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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식 칼럼]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가
2019년 04월 17일(수) 00:00
촛불 시민의 염원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다음달 10일이면 출범 2년을 맞는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주도한 광장의 열기만큼이나 첫출발은 비장했다. 그 비장함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잘 투영돼 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습니다.” ‘국민 통합’을 취임 일성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국민의 뇌리에 가장 깊숙이 각인된 말이 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특유의 감성과 수사법으로 직조된 취임사에 국민들은 감동했다. 취임 선서식에선 그 흔한 예포 발사나 축하 공연도 없었다. ‘겸손한 권력이 되겠다’는 다짐만큼이나 탈(脫)권위적인 행보였다. 지지자들에겐 우리 손으로 저런 대통령을 뽑을 수 있어 뿌듯하다는 자부심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두 해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현 정부를 지켜보는 유권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최근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이 꾸려졌다. 일곱 명의 장관 후보자 중 두 명은 국회 인사 청문회 검증 과정에서 낙마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던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자녀의 호화 유학과 외유성 출장 의혹 등이 제기된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선 문 대통령이 처음으로 지명을 철회했다. 나머지 다섯 명 중 두 명은 야당의 반발로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임명이 강행됐다.

이로써 현 정부 들어 청문 보고서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이상 인사는 박근혜 정부(10명) 때보다 더 많은 11명으로 늘어났다. 청문 대상자 중 낙마한 인사도 여덟 명으로 참여정부(3명)의 갑절 이상이다. 물론 두 명의 후보자가 낙마한 마당에 추가로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는 지나쳐 보이는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후보자들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을 보면 이번 인사 검증은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게다가 부실 검증 논란에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권 중반기의 길목에서 맞은 4·3 보궐 선거에서도 냉엄한 민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남 두 곳의 국회의원은 진보와 보수 진영이 1 대 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지만 불과 9개월 전 지방 선거에서 광역 단체장 17곳 중 14곳을 더불어민주당이 석권한 점을 감안하면 여권으로선 체면치레에 그쳤다는 평가다. 인사 실패 등에 대한 민심의 경고등이 켜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민주당 내에서조차 내년 4월 총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민심의 이탈은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 추이에서도 엿보인다. 취임 초 80%를 웃돌았지만 올 들어선 40%대로 떨어져 반토막이 났다. 한국갤럽이 지난 2∼4일 전국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3.1%포인트)한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41%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갤럽의 9~11일 조사에서는 긍정 평가가 47%로 상승했지만 지지도 하향세가 시나브로 이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국정 지지도 하락에는 인사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지표 악화 등 경제 정책에 대한 불안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정 평가의 이유로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이 가장 많이 꼽힌 것만 봐도 그렇다. ‘평화가 경제’라며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사실상 ‘올인’해 온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도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보면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과거 대통령들의 집권 2년 차 4분기 국정 지지율은 김영삼 36%, 김대중 50%, 노무현 27%, 이명박 47%, 박근혜 44% 등이었다. 하지만 하락세가 이어져 30%대로 떨어지면 야당의 저항과 내부 분열이 본격화하면서 국정 운영 동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국정 과제와 촛불 민심이 부여한 개혁 과제를 성공리에 마무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조사 내용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호남 지지율이다. 지역별 표본수가 많지 않아 한계가 있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광주·전라권의 긍정 평가는 4월 첫 주에 69%, 둘째 주에는 72%에 달해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50%를 밑도는 다른 지역과 확연히 다르다.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얻은 호남 득표율(광주 61.14% 전남 59.87% 전북 64.34%)보다 높은 지지를 여전히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호남 배려를 그동안 잘 지켜 온 데 대한 고마움도 담겨 있을 것이다. 1·2기 내각에 호남 인사들을 두루 중용했고, 4년 이상 표류하던 ‘광주형 일자리 완성차 공장 설립’의 성사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사람이 먼저’라는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책의 혼선에도 방향성과 의지에 대해선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 조사에서 긍정 평가 이유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함께 ‘최선을 다함’ ‘열심히 한다’가 우선적으로 꼽히는 것이 이를 말해 준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도자는 선한 의도가 아닌 결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좋은 결실을 얻으려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되새겨 모든 정책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사의 스펙트럼부터 넓히라는 얘기다. ‘내 편, 네 편’ 가르지 말고 진영을 넘어 인재 풀을 확장해야 한다. 인사 추천 및 검증 시스템의 재점검과 보완도 필요하다. 그것이 ‘기회의 평등’을 여는 길이다.

정책 추진에 있어서는 정의감과 의욕만 앞세우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원칙을 견지하면서 현실을 접목하는 실용의 자세로 공정 사회와 공정 경제를 구현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민생을 안정시키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 차가운 ‘냉골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무엇보다 극한 정쟁으로 치닫는 정국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야당을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삼고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나눠야 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처럼 야당 의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필요하면 타협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요 ‘포용 국가’ 아닌가.

문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3년 이상 남아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시간은 충분하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 오롯이 담겨 있다.

/논설실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