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1일, 진료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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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1일, 진료실에서
2018년 11월 28일(수) 00:00
외래 진료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의 첫 다섯 명 정도의 환자 그리고 외래 진료를 마감하는 금요일 오후의 마지막 다섯 명 정도의 환자에게는 조금 더 집중을 하려고 노력한다. 미처 긴장이 되기 전 그리고 긴장이 풀려서 예기치 못하는 불협화음이 생겼던 경험 탓이다.

첫 번째 환자. 병원에서 했던 각종 검사와 몸의 상태를 보면 아직 일을 하면 안 되고 좀 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 복귀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쫓겨 난다고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도와달라고 한다. 앞으로 생기는 문제는 본인이 다 알아서 한다며, 일을 해도 된다는 소견서를 써주라고 한다. 난감하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니 조금은 찜찜해도 어쩔 수 없이 ‘조심해야 한다, 무리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소견서를 쓴다. 대부분의 불협화음은 ‘의학적 판단’보다는 ‘사회적 판단’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 생긴다.

두 번째 환자. 수술 후 보조기를 차고 있어서 한쪽 팔을 사용 못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구청에서 주는 실업 급여를 받아야 하니 노동과 구직활동이 가능하다는 소견서를 발급해 주라고 한다. 수술 부위가 아직 불안정 하니 좀 더 보호를 해야 한다는 ‘의학적 판단’으로 소견서를 써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부탁을 하는데 이 환자는 막무가내로 발급해주라며 언성을 높인다. 잘못하면 구청으로부터 민원이 생길 수 있다는 ‘사회적 판단’으로 안 된다고 설명하는데 말이 안 통한다. 욕을 해대면서 나간다.

수술과 같은 치료 후 치료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 기간 부목, 보조기 등으로 움직임을 제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무직이면 그나마 덜 하지만 육체 노동을 하는 경우라면 상황이 쉽지 않다. 머리가 아프다. 월요일 아침이 쉽지 않다. 갑자기 대기실에서 큰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인상 가득한 얼굴로 갑자기 들어온다. 원무과 직원이 진료 안내 용지를 한손으로 줬다면서 직원들이 예의가 없다, 교육을 어떻게 시키냐며 항의한다. 자초지종을 모르니 일단 미안하다, 좀 더 사정을 알아보고 조치하겠다, 직원 교육에 좀 더 신경을 쓰겠다고 말하지만 화난 얼굴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다. ‘똑 바로 하라’면서 진료실을 나가서는 대기실에서 ‘뭐 이런 병원이 있냐’며 또 화를 낸다. 원무과장은 연신 미안하다, 죄송하다 하지만 이 사람이 무슨 죄인가. 일단 오전 진료 후 다시 이야기 하자고 돌려보내고 다시 집중을 해 본다.

진료실 밖에서는 대기 순서가 바뀐다면서 언성을 높인다. 약속이 있어서 빨리 진료를 보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또 누군가는 영상 통화를 하는지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오늘 따라 아이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온 대기실을 운동장처럼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난리도 아니다. 진료실에서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환자와의 대화에 집중이 안 된다.

진료 대기 순서를 무시하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내가 오진을 했다고 한다. 다른 병원에 가서 들어보니 내가 한 말이 틀렸다며, 큰 소리를 지르며 진료비와 검사비를 전부 돌려달라고 한다. 안정시키고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의료 기록을 다시 뒤져봐도 크게 틀릴 내용이 없다. 딱 한번 2주 약을 처방했을 뿐이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내 말을 들으려 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내 마음도 안정이 안 된다. 이쯤 되면 어쩔 수 없다. 서로의 목소리가 커지고 옥신각시 하는데 갑자기 경찰이 들어온다. 환자가 신고를 해서 나를 경찰서로 연행해야 한다고 한다. 다른 설명도 없이 수갑을 채우려 한다. 영장도 없이 무조건 가야 한다고 한다. 진료실 밖으로 나가는데 대기실 모니터 뉴스에서는 지난밤 응급실에서 술 취한 환자가 응급실 야간 근무 의사를 폭행했다고 한다. 다른 뉴스에서는 환자 사망 사고로 의사가 구속되었다고 한다. 어지럽다. 갑자기 뭔가 머리에 푹신한 것이 느껴진다. 아… 꿈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일요일 아침이다. 창밖으로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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