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파리-조근호> 화가도 떠난 쓸쓸한 역사의 현장 몽마르트 언덕
![]()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은 마네, 모네, 드가 등 서양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대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화가들의 언덕’이었다. |
파리 중심가의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저만치 언덕이라 생각 되지 않고 조금 높은 건물들이 군집해 서있는 듯 보이는 해발 130m의 나지막한 예술가들의 언덕, 특히 ‘화가들의 언덕’이라 알려진 몽마르트가 있다.
나는 젊은 시절에 슬쩍 다녀갔던 이곳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일정에 따라 몽마르트 언덕을 오르기 위해 차에서 내려 비스듬하게 경사진 오름길을 걸었다. 밤이면 울긋불긋 현란한 거리로 변한다는 물랑루즈 골목을 지나 조금씩 경사를 느끼는가 싶더니 나는 어느 새 많은 인파 속에 들어와 있었다.
조금은 숨이 찬 상태에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저만치 하늘과 맞닿은 언덕 위에 회백색 성당이 당당하게 위엄을 드러내며 우뚝 서 있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이곳을 배경 삼아 나름 멋지게 포즈를 취하며 사진 속에 추억을 남기려는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 멋진 경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곳을 배경 삼아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눈앞 언덕 위에 웅장하게 우뚝 서있는 성당은 1876년부터 40여 년 만인 1919년에 가톨릭 교도들의 기부금으로 완공된 사크레쾨르 대성당이다. 이 성당이 이곳 몽마르트에 지어지게 된 사연은 이곳에서 처형당한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또한 보불전쟁(1870~1871)에서 패해 실의에 빠져있는 프랑스인들을 정신적으로 위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언덕이 몽마르트라고 불리는 데는 오랜 시간을 두고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프랑스가 로마의 지배 하에 있던 시절 초대 주교인 생 드니(Saint Denis) 신부가 가톨릭을 전파하다가 부주교 2명과 함께 이 언덕에서 순교하였기에 이 언덕을 ‘순교자(Martre)의 언덕(Mont)’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설은 역시 로마가 프랑스를 지배하던 시절 로마에 반기를 들거나 죄를 지은 사람들을 눈에 잘 띄는 이 언덕에서 처형을 하였는데, 봄이면 화성에 붉은 기운이 돌고 군인들이 전쟁터로 출전한다고 하여 군인들이 머물고 있는 이 언덕을 ‘화성의 언덕’(Mons Martis 몽 마르티스)이라 불렀다 한다.
마치 로마군들이 이곳에 진을 치고 있는 게 출전 직전의 모습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인데 오늘날에 와서는 몽마르트라 불려지고 있다는 설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곳은 사람들을 처형한 흔적이 스며있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슬픈 역사의 현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이 몽마르트 언덕이 언제부터인가 낭만과 예술이 꽃 피는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된 계기는 19세기에 들어 파리시에서 이 지역을 시 외곽으로 설정하여 세금을 경감시키면서 선술집과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는데 이후 화가들이 거리에 화구를 펼쳐놓고 자기들의 꿈과 이상의 세계를 캔버스 위에 그려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를 시작으로 하여 한때는 많은 화가들이 이 언덕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인상주의 화가인 마네, 모네, 드가, 피사로, 반 고흐, 큐비즘의 피카소, 브라크 등 서양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대가들도 이 언덕을 배경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당시 이 언덕이 화가들의 주 무대가 되었던 것은 이 지역이 물가가 저렴하여 가난한 화가들이 거주하기에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에게는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이 그 어느 경관보다도 아름다워 이를 화폭에 담아 작품을 제작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성당 왼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화가들의 그림들이 다양하게 펼쳐진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이 나온다. 테르트르란 언덕의 꼭대기란 뜻이다.
한때 이곳은 사람들을 처형하던 무시무시한 장소였지만 이후 선술집과 화가들이 몰려들어 인상파 화가들의 창작활동 중심지가 되면서 낭만이 흐르는 화가들의 언덕이 되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상업화가 불러온 매너리즘에 실증을 느낀 많은 화가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이곳은 새로운 창작 없이 기존 방식만을 반복한 생기 잃은 작품들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그려주는 인물화만이 가끔 팔려나가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가끔은 좋은 작품을 만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상업화가 가속화 되면서 한때 꽃을 피우던 인상주의 미술은 변해가는 시대성을 작품에 담아내지 못하고 지난날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앨범 속 빛바랜 사진들처럼 퇴색되어 가고 있다.
