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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는 도끼다’
2018년 10월 31일(수) 00:00
덴마크의 공공도서관 취재를 떠난 지난 7월 초, 빡빡한 일정에도 짬을 내 들른 곳이 있다. 코펜하겐 뉘하운 운하에 자리한 샤를로텐보르 궁전이다. 한때 덴마크 왕실 가족이 거주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덴마크왕립 미술아카데미 건물로 ‘신분’이 바뀌었다. 아름다운 운하와 17세기 덴마크 건축양식이 어우러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코펜하겐의 랜드마크다.

하지만 필자가 샤를로텐보르궁전을 찾은 이유는 한 일간지에 실린 ‘한 장의 작품 사진’때문이었다. 지난해 6월 중국의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세계 난민의 날’에 맞춰 궁전의 창문들을 낡은 주황색 구명조끼 3500개로 덮은 설치미술 ‘해돋이’(Soleil levant)는 건물과 어우러져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도 그럴것이 시리아 난민들이 지중해를 떠나 유럽으로 건너갈 때 착용했던 구명조끼들을 수거해 제작했기 때문이다.

샤를로텐보르를 방문하던 날, 유난히 평화로운 뉘하운 운하에 마음을 빼앗겼다. 비록 ‘그때’의 구명조끼들은 철거돼 볼 수 없었지만 운하 어디쯤엔가 난민들의 슬픈 사연이 남아 있는 듯해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덴마크에서 가장 불행한 난민의 삶을 고발한 작품이라니. 아이웨이웨이가 수많은 도시 가운데 코펜하겐을 전시장으로 ‘찜한’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외국인 여러분, 제발 우리를 덴마크 사람들하고만 남겨두지 마세요”(Foreigeners, please don’t leave us along with the Danes).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제3전시실에 들어서자 주황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로 쓰여진 대형 패널이 시선을 압도했다. 순간, 아이웨이웨이의 주황색 구명조끼 이미지가 오버랩 됐다.

아니나 다를까. 2018 광주비엔날레 주제전인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에 출품된 ‘외국인 여러분…’(수퍼플렉스 작)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민족주의와 반이민법을 고발한 작품이다.

전시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캄보디아 작가 스베이 사레스(Svay Sareth)의 자전적 조각 작품 ‘침묵 & 외침’(Silence & Yell)과 영상 작품 ‘카사바 임시 수용캠프’가 시선을 붙든다. 특히 유년 시절 크메르 루즈 정권을 피해 난민 캠프 ‘사이트 2’에서 생활했던 아픈 기억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예술과 인권, 자유에 대한 의미를 새삼 되돌아 보게 한다.

이처럼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난민과 국경 이슈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석한 설치, 미디어 작품들이 유독 많다. 최근 제주도 예멘 난민 논란과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수십 만명의 남미 난민행렬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비엔날레는 뜨거운 담론의 장이 되고 있다.

비엔날레가 여느 전시와 다른 점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세상에 대한) 도발적 발언이다. 정체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예술적 상상력을 만날 수 있는 건 비엔날레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마치 정체된 사고의 ‘경계를 깨는’ 날카로운 도끼처럼. 비엔날레 폐막일(11월 11일)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더 늦기 전에 현대미술의 향연 속으로 떠날 일이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