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23〉 경의선 책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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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23〉 경의선 책거리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도심속 책공원
2018년 05월 14일(월) 00:00
수명을 다한 폐선을 도심속 책공원으로 바꾼 ‘경의선 책거리’ 전경. 유명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학서점 등 10개의 부스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홍대 앞은 두 얼굴을 지닌 동네다. 밤에는 클럽문화의 발상지 답게 청춘들의 음주가무로 뜨겁지만 낮에는 책의 향기가 은은히 퍼진다. 역동적인 젊음의 거리와 정적인 책거리가 공존하고 있어서다. 그 새로운 문화의 씨앗은 경의선 책거리다.

지난 2016년 10월28일 서울 마포구는 살아숨쉬는 독서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지하철 홍대입구역 6번출구에서 와우교까지 이어지는 폐선부지 250m에 국내 최초로 책거리를 조성했다. 오프라인 서점의 감소로 쇠락해가는 관내 4000여 개의 출판사와 인쇄소, 디자인회사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내놓은 회심의 카드였다.

서울 지하철 경의선에서 내려 홍대 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한적한 산책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인근의 번잡스런 분위기와 달리 각양각색의 조형물과 나무가 어우러진 도심 속 공원이다. 책거리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책 읽는 여자’와 ‘기타 치는 남자’의 대형 설치작품이 눈에 띈다. 책과 음악이 흐르는 홍대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수명 다한 폐선을 걷어낸 자리에는 나무와 꽃이 가득한 녹지공간과 열차 모양의 책방 부스, 시민이 사랑하는 책 100선 조형물, 옛 서강역사를 그대로 재현한 미니플랫폼, 야외계단 등이 들어서 있다.

평일 늦은 오후 시간에도 책거리는 시민들의 발길로 북적인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30대 주부에서 부터 ‘달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연인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인근 출판사 직원들까지 다양하다. 호젓한 분위기를 즐기는 이들의 표정에서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책거리 밖에선 상상하기 힘든 슬로 라이프(slow life)의 현장이다.

경의선 책거리는 책의 역사적 흐름에서 부터 다양한 형태의 책 문화, 책의 미래적 가치체험 등 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문화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그중에서도 책거리의 ‘간판’은 열차의 외관을 본뜬 책방 부스다. 운영사무국 건물 2층에 자리한 강연 공간 ‘공간산책’을 포함해 총 10개의 부스가 산책로 곳곳에 늘어섰다. ‘여행산책’ ‘예술산책’ ‘인문산책’ ‘아동산책’ ‘문학산책’ ‘테마산책’ 등 6개의 부스는 출판사가 운영하는 서점이다.

출판사 리얼북스가 맡고 있는 ‘예술산책’은 홍대의 지역문화를 특화한 문화예술관련 도서가 판매되며 ‘아동산책’은 미래의 독자인 어린이를 위한 책 공간이다. ‘인문산책’은 인문관련 도서의 판매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 출판사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문학산책’은 시, 소설 등의 장르문학을 주제로 다양한 문학도서를 전시·판매하고 있다.

‘테마산책’은 1인 및 독립출판사가 전담하는 공간으로 상업적인 관점이 배제된, 개성넘치는 콘텐츠를 선보인다. 이들 부스에 비치된 도서가 10만 여권에 이른다고 하니 동네서점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온라인 서점과 일반 서점에서 구입하기 쉬운 베스트셀러 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들을 주로 판매해 애서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또한 글을 쓸 수 있는 창작공간과 세미나실 등 문화 공간도 비치돼 있다.

이들 부스를 둘러봤다면 책 거리에 자리한 열차 승강장을 복원한 책거리역과 야외 계단(와우교 포토존), 와우교 100선 조형물(시민이 사랑하는 책 100권), 와우교 게시판(오늘 당신과 함께 할 책은 무엇입니까) 등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좋다.

이와함께 한국출판협동조합의 주관으로 책을 주제로 한 문화, 정보, 교육, 전시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각 요일별(매주 월요일은 휴무)로 인문학, 예술, 디자인, ‘저자데이 책축제’, 여행, 문학, 북콘서트, 어린이 도서 등 전문적이고 특화된 프로그램이 방문객들을 기다린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트렁크 축제’는 책거리의 대표적인 브랜드다. 시민이 직접 여행용 가방에 책이나 책관련 물품을 담아 기증하거나 판매·교환하는 시민 참여형 축제다. 누구나 소정의 참가비(1일 5000원·3일 1만원)를 내면 ‘트렁크 시민책방’에 참여할 수 있다.

지난 4∼6일까지 3일간 열린 ‘2018 트렁크 축제’는 ‘책 속 상상이 펼쳐지는 곳, 경의선 책거리’라는 주제로 32개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선보였다. 어린이 관객을 설레게 하는 인형극에서부터 시민 합창단이 참여하는 책거리 버스킹, 소장 도서를 직접 사고팔 수 있는 북마켓, 다양한 기획 전시들이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어린이들의 베스트셀러인 ‘강아지똥’ 저자 ‘권정생을 만나다’의 문학공연, 홍아미 작가의 남미여행 이야기를 남미음악과 함께 느껴보는 ‘톡톡!! 남미로 떠나는 음악여행’ 콘서트 등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경의선 책거리는 개장 1년만에 방문객 40여 만명이 다녀가는 등 책을 매개로 한 관광명소의 성공모델로 떠올랐다.

책거리를 나서는 길, 산책로 바닥에 로마시대의 유명한 정치가인 키케로의 명언이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책이 없는 집은 문이 없는 것과 같고,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서울=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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