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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 - 5월의 진실을 찾아서 <5> 5월 21일 군 발포
광주행 증언·기록 부정하며 ‘자위권’ 뒤에 숨은 전두환·정호용
백주대낮에 국민 수십명이 계엄군 총에 희생됐는데
왜·누구 명령으로·어떻게 사격이 이루어졌는지 규명 못해
군 수뇌부 21일 새벽 4시 30분 회의 뒤 줄줄이 광주행
오전 8시 진돗개 하나 발령 … 계엄군에 실탄 분배
정호용 등 헬기로 광주방문 하고도 부인하는 이유 밝혀야
2019년 07월 25일(목) 04:50
1980년 5월 21일 12시 께 광주시민과 공수부대원이 도청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시민들은 불과 한 시간 뒤 집단발포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문서 1. 자위권 발동






문서 2. ‘기갑학교 부대사’에 나오는 진돗개 하나 발령






문서 2. ‘기갑학교 부대사’에 나오는 진돗개 하나 발령






문서 5. 전두환과 정호용이 광주에 있지 않았다고 한 보안사 기록






문서 3. 이희성 계엄사령관 동정 일지






5·18민주화운동의 진실규명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은 군 발포에 관한 부분이다. 국민의 군대가 자국의 국민을 상대로 발포를 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희생되었지만, 아직까지 왜(why), 누구의 명령(who)으로, 어떻게(how) 사격행위가 이루어졌는지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군 기록의 발굴과 검증을 통하여 군 발포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다.



◇5월 21일 군 발포에 대한 신군부의 주장과 특검의 수사결과

신군부가 계엄군의 최초 사격이라고 주장하는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발포와 진압과정에서 35명 이상의 시민이 총상으로 사망했다. 군의 발포는 작전과 명령에 의해서만 수행된다. 그러나 신군부는 5월 21일 군의 집단발포는 위급 상황에서의 자위권 조치였으며, 지휘관에 의한 발포 명령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신군부가 주장하는 자위권은 문서 1과 같이‘국가의 안전과 생명 및 재산을 보호함에 있어 급박 부당한 위해를 제거하기 위하여 부득이 실력을 행사하여 방위하는 권리’이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사격은 방어적 행위로서 군 수뇌부나 지휘관이 아닌 현장 부대원이 판단할 수 있으며 발포의 책임은 면제된다.

1995년 특검은 계엄군의 발포와 관련하여‘실탄 및 사격통제’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발포는 지휘관인 공수부대 대대장들이 차량 돌진 등 위협적인 공격을 해오는 시위대에 대응하여 경계용 실탄을 분배함으로써, 이를 분배받은 공수부대 장교들이 대대장이나 지역대장의 통제 없이 장갑차 등의 돌진에 대응하여 자위 목적에서 발포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은 자위권 차원의 불가피한 사격이라는 신군부의 기존 주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운 결과였다. 과연 지금까지의 주장과 판단처럼 군의 사격은 작전과 명령체계가 아닌 위급 상황에 처한 현장 부대원들의 자위권 차원이었을까?



◇5월 21일 오전 8시 진돗개 ‘하나’발령

1980년도 ‘기갑학교 부대사’는 5월 21일 군의 사격이 군의 작전과 명령에 따른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기갑학교 부대사는 2017년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가 현지 부대 방문 조사과정에 서류창고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1980년 작성 이후 존재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기갑학교 부대사에는 진돗개 ‘하나’발령에 따른 기갑학교의 조치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탄약분배에 관한 내용이다. 계엄사령부는 5월 21일 오전 8시 전교사 관할지역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문서 2에서 확인되듯이 진돗개 하나가 발령됨에 따라 기갑학교는 24시간 무전을 개방하고, 실탄을 부대원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한다. 탄약분배는 M16은 개인당 90발, 권총은 개인당 14발, 30LMG은 화기당 250발씩을 지급한다. 8시 15분 비상조치 접수 이후 8시 35분 탄약수송 차량이 출발하여 11시 분배를 최종 완료했다.

