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대 그노래 다시부르는 임을위한 행진곡] <9> 혁명의 노래, 국민 가슴에 ‘영원한 불꽃’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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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대 그노래 다시부르는 임을위한 행진곡] <9> 혁명의 노래, 국민 가슴에 ‘영원한 불꽃’이 되다
혁명가 ‘라 마르세예즈’ 1887년 정식 국가 채택 國歌 모욕 처벌 조항도 신설
민중의 노래 막는 건 독재 넘어 야만 그 자체
2018년 10월 15일(월) 00:00
하나의 문화재라고 해도 될 만큼 예술의 도시 파리에는 유물과 유적이 산재한다. 에펠탑에서 바라본 파리 시가지.
조국의 아들딸들이여

영광의 날은 왔도다!

폭군에 결연히 맞서서

피묻은 깃발을 올려라

피묻은 깃발을 올려라!

우리 강토에 울려 퍼지는

끔찍한 적군의 함성을 들으라.

적은 우리의 아내와 사랑하는 이의

목을 조르려 다가오고 있도다!

무기를 잡으라, 시민동지들이여!

그대 부대의 앞장을 서라!

진격하자 진격하자!

우리 조국의 목마른 밭이랑에

적들의 더러운 피가 넘쳐흐르도록!

(프랑스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 중에서)



나폴레옹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세운 개선문. 개선문 바닥에는 무명 용사의 비문과 아울러 ‘영원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무능한 루이 16세와 사치가 심했던 왕비 마리앙투아네트가 거주했던 베르사이유 궁전. 바로크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노래 ‘라 마르세예즈’는 살벌하다. 날것 그대로의 격한 감정이 응축 돼 있다. 가사만 봐서는 당장 뭔가를 뒤엎을 기세다. 눈앞의 적들을 피가 낭자하도록 응징하자고 추동한다. 금방이라도 들고 일어나 전쟁을 치르고 이 불의한 상황을 끝장내자는 분위기다.

한 나라의 국가(國歌)가, 유럽을 대표하는, 선진 문명의 나라 프랑스의 국가가 이처럼 선혈이 낭자해도 되는가. 프랑스는 고품격 문화와 예술의 나라가 아니던가. 역설적으로 당시 혁명의 불길이 타올랐던 시대상이 그만큼 모순과 비리와 부패로 얼룩졌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에펠탑에 올라 파리 시가지를 둘러본다. 하나의 거대한 유물 같은 이 도시가 주는 인상은 반듯하면서도 차갑다. 혁명에 대한 열망 이면에 냉철한 현실 인식이 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깃들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무릇 열망과 냉철이 적절히 융합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혁명도 실현될 수 없다. 필연적으로 그것은 ‘피’와 ‘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파리 시내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시가지 중심가로 물감을 칠해 놓은 듯 파란 물줄기가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이 이채롭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도 같다. 어느 강이든 그것이 지닌 생명성과 모성성 때문에 친근하게 다가오나 보다. 한편으로 이방인에게 비치는 세느 강은 매혹적이면서도 수수하다. 역사의 도시, 예술의 도시 심장부를 가로질러 그렇게 세느 강은 무심히 흐른다. 강은 도시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는 말이 새삼 상기되는 것은 여느 도시든 강을 배경으로 들어서기 때문일 터다.

오래 전 파리의 성난 민중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도 하다. 귓가를 스치며 환청처럼 떠도는 소리는 단호하고 격정적이다. 그들은 저 콩코드 광장에서, 바스티유 광장에서 불의한 권력을 향해 “자유와 빵을 딸라”고 외쳤다. 그들은 결코 고상하거나 나약하지 않았다. 그들의 자유는 절박했고 절대적이었다. 그러므로 절박한 자들은 모두 광장에 모여 피를 쏟듯 외쳐야 하는가 보다.

불현듯 시인 김수영의 ‘푸른 하늘’이라는 시가 오버랩된다. 그는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라고 노래했다. 그 시에서 모든 자유와 빵을 외치는 이들의 혁명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은 그것에 피냄새가 섞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온한 시’ 때문에 그토록 탄압을 받았던 시인은 젊은 나이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유럽의 국왕들은 프랑스 왕가를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트와테트의 모국이었다. 더욱이 프로이센은 프랑스 왕가의 친척국가였다. 1792년 프랑스 국민의회는 프랑스 왕가를 돕는 오스트리아에 선전포를 했다. 이때 몰려든 의용군 가운데 ‘루제 드 릴’이라는 장교가 있었다. 북프랑스 시장인 디트리크로부터 의용군들의 사기를 북돋울 수 있는 군가를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받고 노래를 만든 것이다.

‘라 마르세예즈’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오늘날 프랑스 공식행사장에서 연주되는 곡은 지난 1887년 정식 국가로 채택됐다. 한 발 더 나아가 2005년 프랑스 의회는 국가(國歌)를 모욕할 경우 처벌한다는 조항을 신설한다. 프랑스가 왜 선진국이며 문화예술적으로 세계를 견인하는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민중의 염원이 담긴 노래를, 시민의 피값으로 지불한 노래를 훼절하거나 못 부르게 강제하는 행태는 독재를 넘어 야만 그 자체다.

‘라 마르세예즈’ 가사를 다시 꼼꼼히 음미해 본다. 사뭇 격정적이다. “적은 우리의 아내와 사랑하는 이의 목을 조르려 다가오고 있도다”라는 부분에서 멈춰진다. 피붙이를 해하려는 세력이 분초를 다투며 다가오는데 우아한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을 이는 없을 것이다. 더 격렬하면서도 더 웅장한 노래로 사람들의 가슴을 준동하게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프랑스 혁명은 단순히 한 나라의 혁명으로만 의미가 제한되지 않는다. 혁명이 프랑스를 근대국가로 견인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것의 자장은 국가의 경계를 넘었다.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에 얽매어 있던 유럽의 각국에 민주주의의 불씨를 당겼다.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민주주의 정신이 이후 유럽 사회의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자양분이 된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프랑스의 혁명은 순조롭게 착근되지 못했을까. 많은 학자들이 대표적인 시민혁명으로 꼽지만 이 부분은 여전한 의문이다. 혁명과 반혁명으로, 민주 공화정에서 복고왕정으로 오랫동안 곡절을 겪어야 했다.

에펠탑에서 개선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에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읽는다. 바닥에는 무명 용사의 비문이 박혀 있다. 그리고 ‘영원한 불길’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가 혁명의 정신을 배면에 깔고 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예술은 기득권층으로 대변되는 구 질서의 전복과 새로운 상상력, 자유의 텃밭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이 아닐지.

“프랑스 혁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도시였다. 계몽사상의 혁명적 이상은 부르주아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자유를 요구하고 있었는데, 계몽사상의 이상도 그 자유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부르주아지는 계몽사상의 혁명적 이상에서 자기들의 역사적 사명을 의식하고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차원에서 혁명적 계급이 될 수 있었다.”(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책과함께, 46~47)

/파리= 글·사진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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