지난날 화려했지만 지금은 시들어가는 인상주의 미술을 거름 삼아 다시 새롭게 부흥하는 몽마르트를 기대해본다.
나는 젊은 시절에 슬쩍 다녀갔던 이곳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일정에 따라 몽마르트 언덕을 오르기 위해 차에서 내려 비스듬하게 경사진 오름길을 걸었다. 밤이면 울긋불긋 현란한 거리로 변한다는 물랑루즈 골목을 지나 조금씩 경사를 느끼는가 싶더니 나는 어느 새 많은 인파 속에 들어와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배경 삼아 나름 멋지게 포즈를 취하며 사진 속에 추억을 남기려는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 멋진 경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곳을 배경 삼아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 사크레쾨르성당의 종탑 |
눈앞 언덕 위에 웅장하게 우뚝 서있는 성당은 1876년부터 40여 년 만인 1919년에 가톨릭 교도들의 기부금으로 완공된 사크레쾨르 대성당이다. 이 성당이 이곳 몽마르트에 지어지게 된 사연은 이곳에서 처형당한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또한 보불전쟁(1870~1871)에서 패해 실의에 빠져있는 프랑스인들을 정신적으로 위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언덕이 몽마르트라고 불리는 데는 오랜 시간을 두고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프랑스가 로마의 지배 하에 있던 시절 초대 주교인 생 드니(Saint Denis) 신부가 가톨릭을 전파하다가 부주교 2명과 함께 이 언덕에서 순교하였기에 이 언덕을 ‘순교자(Martre)의 언덕(Mont)’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설은 역시 로마가 프랑스를 지배하던 시절 로마에 반기를 들거나 죄를 지은 사람들을 눈에 잘 띄는 이 언덕에서 처형을 하였는데, 봄이면 화성에 붉은 기운이 돌고 군인들이 전쟁터로 출전한다고 하여 군인들이 머물고 있는 이 언덕을 ‘화성의 언덕’(Mons Martis 몽 마르티스)이라 불렀다 한다.
마치 로마군들이 이곳에 진을 치고 있는 게 출전 직전의 모습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인데 오늘날에 와서는 몽마르트라 불려지고 있다는 설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곳은 사람들을 처형한 흔적이 스며있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슬픈 역사의 현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이 몽마르트 언덕이 언제부터인가 낭만과 예술이 꽃 피는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된 계기는 19세기에 들어 파리시에서 이 지역을 시 외곽으로 설정하여 세금을 경감시키면서 선술집과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는데 이후 화가들이 거리에 화구를 펼쳐놓고 자기들의 꿈과 이상의 세계를 캔버스 위에 그려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를 시작으로 하여 한때는 많은 화가들이 이 언덕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 몽마르트 언덕을 바라보며 |
인상주의 화가인 마네, 모네, 드가, 피사로, 반 고흐, 큐비즘의 피카소, 브라크 등 서양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대가들도 이 언덕을 배경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당시 이 언덕이 화가들의 주 무대가 되었던 것은 이 지역이 물가가 저렴하여 가난한 화가들이 거주하기에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에게는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이 그 어느 경관보다도 아름다워 이를 화폭에 담아 작품을 제작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성당 왼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화가들의 그림들이 다양하게 펼쳐진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이 나온다. 테르트르란 언덕의 꼭대기란 뜻이다.
한때 이곳은 사람들을 처형하던 무시무시한 장소였지만 이후 선술집과 화가들이 몰려들어 인상파 화가들의 창작활동 중심지가 되면서 낭만이 흐르는 화가들의 언덕이 되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상업화가 불러온 매너리즘에 실증을 느낀 많은 화가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이곳은 새로운 창작 없이 기존 방식만을 반복한 생기 잃은 작품들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그려주는 인물화만이 가끔 팔려나가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가끔은 좋은 작품을 만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상업화가 가속화 되면서 한때 꽃을 피우던 인상주의 미술은 변해가는 시대성을 작품에 담아내지 못하고 지난날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앨범 속 빛바랜 사진들처럼 퇴색되어 가고 있다.
지난날 화려했지만 지금은 시들어가는 인상주의 미술을 거름 삼아 다시 새롭게 부흥하는 몽마르트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