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치사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만화로 떠나는 ‘역사여행’
>>> 만화로 역사를 기록하는 박시백 화백
한겨레신문 시사만화가로 데뷔
신문사 그만둔 후 집에 칩거
13년에 걸쳐 ‘조선왕조실록’ 출간
총 20권… 조선 정치사 담아내
일제강점기 다룬 ‘35년’4·5권 출간
‘재미’와 ‘기록’은 만화의 두 얼굴
한겨레신문 시사만화가로 데뷔
신문사 그만둔 후 집에 칩거
13년에 걸쳐 ‘조선왕조실록’ 출간
총 20권… 조선 정치사 담아내
일제강점기 다룬 ‘35년’4·5권 출간
‘재미’와 ‘기록’은 만화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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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박시백(55)은 만화로 이 시대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이다. 그는 1990년대에 만평과 스토리 만화로 시대의 자화상을 그렸다. 신문사 퇴직 후에는 꼬박 13년간 ‘조선왕조실록’을 새로운 시각에서 쓰는 대장정에 나섰다. 현재는 일제강점기 역사와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치열한 삶을 생생하게 다루는 ‘35년’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일제강점 35년의 역사는 부단한, 그리고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다!”
박시백 화백은 최근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역사만화 ‘35년’(비아북 刊) 4·5권을 출간했다. 지난해 1월에 1~3권을 펴낸 지 1년5개월만의 일이다. 하루 7~8시간 동안 꼬박 만화작업을 했다. 4권은 ‘1926~1930 학생 대중아 궐기하자’, 5권은 ‘1931~1935 만주 침공과 새로운 무장투쟁’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박 화백은 ‘35년’ 서두에 실린 ‘작가의 말’을 통해 정유재란이 끝난 후 ‘일본군을 패퇴시킨 것은 오로지 명나라 군대의 힘이요, 조선의 군대가 한 일은 거의 없다’라고 말한 선조와 해방된 후 ‘해방은 오로지 미군과 원자폭탄의 덕이고, 우리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라고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비시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일제 강점 35년의 역사는 부단한, 그리고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다. 비록 독립을 가져온 결정적 동인이 일본군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임을 부정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식의 설명은 무지 혹은 의도적 왜곡이다. 자학이다.”
◇생소한 사회주의자 독립운동가 활동상 소개=그의 일제강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가다 보면 여태껏 알지 못했던 많은 선각자와 독립운동가들을 만나게 된다. 간도에 ‘명동촌’을 건설한 김약연과 독립운동을 위해 가산을 처분하고 집안 차원의 망명을 한 이회영 6형제, 50여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향한 김대락, 대한광복회를 조직한 박상진, 하와이에서 무장투쟁을 준비하는 박용만 등 끊임없이 이어진다.
또한 작가는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 운동가들도 빠짐없이 소개한다. 대한제국 장교출신으로 한국최초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조직한 이동휘와 연해주에서 태어나 극동인민위원회 외무위원장을 지낸 조선 최초의 볼셰비키(사회주의자)인 김 알렉산드라(1885~1918)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아무르 강변에서 총살을 당하기 전 13걸음을 걸은 다음 마지막 진술을 한다.
“지금 내가 걸은 열세 걸음은 조선의 열세 개 도(道)입니다.”
이러한 그녀의 최후 모습을 작가는 한 컷의 그림 속에 담담하게 담아내 더욱 독자들에게 울림을 준다. 각 권마다 부록으로 연표와 인명사전, 사료읽기가 붙여져 있어 독자들의 ‘역사여행’을 돕는다. 각 책에 수록된 100여권의 참고문헌을 보면 ‘35년’의 탄탄한 스토리가 작가의 폭넓은 공부와 열정에서 비롯됐음을 깨닫게 된다.
“정말이지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 그 행적이나 쌓았던 성과가 대단히 큼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분들이 너무 많고, 물론 이름없이 사라져간 독립운동가도 너무 많아요. 가급적 많은 사람들, 많은 사건들, 많은 투쟁들을 소개해야지 하는 게 제 의도였죠.”
