루가’(Druga)의 화신인 ‘딸 바라히’(Taal Barahi)를 모신 사원이다. 포카라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물 중 하나로, 현지인들은 이 사원을 ‘혼인의 사원’이라고도 한다. 닭이나 오리, 염소 등을 공양하고, 사원을 한 바퀴 돌면 연인과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앞서 페와 호수와 얽힌 전설을 보면 ‘콩쥐팥쥐’와 ‘흥부전’ 등 우리의 이야기와 비슷한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네팔에서 전해져오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이뿐 만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 한 마을에 어린 남매가 있었다. 친어머니를 잃고 몇 년 뒤 아버지가 재혼해 계모가 집에 들어왔다. 이 계모는 자신의 친 자식과 두 남매를 심하게 차별했다. 먹을 것을 주지도, 입히지도, 씻기지도 않았다.

남매는 주린 배를 부여잡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마을 경계 논두렁에서 신기한 허수아비를 만났다. 이 허수아비는 남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씻겨주고, 놀아줬다. 계모는 낮이면 나갔다가 해질녘 들어오는 남매가 이상했다. 분명 먹이지도, 씻기지도 않았음에도 포동포동 살이 찌고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게 아닌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계모는 남매의 뒤를 밟아 허수아비의 존재를 확인했다.

계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남편 몰래 두 남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꾸며 살해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친 자식을 남매처럼 옷을 입혀 허수아비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우리 아이들도 허수아비를 만나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들어오겠지?”

그날, 마음 편하게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계모에게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말을 건넸다. “너희 자식 다 죽었다.” 맨발로 논두렁으로 뛰쳐나간 계모가 본 것은 싸늘하게 식은 자식들의 시신이었다.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처럼 네팔에서는 선함을 권하고 악함을 징계하는 권선징악의 교훈이 담긴 구전이 전해져오고 있다. 전설과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 사회풍습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네팔은 우리처럼 뿌리 깊은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다. 품앗이와 두레 등 일손이 필요한 농경사회 속에서 이웃들과의 끈끈한 공동체 의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을지 모른다. 먼저 선의를 베풀고, 남을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pboxer@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