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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역설의 미학, 홍어
2019년 06월 27일(목) 04:50
목포종합수산시장 초입에는 전국 각지로 홍어 택배를 보내는 전문점이 즐비하다. 택배 박스에 홍어를 담기 위해 썰고 있는 아주머니 옆에서 삭힌 홍어 두어 점 얻어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맛있는 홍엇집을 찾겠다고 왜 그런 수고를 했는지 허무해진다. 모름지기 음식은 많이 먹어 본 사람들이 잘 만든다. 홍어 삭히는 솜씨로는 목포 사람들의 감각을 따를 수 없다. 그렇게 곰삭은 내음을 따라 목포 홍어 기행을 다니다 보면 두 편의 시가 생각난다.

경상도 출신 정일근 시인이 쓴 ‘홍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 질 때/ 푹 삭힌 홍어를 먹고 싶다/ 값비싼 흑산 홍어가 아니면 어떠리/ 그냥 잘 삭힌 홍어를 먹고 싶다/ 신김치에 홍어 한 점 싸서 먹으면 지린 내음에 입안이 얼얼해지고/ 콧구멍 뻥뻥 뚫리는 즐거움을/ 나 혼자서라도 즐기고 싶다”

한편 전라도 출신 손택수 시인이 쓴 ‘홍어’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요즘도 나는 어쩌다 그 홍어란 놈이 생각나는 것이다/ 세상에 나서 처음 먹는 음식인데/ 언젠가 맛본 기억이 나고/ 무슨 곡절인지 울컥 서러움이 치솟으면/ 어머니 배 속에 있던 열 달이 생각나곤 하는 것이다”

같은 음식인데 누구는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 질 때’ 생각난다 하고, 누구는 ‘어머니 배 속에 있던 열 달’이 생각나는 음식이라 한다. 홍어는 그만큼 서사적이고 스펙타클한 음식이다.

홍어 이야기를 조금 뜬금없는 관점에서 해 보기로 하자. 포도는 80% 이상이 수분이다. 따라서 단맛과 향이 강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분을 얼마만큼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이유로 세 가지 독특한 와인 제조 방식이 있다. 수확한 포도를 햇볕에 말려 건포도로 만든 다음 와인을 제조하는데 이를 ‘아마로네’라고 한다. 수확 시기를 일부러 늦추면 낮은 온도에 포도가 얼게 되는데, 이때를 맞춰 과즙만 짜서 만든 것을 ‘아이스와인’이라고 한다. 잘 익은 포도에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a)라는 하얀 곰팡이가 피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곰팡이는 포도알의 수분을 빼앗아 버린다. 이런 곰팡이가 핀 포도만 따서 만든 것을 ‘귀부와인’이라고 한다.

이때 귀부(貴腐)란 ‘고귀한 부패’를 뜻하는 영어 단어(noble rot)를 직역해 일본인들이 만든 단어다. 만인은 평등하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부패에는 엄연한 등급이 존재한다. 썩어서 못 먹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썩었기 때문에 존재가치가 증명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쏘떼른 지방에서 생산되는 ‘샤또디껨’이라는 귀부와인은 세계 최고 와인으로 손꼽힐 정도다. 귀부라는 단어 자체도 모순이거니와 부패해서 최고의 와인으로 환골탈태하는 과정 자체도 모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삭힌 홍어 역시 만만찮다. 홍어는 껍질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많이 묻어 있을수록 신선한 것으로 친다. 헌데 이 액체의 정체가 수상쩍다. 동물은 몸속 노폐물인 요소를 오줌으로 내보내게 되는데, 홍어는 특이하게 피부로 내보낸다. 그 요소가 발효하면 암모니아가 발생하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 원래 암모니아는 독성을 지니므로 이건 발효가 아니라 부패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홍어의 경우는 오히려 인체에 유해한 세균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래서 홍어는 상온에서도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다. 유해한 암모니아 덕분에 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특유의 냄새와 육질을 만들어 내니 이 또한 모순이다. 그래서 홍어를 두고 ‘역겨워야 완성되는 역설의 미각’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홍어·청국장·낫토·블루치즈 등 냄새가 고약한 발효 음식은 쉽게 친해지기 어렵지만, 일단 맛을 들이면 묘한 중독성이 있다. 고약하기로 따지자면 삭힌 홍어가 그중 제일이다. 따라서 중독성 또한 가장 강하다. 전라도의 잔치 음식이던 홍어는 이제 전국적으로 애호가를 거느린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대단히 아쉽게도 국내에서 소비되는 홍어의 90% 이상은 수입된 것이다. 흑산도홍어는 귀한 물건이 되었고 그만큼 몸값도 올랐다.

국산이건 수입이건 우리나라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홍어는 나주시와 목포시 등으로 모인다. 과거 흑산도 등지에서 잡힌 홍어는 영산강 뱃길을 따라 영산포에 닿았다. 5~6일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갓 잡은 홍어는 자연스레 삭힌 홍어가 되었다. 그 전통이 남아 지금도 이 지역에는 수백여 곳에 이르는 가공공장과 도소매점이 몰려 있다.

비록 스토리만 남았을지언정, 바로 그 스토리가 홍어 맛을 더욱 곰삭은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목포의 맛을 ‘역설의 미학’이라 정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