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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식 칼럼] 대통령의 나라, 국민의 나라
정 후 식
논설실장·이사
2018년 01월 10일(수) 00:00
6월 항쟁 30주년이었던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직격 최루탄을 맞고 숨진 화순 출신 이한열 피격 사건을 파고든다. 두 열사가 쓰러진 6개월 동안 조작되고 은폐된 국가 폭력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의기를 발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권 유지를 위해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공권력의 추악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황당한 발표는 사건 당시부터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차갑게 얼어붙은 강물에 아들의 유골을 뿌리며 “잘 가그래이! 철아!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고 울음을 삼키는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는 항쟁의 현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뜨거웠던 그해 6월을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면서 새삼 실감한 것은 역사의 물줄기가 어느 한두 사람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실을 감추려는 경찰과 권력 수뇌부에 맞서 시신 부검을 강행하는 검사, 물고문의 단서를 드러내는 부검의의 증언, 서슬 퍼런 보도지침에도 끈질긴 취재 끝에 진실을 보도한 기자, 위험을 무릅쓰고 수감된 재야인사의 옥중 서신을 밖으로 전달하는 교도관…. 양심을 건 개개인의 행동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불의에 항거하는 광장의 함성으로 분출한다.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해 6월은 엉뚱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수명 다한 87년 헌법 체제



항쟁 기간 서울 명동성당과 광주 금남로 등 전국 각지에서 울려 퍼진 대표적인 구호는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민주 쟁취’였다. 전국 33개 도시에서 하루 100만 명 이상 모이는 시위가 계속되자 전두환 정권은 결국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를 통해 6·29 선언을 내놓는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부 이양, 김대중 사면 복권과 시국 사범 석방, 언론기본법 폐지, 지방자치제 및 교육자율화 실시 등 8개항이 그것이다.

특히 1972년 유신 헌법 이후 15년 만에 부활된 대통령 직선제는 시민 항쟁으로 권력 구조를 바꿔낸 혁명적 변화였다.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하지만 당시 개헌은 민주 항쟁의 결과물이었음에도 태생적 한계가 분명했다. 1노(노태우)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측 대리인들로 꾸려진 ‘8인 정치회담’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의 장기 집권을 막겠다는 명분이 컸지만 대권을 노리는 인사들이 주도하다 보니 대통령 임기가 주된 관심사였다. 결국 5년 단임으로 합의를 봤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은 ‘패싱’ 됐다. 6월 항쟁 기간 시민들이 요구했던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개혁 요구를 외면한 것이다.

‘87년 체제’의 한계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다. ‘3권 분립’이라고 하지만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돼 사법부와 입법부를 압도하다 보니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행정부 내에서도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게 쏠려 장관이 할 일을 대통령이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진까지 득세한다.

9차 개헌 이후 6명의 대통령이 있었지만 집권 후반부엔 어김없이 권력형 비리가 터지고 이들이 모두 잇따라 불행한 종말을 맞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폐해는 국정 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경구처럼 국민이 위임한 공적 권력을 사유화할 경우 그런 일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승자 독식의 선거 구조와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 체제는 이를 더욱 부채질한다. 제왕적 대통령제 구조에서 정치권은 거대 양당으로 나뉘어 권력을 잡기 위해 사생결단식 갈등과 대치를 일삼아 불신을 자초했다. 국민의 온전한 의사를 반영하는 선거구제 개편 요구가 커지는 배경이다.

지방 행정에 관한 의사 결정 권한이 대부분 중앙 정부에 집중된 중앙 집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재정과 권한이 중앙 정부에 집중돼 있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는 국책 사업이나 정부 공모 사업에 목을 맨다. 지역의 경제 구조나 특성을 고려한 발전 전략 설계는 언감생심이다. 국토 균형 발전도 공염불이다. 개발 독재의 산물인 수도권 집중의 고착화는 지방을 소멸 위기로 내몰고 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지방 정부와 의회에 자율권을 부여해 달라며 지방 분권 개헌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여기에 5·18 정신의 헌법 전문 반영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체계를 재설계하는 개헌안의 고갱이는 시대정신인 분권과 협치가 돼야 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의 조정,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권한 재정립,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 강화가 핵심이다.

하지만 개헌 논의의 주체인 국회가 되레 걸림돌이 되고 있다. 1987년 이후 30년 만에 가동된 국회 개헌특위는 개헌 시기부터 정부 형태 등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여야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시계 제로의 상황이다. 개헌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려는 정당 이기주의 탓이다.



분권과 협치가 시대정신



지난해 대선 당시 민주당 문재인, 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등 주요 후보들은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늦어도 다음 달까지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국민의 70∼80%가 시대 변화를 반영한 새 헌법 마련에 찬성하는 상황에서 국회가 약속을 저버리고 개헌 합의안 도출에 실패하면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30년 만에 맞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다시 3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당리당략이나 정치 공학을 벗어나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개헌안을 내놓아야 한다. 적폐 청산과 국민 주권 시대, 국가 대개조의 제도적 완성은 촛불 민심이 국회에 부여한 시대적 의무다.