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문화를 품다<9>헤이그 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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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문화를 품다<9>헤이그 시립도서관
지식을 채우는 천국…시민들 평생학습 돕는다
2018년 09월 27일(목) 00:00
헤이그도서관 1층에 자리한 카페(위). 헤이그도서관은 정보화시대에 맞춰 시민들의 미디어활용을 높이는 다양한 서비스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약 1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헤이그(Hague)에 닿는다. 암스테르담이 네덜란드의 공식 수도라면 헤이그는 행정수도쯤 된다. 모든 정부 부처에서부터 대법원, 국제사법재판소, 각국의 공관이 이 곳에 주재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헤이그는 꽤 친숙한 도시이기도 하다. 고종황제의 밀사였던 이준, 이상설, 이위종이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계 각국에 알린 후 순국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당시 이준 열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헤이그 중앙역에서 내려 시내쪽으로 10분 정도 걷다 보면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백색 건물이 눈에 띈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가 설계한 ‘헤이그 시청사 & 시립 도서관’이다. 12층 높이의 모던한 분위기와 절제된 외관이 얼핏 보기엔 IT 회사 사옥이나 전시관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시청사 안으로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자연채광과 인공조명이 조화를 이루는 건물은 지붕이 뚫린 아트리움 구조로 돼 있어 칙칙한 관공서 느낌을 찾아 보기 힘들다. 건물 한 가운데에는 헤이그시에 복지수당을 신청하러 온 이민자들이 눈에 많이 띈다.

업무를 마친 이들 중 일부는 시청사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립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네덜란드어를 배우거나 인터넷을 접할 수 있는 도서관의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다문화 정책을 지향하는 네덜란드는 전체 인구의 7%가 무슬림일 만큼 이민자들이 많다. 인구 47만 여 명의 헤이그시 역시 마찬가지다. 헤이그시에서 가장 큰 시립도서관 이외에 18개의 공공도서관(분점)들이 네덜란드어 교육이나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다양한 매체를 이해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헤이그시청사와 같은 해에 문을 연 시립도서관은 건물 외관 못지 않게 내부 구조 역시 ‘파격적’이다. 시청사 출구로 나오면 바로 도서관의 입구로 이어진 ‘한 지붕 두가족’의 형태로 설계돼 있다. 도서관 1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헤이그의 기념품을 판매하는 아트숍과 세련된 디자인이 인상적인 트렌디한 카페가 기다린다. 아트숍에는 헤이그의 랜드마크를 상징하는 미니어처에서부터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헤이그 마우리츠 하위스 미술관 소장)를 형상화한 액자와 소품들이 가득하다. 바로 옆에 자리한 카페에는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이들이 눈에 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3층으로 올라가면 문학작품과 과학, 역사, 정치 등 전문서적들이 비치된 서가가 방문객을 맞는다. 4층은 네덜란드 뿐 아니라 외국의 영화, 음악, TV 드라마 등을 즐길 수 있는 CD, DVD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헤이그 시립도서관의 소장도서는 약 140만 권. 음반에서 부터 희귀 악보, 음악 CD(재즈, 오페라, 팝, 클래식)는 30만 여 점이 구비돼 있다.

5층은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위한 인터넷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노트북을 소지한 이용객은 이 곳에서 도서관이 운영하는 E-과정(네덜란드어, 미술 등 각종 문화강좌, 인터넷 활용법)을 수강할 수 있는 가 하면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뱅킹과 디지털 사진 촬영 등의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다.

특히 도서관이 중점을 두고 있는 프로그램은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네덜란드어 교육이다.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일찍이 이민자들을 수용한 네덜란드는 언어가 한 나라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핵심요소로 보고 어린이에서 부터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강좌를 운영한다.

시립도서관의 홍보팀 트레이시 발만은 “요즘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미디어 리터러시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만큼 시민들의 평생학습(Life long learning)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헤이그의 18개 공공도서관은 유치원에서 부터 초·중학교와 연계해 수백 만명의 학생들에게 가장 빠른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는 ‘액티브 파트너’(active partner)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헤이그에는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왕립도서관과 18개의 공공도서관이 공존하고 있다. 수백 년 전의 고서와 희귀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는 왕립도서관이 아카데믹한 서고(書庫)로 네덜란드의 자존감을 높인 반면 정작 시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 1906년 부터 공공목적의 도서관 건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지난 1986년 헤이그 시의회가 시내 중심가인 스푸이(Spui)에 시립도서관 건립을 승인하면서 100년 동안 이어져온 지역의 숙원이 해결됐다.

“책을 보존하는 서고가 아닌 지식을 채우는 천국” 당시 시의회가 내건 시립도서관의 미션에 네덜란드 출신의 건축가 렘 쿨하우스, 미국의 리차드 마이어, 독일의 홀버트 얀 등 5명이 응모했다. 이들 가운데 ‘백색의 궁전’이라는 컨셉으로 도서관의 고정관념을 깬 리차드 마이어의 설계가 당선작으로 결정되면서 ‘헤이그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마이어는 1만4000㎡ 면적에 시청사와 중복된 공간을 철저히 배제한 7층 규모의 미디어 아카이브 설계로 화제를 모았다.

발만은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 아르네 야곱센의 쾌적한 소파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치며 책을 읽는 다는 건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일”이라면서 “하지만 헤이그 시립도서관에 오면 이런 즐거운 일상을 날마다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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