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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문화 원류를 찾아서 <84> 10부 ‘네팔’ (5) 왕정이 꽃피운 건축문화
경쟁하듯 세워진 화려한 사원…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네팔 ‘말라왕조시대’ 3대 중세도시 카투만두·파탄·박타푸르
현란한 목각기술·처마에 그려진 ‘카마수트라’ 독특한 건축문화 자랑
도시 정비·예술 발달·힌두교 번성 등 네팔 문화·종교 부흥기
2019년 06월 18일(화) 04:50
네팔 파탄(Patan) 더르바르(Durbar) 광장 전경. 파탄은 ‘아름다운 도시’라는 ‘랄릿푸르’라고 불리기도 한다. 네팔의 3대 중세도시 중 하나로, 문화의 꽃을 피웠던 말라(Malla) 왕조 시대 사원과 탑 등 건축물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네팔 파탄=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네팔은 오랫동안 왕정국가를 유지했다. 2008년 5월 28일 왕조의 군주제를 철폐하고 ‘네팔 연방 민주공화국’으로 재탄생 하기 전까지 국왕이 존재한 왕정국가였다.

수천년을 이어온 왕정국가 체제는 네팔 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네팔만의 독보적이고 화려한 건축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왕조가 있었으니 바로 말라(Malla) 왕조다.

네팔의 현재 수도 카투만두(Kathmandu)를 비롯해 파탄(Patan)과 박타푸르(Bhaktapur)는 네팔의 3대 중세도시로 꼽힌다.

고대 네와르 왕국의 도시로 15세기부터 17세기 말까지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말라 왕조의 수도였다. 말라 왕조의 왕자들은 1482년 당시 아버지이자 왕이던 아크샤 말라가 사망하자 카투만두와 파탄, 박타푸르에 각자의 국가를 세우고 수도로 삼았다.

그렇게 이 3곳에는 모두 왕궁이라는 뜻의 더르바르(Durbar)라는 광장을 가지게 됐다. 힌두교를 바탕으로 견고한 사회 체제를 구축한 말라 왕조 시대 세 도시는 당시 문명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의 찬란한 문화를 경쟁하듯 광장에 정교하고 화려한 사원과 탑, 조각상을 세우기 시작했다. 파탄과 박타푸르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뛰어나고 독특한 건축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고대 인도어로 ‘신에게 귀의한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박타푸르는 카투만두 분지 네와르족의 고유한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랄릿푸르’(Ralitpur·아름다운 도시)라는 의미를 품은 파탄도 토착양식을 그대로 가진 네팔건축의 미(美)를 보존하고 있다.

세 도시의 건축물은 목재를 다루는 기술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건축물을 휘감고 있는 현란한 목각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의 모습이다. 처마를 받치는 목각 기둥에는 적나라하게 묘사된 성교(性交) 장면이 새겨져 있다. 힌두교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마수트라(Kamasutra)다.

말라 왕조 시대는 네팔 문화의 부흥기이자 종교의 부흥기이기도 했다. 사회와 도시의 정비는 물론, 문학과 음악, 예술이 발달했다. 풍요가 흘러 넘쳤고, 힌두교가 번성했다.

종교에 심취한 백성들은 수행에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과도한 수행은 문제를 낳았다. 모두 ‘도사’(道士)가 되길 바라며 종교에 심취해 성관계에는 무관심했다. 당연히 아이를 낳는 백성이 줄어들고, 자칫 인구가 부족해지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왕국은 광장 건축물에 카마수트라를 새겨 넣어 백성들이 성(性)에 관심을 끊지 않도록 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일화도 있다. 북쪽으로 히말라야 산맥을 품은 카투만두 분지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며, 우기에는 밤하늘 천둥과 번개가 쉼 없이 몰아치곤 한다. 애써 세운 건축물이 번개에 훼손될 수 있는 탓에 야한 장면을 담았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네팔 신화 속 천둥과 번개의 신은 여신이자 처녀신이라고 한다. 야한 장면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란다.

독특하게도 말라 왕조 시대 건물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다. 새가 둥지를 틀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비둘기가 들어가 살 수 있도록 구멍을 만들고, 작은 구멍엔 참새가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건축물 하나에도 인간과 신, 자연이 공존하고 어우러지고 있다.

카투만두와 파탄, 박타푸르의 왕궁은 늘 백성 가까이 있었다. 성문과 성벽 같은 경계 없이 민가와 어우려졌고, 광장에 모인 수많은 백성과 허물 없는 관계를 이어갔다. 지금도 왕조가 꽃피워낸 화려한 건축물 아래 네팔의 국민들은 모여들고 있다. 처마를 그늘 삼아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떠받들고 우러러보는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과 공존하는 문화인 셈이다.

/네팔 박타푸르=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

/네팔 박타푸르=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