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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좌측담장’ ] 좋은 야구가 보고 싶다
2019년 02월 21일(목) 00:00
야구가 없는 겨울, 배구가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농구대잔치 세대의 위세에 오랜 기간 눌렸었고, 특정 팀이 우승을 독식해 팬들에게 흥미를 주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지역 연고가 정착되고 각 팀마다 스타가 탄생했으며 매년 순위 싸움이 치열해져 이제는 배구가 명실상부 실내 스포츠의 최강자가 된 것이다. 이는 통계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몇 년 사이 배구는 평균 관중, 시청률 모두 라이벌인 농구를 앞지르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여자 배구의 약진인데, 올해는 최초로 시청률 1%를 넘겼으며, 관중 수도 지난 시즌보다 60% 가까이 급증했다고 한다.

몸을 던지는 수비, 강력한 스파이크, 길고 끈질긴 랠리, 새롭게 등장하는 루키들…. 여자 배구는 인기를 얻을 여러 조건을 스스로 갖춰 나가고 있다. 실제로 여자 배구는 우리나라의 프로 스포츠 중에 가장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여자 배구의 FIVA 랭킹은 9위(남자 배구는 24위)인데, 여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나라는 무려 117개국이다. 간단히 말해 대한민국 여자 배구 팬은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각 팀마다 배치된 외국인 선수 또한 세계적 레벨에 접근해 있으며, 주요 공격수로 활약하지만 수년 전처럼 모든 공격을 몰아주지는 않는다. 실력의 상향 평준화가 인기의 핵심 요인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야구의 세계 랭킹은 여자 배구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다. WBSC 기준으로 무려 3위다.(1위 일본, 2위 미국, 4위 대만) 물론 이 수치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즐기는 축구나 배구의 랭킹과, 국제적으로는 소수 스포츠에 불과한 야구의 랭킹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몇몇 팬들은 우리 야구의 수준 낮음을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그것은 세계 랭킹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다. 심심치 않게 터지는 핸드볼 스코어,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 이따금 선보이는 우스꽝스러운 실책, 길어지기만 하는 경기 시간…. 인기를 잃을 수 있는 조건을 우리 야구는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다.

실제로 작년 KBO 총 관중 숫자는 전해 대비 4% 감소했고 FA 계약은 전례 없는 냉기가 돌았다. 대형 FA 한 건(포수 양의지)을 제외하고는 선수 이동이 없었으니 별다른 이슈도 생기지 않았다. 팬들에게 프로 야구 선수는 팬 서비스는 도외시한 채 낮은 수준의 야구를 하면서 높은 연봉만 가져가는 이들로 인식되고 있다.

초기 프로 야구의 캐치프레이즈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었으나 꿈과 희망은 고사하고 성 추문, 폭력, 음주 운전, 금지 약물 복용, 도박, 승부 조작 같은 사고로 얼룩졌으니 어린이들에게 나쁜 영향이나 주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실제로 교고 시절 학교 폭력을 저지른 선수는 투수 최대 유망주로 평가받으며 가을 야구까지 치렀고, 금지 약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는 빼어난 성적을 이유로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다 받고 있다. 프로 야구가 어린이에게 주려는 꿈과 희망이란 게 이런 걸까?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

그게 진짜 교훈이라면 진짜 문제는 이 모든 것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팬들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기력이든 전체 팀의 순위는 가려질 테지만, 타격왕이든 홈런왕이든, 방어율 1위든, WHIP든, WAR이든 야구의 결과는 나온다. 과대 포장된 타격 수치도 결과라면 결과일 것이다.

한 이닝에 두 개 이상 나오는 사사구도 결과라면 결과일 것이다. 역시 한 이닝에 세 명 네 명 나오는 중간 투수도 결과이긴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결과물이 고여 만들 진짜 결과가 궁금하다. 일단은 이기면 환호하겠지만, 이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팬들은 좀 더 높은 수준의 야구를 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떠날 것이다. 이것이 스포츠의 진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