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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14>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바보들의 행진’
‘가위질’ 전성시대 별들의 ‘반항시대’
성도덕의 타락 ‘별들의 고향’
도시로 상경한 여성의 삶 녹여낸 ‘영자의 전성시대’
청춘들 방황·고뇌 담은 ‘바보들의 행진’
2019년 07월 24일(수) 04:50














다시 말하지만, 유신시대는 억압의 시대였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같은 신체를 단속한 것은 물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침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그걸 묵묵히 감수해야 했던 시대가 바로 유신시대였다.

또한, 유신시대는 문화와 예술작품에 대한 통제와 검열이 극에 달했다. 그러니까 10월 유신과 함께 더욱 엄혹해진 검열은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오래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많은 영화인들은 체제에 순응했고, 만들어지는 영화들도 타성에 젖은 영화들이 양산되었다. 말 그대로 한국영화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혜성같이 등장한 영화가 있었다. 바로 ‘별들의 고향’(1974)이다.

당시 한국영화의 최고 관객 수가 5만 명 남짓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별들의 고향’이 동원한 46만이라는 관객 수는 엄청난 숫자였다. 나이 스물에 신상옥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를 시작했던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은 그렇게 한국영화를 기사회생시키며, 한국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별들의 고향’은 경아(안인숙)와 문호(신성일)가 동거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경아가 그동안 만난 세 남자를 플래시백으로 소환한다. 경아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며 첫 번째 남자 영석(하용수)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영석은 경아의 순결을 빼앗은 후 경아를 배신한다. 그리고 경아가 두 번째 만난 남자인 만준(윤일봉)은 과거 부인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경아의 낙태 경험을 문제 삼아 이별을 고한다. 또 다시 버림받은 경아는 결국 호스티스로 전락하게 되고, 이때 만난 건달인 동혁(백일섭)은 경아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현재 만나고 있는 문오 역시 경아를 버린다.

그렇게 경아는 사회의 비정과 남자들의 배신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별들의 고향’이 흥미로운 것은, 경아의 비극에 많은 관객들이 남 일이 아닌 것처럼 반응했다는 것이다. 당시 관객들은 남자들로부터 버림받은 경아가 피붙이라도 되는 양 ‘경아’를 가슴앓이하며, ‘경아 신드롬’을 만들어 냈다.

‘별들의 고향’은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기존의 한국영화들과는 차별화되었다. 다양한 앵글의 사용과 과감한 몽타주 그리고 플래시백을 활용한 내러티브 전개와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사운드트랙까지, ‘별들의 고향’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젊은 감각의 영화였다.

1975년 구정프로로 개봉한 ‘영자의 전성시대’ 역시 한국영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영화다. 조선작의 단편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무진기행’을 쓴 소설가 김승옥이 각색했다. 김승옥은 ‘감자’(1968)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했고, 당시 한국영화의 시나리오를 15편 남짓 쓰기도 했다. 김승옥의 각색은 원작의 사회비판적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고심했다. 그리고 원작의 결말을 바꾸고, 캐릭터를 몇 명 더 추가하며 영화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이 각색을 토대로 김호선 감독은 시골에서 상경해 모진 고생을 다하는 영자의 아픔을 실감나게 담아냈다.

이에 관객들은 시대의 공기를 생동감 있게 포착해낸 이 영화에 열광적으로 화답했다. 시골의 자식 많은 집의 맏딸인 영자(염복순)는 상경해서 식모가 되고 철공소에서 일하는 창수(송재호)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창수가 베트남으로 떠나게 되면서 이들의 사랑은 중단된다. 이후 영자는 주인집 아들에게 겁탈을 당한 뒤 쫓겨나게 되고, 봉제공장 여공, 빠걸, 버스차장 등을 전전하게 된다. 그리고 버스차장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한쪽 팔을 잃게 되고, 결국 몸을 파는 여인으로 전락한다. 그러니까 영자는 시골에서 상경한 여성들의 삶을 한 몸에 녹여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영자는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탄생시킨 인물이다. 급격한 도시화는 이농현상을 불러왔고, 우리들의 영자는 시골에서 올라와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되거나 버스안내양이 되거나 식모가 되었다. 그리고 그도 아니면 호스티스가 되었다. 그러니까 영자의 비천한 연대기에는 개발이란 이름 아래 인권과 복지가 처참하게 무시되던 시절의 시대상이 녹아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그 시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영화다.

1975년 5월 개봉한 ‘바보들의 행진’ 역시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 중 한 편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유신시대의 흔적이 아로새겨진 영화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기도 하다.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대 당시 젊은이들의 방황과 꿈과 현실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장발단속,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 음주문화, 단체미팅 등 70년대 청춘풍속도를 엿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각본 단계에서부터 극장에 걸리기까지 5차례에 걸친 사전검열을 받았다. 그리고 개봉을 앞두고 검열을 받기 위해 제출한 필름이 15분 잘려나갔다. 이에 하길종 감독은 “영화는 없다”고 절규했다. 그리고 영화 속에 삽입된 송창식의 노래 ‘왜 불러’와 ‘고래사냥’은 공연예술윤리위원회에 의해 금지곡 판정을 받고 음원 판매도 금지당했다. 그러니까 유신시대의 권력은 자의적인 잣대로 영화와 음악을 검열하고 훼손했으며 금지시켰다.

그러나 ‘바보들의 행진’은 그렇게 가위질을 당하고도 다양한 발언이 은유적으로 녹아있고, 위선적이며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담겨있다. ‘바보들의 행진’은 유신시대를 향해 던진 화염병이었다.

‘바보들의 행진’은 ‘별들의 고향’과 함께 70년대 최인호 원작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니까 두 영화는 최인호의 원작 덕을 톡톡히 본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별들의 고향’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소설이고, ‘바보들의 행진’ 역시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소설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장호와 하길종의 연출력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감독은 ‘영자의 전성시대’의 김호선 감독, ‘묘녀’(1974)의 홍파 감독, 그리고 변인식 평론가 등과 함께 ‘영상시대’를 결성하기도 했다. 영화를 통제하는 군사정부의 탄압이 점점 더 심해지는 가운데, ‘영상시대’는 한국영화의 예술화를 실천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동인지를 발간하고 신진 인력을 양성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으나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조대영 광주독립영화관 프로그래머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