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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일춘추-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무엇이 정의고 공정인가?
2019년 08월 30일(금) 04:50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던진 충격과 파문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신을 계승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촛불 정신이 지향하는 가치는 공정, 정의, 평등이다. 조 후보자와 관련된 각종 의혹들은 이런 촛불 정신을 정면 부정한다. 조 후보자의 위선과 탐욕으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도로아미타불’ 물거품이 됐다. 조 후보자의 가장 큰 과오는 현 정부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교수 OUT’을 외치며 촛불을 든 서울대 학생들은 “조국 장관되면 공정·정의 배반이다”라고 말한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23∼24일), 조국 후보자 임명에 대해 국민의 60.2%가 반대했다. 20대 젊은 세대에서는 68.6%가 반대했다. 반대 이유로는 ‘여러 의혹 때문에 공정·정의 등을 내세울 자격이 없어서’(51.2%)가 가장 많았다. 여론이 이런데도 대통령이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아집이고 오기다. 조 후보자는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지명됐다. 그런데 도덕적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법 개혁을 완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개혁을 하려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도덕성과 언행일치, 그리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한다.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조국 캐슬’,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단언컨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개혁은 설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읍참조국’(泣斬曺國)을 통해 정의와 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만이 이 정권의 촛불 정통성을 지키는 것이다.

둘째, 집권 여당의 비뚤어진 ‘조국 지키기’다. 민주당은 검찰이 관계 기관과 협의 없이 조 후보자 주변에 대한 전방위 압수 수색에 나선 것을 ‘적폐’ ‘개혁에 저항’이라 하며 ‘기관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주당의 이런 행태는 표리부동의 전형이고 검찰에 대한 정치적 외압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윤석열 검찰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에 엄정한 법 집행’을 당부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윤 총장 인사 청문회 당시만 해도 ‘검찰을 이끌 적임자’ ‘권력 눈치를 보지 않는 검사’라고 두둔하고 칭송했다.

압수 수색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검찰이 적폐가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을 향해 외압을 가하는 집권당이 적폐다. 집권당은 검찰이 아니라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해 청와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집권 여당이 청와대 눈치만 보며 맹목적으로 충성하면 결국 정부를 죽이게 된다.

셋째,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와 법치와의 관계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애드워드 밴필드(Edward Banfield)는 ‘비도덕적 가족주의’란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아무리 비도덕적이어도 용인될 수 있다”는 ‘가족에 대한 무한 충성 감정’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것은 법치 훼손의 주범이고 사회 불신의 근원이다. 부끄러움 없이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 빠져 있는 조 후보자는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법치를 완수할 수 없다.

이제 청와대에 묻는다. 각종 의혹으로 본인이 수사 대상이고 가족이 출국금지 당한 사람이 아직도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 생각하는가? 집권당에 묻는다. 누가 적폐 대상이고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가? 검찰인가 조국인가? 조국 후보에게 묻는다. “당신이 부르짖었던 정의와 공정은 무언인가?” 친구 원희룡 지사의 충고처럼 “386 세대를 욕보이지 말고 부끄러운 줄 알고 이쯤에서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말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행동은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되면 그것이 위선이고 기만이다.

통상, 대통령이 오기를 부리고 특정 인물에 집착하며 집권당이 낯 뜨거운 용비어천가를 불러 대면 정부는 실패한다. 박근혜 실패에서 보듯이 이것은 한국 정치에서 이미 입증된 철칙이다. 조 후보자는 이제 허황된 권력에 대한 집착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게 불철저하고 안이했던 것을 성찰할 때다. 자신이 젊은 시절 매료됐다던 사르트르처럼 자기 안에 있는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