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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전일빌딩 갤러리’
2019년 04월 03일(수) 00:00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광주 대인동의 ‘김냇과’ 부근을 지나다 보면 대형 설치작품이 눈에 띈다. 이어폰을 낀 어린 아이가 강아지 인형을 안고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듣는 모습이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림 아래는 ‘너에게 기대어’라는 제목과 성혜림이라는 작가명이 함께 쓰여 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입안에 침이 고일 만큼 상큼해 보이는 청포도가 시선을 끈다. 아니나 다를까. 작품명도 ‘프레쉬’(Fresh·강민정 작)이다. 대인시장 국밥집으로 향하는 어르신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바라본다.

구 도심인 이곳에 ‘그림’이 등장한 건 지난해 봄부터. 인근에 14층 규모의 오피스텔 2동을 건설중인 (주)영무건설이 젊은 작가 5명의 작품을 대형 스티커로 실사출력해 판넬로 설치한 것이다. 지저분한 공사현장을 덮는 공사장 가림막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주민과 행인들은 칙칙하고 난잡한 공사장 대신 개성 넘치는 가림막 덕분에 ‘때아닌’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

지난 2010년 8월15일,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이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다. 지난 2006년 광화문 제자리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복원공사에 들아간지 3년 8개월만이다. 공사장 가림막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 다운 웅장한 위용을 자랑했다. 특히 금강송으로 뼈대를 갈아 입은 목조 광화문은 615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말이 3년 8개월이지 복원 공사로 인한 불편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시의 미관을 저해하는 삭막한 공사현장이 문제였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고민 끝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59)씨에게 SOS를 보냈다. 서울의 한복판을 회색빛 공사판이 아닌 아름다운 화폭으로 바꾸는 가림막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다.

“온 국민이 ‘광화문의 달’을 보면서 새로운 대한민국과 세계를 꿈꾸게 하자.” 강 작가는 폭 41m, 높이 27m의 설치작품 ‘광화문에 뜬 달’을 내걸어 광화문 일대를 야외 갤러리로 바꾸는 마법을 부렸다. 특히 조명이 켜지는 야간에는 둥근 보름달을 연상시켰다. 달항아리와 인왕산 등으로 광화문을 형상화 한 작품은 가로x세로 크기가 60㎝인 나무합판 2611개를 붙여 만들었는데, 작품 하단에는 광화문에서 실제 사용됐던 3개의 문이 설치됐다.

공사가 마무리된 2009년 9월까지 약 3년 반동안 전시된 ‘광화문에 뜬 달’은 광화문의 복원을 손꼽아 기다리는 시민의 마음을 위로하며 서울의 명물로 떠올랐다. 일부 시민들은 오랜동안 함께 해온 ‘명작’이 철거되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광주시는 광주시 동구 전일빌딩 리모델링 공사 현장의 가림막에 설치할 디자인을 공모중이다. 1968년 12월 지하 1층 지상 7층으로 지어진 전일빌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생생한 현장이자 호남의 상징인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디자인이 선정되면 전일빌딩 가림막은 5·18 40주년을 앞둔 내년 3월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되기까지 근 1년 동안 시민들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전일빌딩 공사장 가림막이 예술이 흐르는 ‘열린 캔버스’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