진돗개 하나 발령에 따라서 실탄을 분배한 기갑학교의 조치는 진돗개 하나 대응 매뉴얼에 따른 것이었다. 진돗개 하나는 군의 방어 준비태세에서 최고 수준의 대응으로 전투태세를 의미한다. 진돗개 둘의 경우 출동태세로‘탄약 기본 휴대량 지급 준비 및 추가 보급 계획 검토’ 수준인 반면에 진돗개 하나로 대응태세가 격상되면‘탄약 기본 휴대량 지급 및 추가 보급 조치’를 취해야 한다. 1980년 당시 진돗개 하나 대응 매뉴얼은‘유·무선통신 24시간 개방 운영, 실탄 지급, 책임지역 작전 실시’등을 규정하고 있다. 문서 2의 기갑학교 조치는 대응 매뉴얼과 일치한다.

진돗개 하나 발령에 따라서 전교사 관할 지역인 광주·전남북지역 일선 부대에는 오전 8시부터 실탄을 지급했다. 전교사에 배속된 7공수여단, 11공수여단, 3공수여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부 기자들이 오전 10시경 도청에서 목격한 공수부대원들의 실탄분배는 일부 대원들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대응 매뉴얼에 따른 정상적인 조치였다.



◇5월 21일 군 수뇌부의 역할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기 5시간 전, 계엄사령부의 진돗개 하나 발령으로 군에 실탄이 지급되고 전투태세가 완비되었다. 그러나 군 기록 및 관계자의 증언에서 진돗개 하나 발령에 따른 대응조치는 언급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위권 차원의 사격이라는 신군부의 주장과 배치되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진돗개 하나 발령은 군 수뇌부가 결정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법적 책임도 이들이 져야 한다. 자위권과 같이 일선 부대의 책임으로 전가할 수 없는 것이다.

5월 21일 새벽 4시 30분 이희성 계엄사령관 주재로 열린 계엄사 대책회의에서 진돗개 하나 발령을 결정했다. 문서 3의 이희성 계엄사령관 동정일지에서 확인되듯이 새벽부터 개최된 회의에는 계엄사령부 핵심 수뇌부가 모두 참여했다. 이 회의에서 계엄군을 광주시내로부터 외곽으로 재배치하고,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자위권 보유 천명에 관한 계엄사령관의 기자회견은 오후 7시 30분이었고, 자위권 발령 시기도 5월 22일 12시라는 점에서 5월 21일 새벽에 개최한 회의에서 자위권 발동을 주로 논의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계엄사령관이 주재하는 회의가 새벽부터 열리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으로서, 군 수뇌부가 새벽에 회의를 개최할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 광주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5월 21일 새벽 4시 30분 회의의 개최 이유는 5월 20일 자정에서 5월 21일 2시 사이 3공수여단이 광주역에서 자행한 집단발포와 더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3공수여단의 집단발포에 따른 대책으로 진돗개 하나 발령과 자위권 보유 천명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4시 30분 회의 이후 계엄사령관의 동정을 보면 5분, 10분 단위의 참모 보고가 연속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벽 회의에 참여한 육군본부의 핵심 인사들의 광주행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5월 21일 오전 광주를 방문한 군 수뇌부는 정호용 특전사령관, 조홍 헌병감, 김재명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등으로 확인된다. 문서 4와 같이 보안사 자료에 따르면 5월 21일 특전사령관 외 2명, 헌병감외 5명이 UH-1H를 이용하여 오전에 각각 광주를 방문했다. 이 시각은 최근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씨와 공군 706보안부대장 운전병 오원기씨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방문했다고 주장하는 시각과 거의 일치한다.

전두환과 정호용은 5월 21일 광주를 방문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1988년 505보안부대원 허장환씨가 전두환 광주 방문설을 제기했을 때 보안사는 비망록과 군 기록 확인을 통해서 문서 5와 같이 전두환과 정호용은 광주를 방문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보안사 2처가 1980년부터 존안하고 있는 보안사 자료 문서 4에 따르면 정호용 특전사령관은 5월 21일 오전 8시 헬기를 이용하여 광주를 방문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동정일지에 기록된 특전사령관 보고 시간과 문서 4의 헬기 출발 시간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호용의 광주방문은 사실로 보인다.

이렇듯 5월 21일 진돗개 하나 발령 이후 왜 군 수뇌부 인사들이 대거 광주를 방문했는지? 또 군 기록으로 광주 방문이 확인된 정호용 특전사령관의 경우 한사코 5월 21일 광주방문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5월 21일 발포의 진실이 담겨있을 것이다.

/hes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