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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순 전남대 명예교수] ‘선한 사마리아인 법’
2019년 09월 25일(수) 04:50
2000년을 전후하여 ‘선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을 미국, 캐나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제정하였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 법을 시행 중이고 우리나라는 2008년에 제정하였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신약성경 누가복음 10장에서 유래한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다음과 같은 비유로 대답하신다. 어떤 유대인이 산길에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맞아서 거의 죽게 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그를 본 제사장이 피하여 지나가고, 레위인도 그랬다. 세 번째로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사가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했다.

이 비유에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대하는 두 부류, 즉 구조자와 방관자가 나온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란 구조자를 보호하는 ‘선의의 응급 의료에 대한 면책’조항과 방관자를 처벌하는 ‘구조 불이행죄’를 말한다.

유튜브에는 물에 빠진 여성을 건져주고 곤욕을 치른 남성들의 사연이 여러 건 있다. 구조 과정에 여성의 가슴에 손이 닿았다며 구조 받은 여성들이 감사는커녕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심폐소생술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상해를 입었다고 합의금이나 치료비를 요구했다고 한다. 우리 옛말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구조자를 보호하는 우리나라의 ‘선의의 응급 의료에 대한 면책’ 제5조 2항은 ‘생명이 위급한 응급 환자에게 응급 의료 또는 응급 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 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 책임은 감면한다’라고 되어있다.

2016년 10월 대전에서 한 택시기사가 두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던 중 심장 마비를 일으켰다. 이때 승객들은 112 신고도 않고 골프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떴다. 얼마 후 택시기사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이 일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면 그 승객들은 구조 불이행죄로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60프랑 이상 1만 5000프랑 이하의 벌금에 처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방관자들을 비난만 할 뿐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방관자를 처벌하는 구조 불이행죄 법안을 박성중(서울 서초구을) 의원이 2016년 발의했으나 입법화에 실패했다. 윤리적, 도덕적 문제를 법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우세하고 법적용 한계가 모호하다는 이유였다.

프랑스의 ‘선한 사마리아인 법’과 비교하면 우리 법은 반쪽이다. 구조 불이행죄가 없으니 심장 마비의 택시 기사는 황금시간대를 놓쳐 목숨을 잃고, 물에 빠진 여성은 방관자들 앞에서 익사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싫어하고 점점 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간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그 시대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인 제사장과 레위인이 죽어가는 사람을 피해가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들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돕다가 그가 혹시 죽는 경우,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게 되어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제약을 받는다. 이런 사정을 다 알면서도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사마리아인) 같이 하라” 즉, 구조자가 되라고 명령하신다. 누군가의 이웃이 되는 것은 법이나 직무 이전에 사랑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