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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영의 한국영화 100년]<5>1954~1957 총성 멈춘 한국, 영화 속 총성은 끝나지 않았다
간첩 잡는 어린이 ‘창수만세’ 등 전쟁·반공영화 봇물
‘운명의 손’ 한국 영화 사상 첫 여간첩·키스신 등장
전쟁 그림자 벗어난 1955년 ‘춘향전’ 성공…사극 붐
신상옥 감독 데뷔…최은희·김지미·조미령 스타 탄생
최초 여성감독 박남옥, 딸아이 업고 ‘미망인’ 찍기도
2019년 03월 13일(수) 00:00
‘출격명령’(1954)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됐다. 그렇게 총성은 멈췄지만 한국전쟁 후의 한국영화는 전쟁과 반공을 다룬 영화들이 주를 이뤘다. 이 시기에 제작된 몇 편의 영화들을 일별해 보면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창수만세’(1954·어약선)는 아동용 반공물로 어린이들이 간첩을 잡는다는 내용이며, ‘북위 41도’(1954·김성민)는 해병대의 무용담을 그리고 있다. ‘고향의 등불’(1954·장황연)은 상이군인이 공비를 소탕한다는 내용이고, ‘자유전선’(1955·김홍)은 한국전쟁 중에 만난 연인들의 이별과 재회를 다루고 있다.

‘출격명령’(1954·홍성기)은 한국전쟁 중에 피어난 전우애를 묘사하고 있으며, ‘불사조의 언덕’(1955·전창근)은 한국군이 미군을 구출한 후 최후를 마친다는 노골적인 반공영화였다. 심지어 이강천 감독은,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을 한국전쟁의 이야기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시기 영화들은 전쟁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이들 영화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의 손’(1954·한형모)과 ‘죽엄의 상자’(1955·김기영) 그리고 ‘피아골’(1955·이강천)은 필름이 남아 있어서 확인이 가능하고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운명의 손’은 호스티스와 여간첩으로 이중생활을 하는 여자와 직업군인의 애절한 사랑을 담고 있다. ‘운명의 손’은 여간첩이라는 소재를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다루었을 뿐 아니라, 한국영화 최초로 키스신이 등장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아골’(1955)
김기영의 데뷔작인 ‘죽엄의 상자’는 사운드가 유실되어 불완전한 형태로 영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후에 만들게 될 영화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영화는 시각적 충격을 주기 위한 장면들을 배치하고 있고, 다양한 앵글과 실험적인 편집 등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데뷔작을 통해 한국영화에서 가장 기이한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김기영 영화의 맹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피아골’은 빨치산들이 주인공인 영화로 동지들 간의 내분으로 자멸하는 이야기를 그리며 도식적인 반공영화를 탈피하고 있다. 빨치산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났다고 해서 용공영화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조미령을 스타로 만든 춘향전’(1955).
1955년부터 한국영화는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1월 개봉한 ‘춘향전’(1955·이규환)은 2개월간의 장기흥행에 돌입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춘향전’의 성공은 다른 연행예술의 관객들을 영화 쪽으로 돌려놓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한국영화 제작에 활기를 불어 넣기도 했다. 그리고 ‘춘향전’의 흥행에 힘입어 신상옥 감독의 ‘젊은 그들’(1955), ‘무영탑’(1957), 김성민 감독의 ‘망나니 비사’(1955), 전창근 감독의 ‘마의 태자’(1956), 윤봉춘 감독의 ‘처녀 별’(1956) 등 사극의 제작이 활기를 띠기도 했다.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1956)은 영화 개봉 전부터 원작자인 정비석과 황산덕 교수의 논쟁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고, 영화가 개봉하자 극장 앞은 영화를 보기 위한 관객들로 넘쳐났다. 1950년대 중반, 유교적 문화 아래에서 남녀 문제에 대한 보수적 기조가 강하게 지배했던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이 선보이고 있는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이다. 전통적인 가정으로의 귀환을 나타내는 결말은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이 작품이 선보이고 있는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과감한 표출과 이를 묘사하는 안정적인 이야기 전개는 이 영화를 1950년대 보수적 한국 사회에 던진 문제작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1950년대 중반 한국영화는 60년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감독들이 자신의 연출역량을 연마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52년 ‘악야’로 데뷔한 신상옥 감독은 한국 명승지의 특수한 풍물과 고사를 극화하여 삽입한 장편 문화영화인 ‘코리아’(1954)를 연출했고, 김동인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젊은 그들’(1955)을 내놓게 된다. 그리고 ‘꿈’(1955)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승려 조신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광수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이 세 편의 영화 속에는 최은희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신상옥과 최은희는 감독과 배우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으며, 이후 두 사람은 파란만장한 영화인생을 살게 된다.

‘춘향전’주인공 조미령&‘춘향전’주인공 이민
1955년 ‘죽엄의 상자’로 데뷔한 김기영 감독은 같은 해에 ‘양산도’를 개봉한 뒤 ‘봉선화’(1956), ‘황혼열차’(1957) 등을 연속해서 선보이게 된다. ‘황혼열차’는 김지미의 데뷔작으로 유명하다. 유현목 감독은 1956년 ‘교차로’로 데뷔한 후 ‘유전의 애수’(1956)와 ‘잃어버린 청춘’(1957)등을 만들며 연출력을 단련시켰다.

이 시기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배우를 꼽자면 이민과 조미령을 들 수 있다. 두 배우는 ‘춘향전’의 이몽룡과 성춘향을 맡아 흥행성공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이민은 ‘춘향전’에 이어 출연한 ‘자유부인’ 역시 큰 성공을 거두자 당대의 스타로 등극했다. 이민은 ‘자유부인’에서 교수 부인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대학생 춘호를 연기했는데,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은 모던한 연기가 일품이다. 그리고 조미령은 ‘춘향전’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 유현목 감독의 데뷔작인 ‘교차로’에 출연해 1인 2역을 소화했다. 그리고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1956)에서 맹진사댁의 몸종인 이쁜이로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기며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니까 이민과 조미령은 이 시기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이었던 박남옥은 딸을 업고 다니며 영화를 만들었다.
이 시기 특기할 만한 영화로는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1955)을 꼽을 수 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 최초의 여성 감독의 영화로 50년대를 살아가던 여성들과 당시 사회상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 박남옥 감독이 갓 태어난 딸을 등에 업고 다니며 영화를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원본이 유실된 채 복원되어 후반부에 사운드가 들리지 않고, 영화 종반부의 필름이 없는 관계로 결말을 확인할 수 없는 아쉬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조대영 광주독립영화관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