특히 작가는 ‘35년’을 집필하며 독립 운동가뿐만 아니라 친일행위를 한 인사들의 이름도 꼼꼼하게 기록한다. ‘을사오적’(이완용·박제순·이지용·권중현·이근택)을 비롯해 송병준, 이용구, 윤택영, 민영린, 조희연, 박영효, 신응희, 이규완, 김관현, 김윤식 등 많은 친일파 이름을 들춰낸다.
◇시사만화가에서 역사 만화가로 변신=제주 태생인 박 화백은 1996년 6월에 한겨레신문 박재동 화백의 뒤를 이어 시사만화가로 데뷔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사물의 핵심을 찌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의 시사만평인 ‘한겨레 그림판’과 스토리가 있는 따뜻한 감성의 ‘그림세상’을 지면에 선보여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 그는 TV사극을 보면서 역사에 대한 지식부족을 깨달았다. 신문사 도서실에서 틈틈이 조선사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이런 과정에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조선사가 ‘삼국지’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는 2001년 4월 신문사를 그만 뒀다. ‘조선왕조실록’의 매력에 빠져 만화로 그리는 작업을 위해서 였다. 또한 반복되지만 매번 새롭게 그려야 하는 신문만화 특성상 에너지가 소진돼 갈 때였다.
‘조선 정치사’를 만화로 그리겠다며 전업 작가의 길로 나선 그는 ‘국역 조선왕조 실록’ CD-ROM을 구입해 정독하면서 역사교양만화인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시작했다. 궁궐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자료를 찾아 헌책방을 뒤졌다. 마침내 2003년 6월에 이성계의 조선개국 과정을 담은 ‘조선왕조실록’ 첫 권(휴머니스트 刊)이 세상에 선을 보였다. 같은 해에 ‘대한민국 만화대상’ 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마지막 권인 20권이 출간된 때는 2013년. 시작부터 완간까지 꼬박 13년이 걸렸다. 그의 ‘조선왕조실록’작업에 대해 박재동 화백(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마치 ‘팔만대장경’을 끌어안아보는 기분”이라고 평가했다.
작가는 ‘35년’ 4·5권을 끝내자마자 곧장 6·7권을 그리기 위한 공부에 들어갔다. 1936년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를 다룰 예정이다. 예전에는 펜화로 그렸지만 지금은 태블릿 PC로 작업한다. 그렇지만 당시 상황과 인물을 완벽하게 자기 걸로 소화해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변함없다. 누가 대신 ‘공부’를 해 줄 수도 없고, 콘티나 구성을 대신해 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늘 혼자서 ‘공부’하고 작업을 이끌어간다.
박 화백이 ‘35년’을 그리면서 겪는 애로는 ‘공부’다. ‘조선왕조실록’은 메인 사료가 딱 하나 있으니까 충실히 읽기만 하면 되는데, ‘35년’은 이런 책, 저런 책이 서로 충돌하면 누가 옳은지 찾아봐야 된다. 더욱이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35년에 오늘날 한국사회의 원형(元型)이 있다’라고 말한다.
“원형이라기보다 사회의 지형인데, 여전히 각 사회의 주류는 당시 친일을 했던 세력들의 맥을 잇는 직접적인 후손이건, 이념적 후손이건 여전히 그러한 경향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한 번도 바로 세워지는 이런 과정을 못 밟은 것이 안타까운 일이죠.”
작가에게 만화는 무엇일까? 그는 “만화는 만화다”라고 말한다. ‘재미’와 ‘기록’은 만화의 두 얼굴이다. 박시백 화백은 이 시대의 자화상을 기록하는 일에서 조선의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젖히고 있다. 그의 ‘조선왕조실록’과 ‘35년’ 대장정을 마친 이후 행보는 어느 방향으로 이어질까? 그는 예단하지 않는다. 해방공간이나 현대사, 또는 고려사 등 길은 모두 열려있다. 무엇보다 그의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